‘월드뮤직’(World Music)의 음악 시장적 정의는 ‘각 나라의 전통음악에서 비롯된 대중화한 음악’ 정도로 통칭 사용된다. 100%로 인정되는 말이 없기 때문에 관용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상호 충돌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쓰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월드뮤직’이라는 장르의 학문적인 정의가 아직도 확연하게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70년대 말 미(美)․영(英)의 음반제작자들에 의해 음반전시장을 분류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한 단어, 그들 나라의 대중음악, 즉 'Popular Music'(Pop Music)외에 세계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에 대해 ‘월드뮤직’ 이라고 칭하고 색인(索引)했던 것에서부터 ‘월드뮤직’은 오늘날처럼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하였다.

크로스오버 지향하면서도 대중성 지닌 음악들

오늘날의 월드뮤직 시장은 인터넷과 SNS 등 미디어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과거와 달리 전파와 확산 측면에서 보다 다양해지고 풍성해진 것은 확실하지만, 특이한 것은 장르간의 구분이 매우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컨버전스(Convergence, 융합)시대의 트랜드인지 아니면 대중음악이 지니는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월드뮤직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들을 잘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워맥스‘(WOMEX․World Music Expo)에 발표되는 각국의 음악들을 보면, 재즈와 팝, 재즈와 월드뮤직, 라틴과 켈트음악, 라틴과 서아프리카 음악, Fado Novo(새로운 파두), Flamenco Nuevo(새로운 플라멩코) 등 이종교배의 음악과 새로운 음악의 출현 등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가장 경쟁력이 있는 음악들은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면서도 대중성을 지닌 음악들이다.

라틴음악(특히 아프로-쿠반 계통)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일랜드(켈틱음악), 세네갈, 카보베르데 등을 대표로 하는 아프리카 음악, 집시음악도 현재 월드뮤직 시장의 강자들이다. 그 중 ‘모르나’(Morna)로 대표되는 작은 섬나라 ‘카보 베르데’(Cabo Verde)의 음악은 월드뮤직 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 대부분은 작고, 섬나라인 경우가 많고, 예로부터 문물이 교차하던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서 아프리카 해안에서 약 600㎞ 떨어진 대서양의 1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카보 베르데는 국토 면적이 10개의 섬을 합쳐 전라북도의 반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이다. 인구는 약 500만 명에 불과하지만, 16세기 이후부터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오랜 식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디아스포라(離散)로 인한 상처도 많은 나라이다.

또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오래 전부터 대서양의 무역과 교역의 중심지였고, 페니키아인, 아랍인, 무어인 및 인근 서아프리카의 부족들, 유럽인들의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다. 모르나(Morna) 음악은 그런 카보 베르데의 역사적 산물로 태어난, 태생적으로 이종교배의 결과물이었다. 브라질의 삼바와 보사노바, 포르투갈의 파두가 섞여있고, 아프리카의 리듬과 라틴의 비트가 때론 절충되는 음악이 바로 모르나이다. 그러나 형식과 스타일을 떠나 모든 모르나에는 공통된 정서가 들어있다. 바로 ‘사우다지‘(Saudade)이다.

우리 말로 하면 한(恨) 같은 것인데, 모르나를 듣고 있으면 뭔가 알 수 없는 슬픔과 회한, 혹은 삶의 질박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모르나엔 포르투갈의 파두(Fado)와는 다른 처연함이 있고, 브라질의 삼바(Samba)나 보사노바(Bossa Nova)와는 다른 청량함이 내재돼 있다. ‘모르나의 여왕’이라고 칭송받았던 세사리아 에보라(Cesaria Evora, 2011년 타계)는 모르나를 일컬어 “우리에게 모르나는 블루스(Blues)다”라고 얘기한 것이야말로 모르나를 잘 표현한 말일 것이다.

아프리카 리듬과 라틴 비트가 절충되는 음악

1990년대 초반 뒤늦게 세사리아 에보라의 음악이 유럽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카보베르데와 모르나 음악이 월드뮤직 시장에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은 2세대 뮤지션들이 속속 출현하기 시작했다. ‘체카’(Cheka), ‘루라’(Lula), ‘마리아 데 바로스’(Maria de Barros), ‘사라 타바레스’(Sara Tavares), ‘마이라 안드라데’(Mayra Andrade) 등이 대표적인 뮤지션들인데, 그 중 마리아 안드라데는 가장 나이 어린 뮤지션이면서 현재 대중들의 사랑을 아낌없이 받는 아티스트이다.

1985년생으로 현재 30세인 마리아 안드라데는 16세의 나이로 데뷔하였으며 21세 때인 2007년 첫 음반인 'Navega'를 발표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렸을 적부터 카에타노 벨로주와 세사리아 에보라의 음악에 매료돼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카보 베르데의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세계 각국을 그녀의 가족과 함께 광범위하게 여행하고 그녀의 어린 시절 동안 많은 나라에서 살았다.

사실 그녀는 쿠바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보냈다. 그녀의 음악에 라틴적인 요소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앨범에 있는 노래 가사의 대부분은 그녀의 네이티브 언어인 카보 베르데 ‘Crioulo’어로 씌어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음악은 모르나처럼 다양한 음악이 섞여 있지만 가사를 모국어로만 쓰는 것은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그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마이라 안드라데는 쿠바에서 태어나 세네갈, 앙골라, 독일을 거쳐 현재는 프랑스 파리에 정착해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런 그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그녀의 음악에 내재돼 있다. 그것은 데뷔작인 Navega로부터 시작해 Storia, storia(2009년), Studio(2010년), Lovely Difficult(2013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각각의 앨범은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녀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세사리아 에보라와 카에타노 벨로주의 음악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파두의 애잔함과 아프로-쿠반 비트가 원초적인 아프리카 리듬에 실려나온다. 월드뮤직이지만 전체적으론 재즈에 가깝다. 그러나 나이답지 않은 그녀의 원숙하고 감성적인 보컬은 재즈 그 이상으로 몰입을 유도하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그 미묘한 간극을 자유자재로 종횡무진한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표와 음표사이를 항해하는 것처럼 그녀의 연주는 자유롭고 친밀하다. 나는 그녀의 음악을 들을 때 마다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께 ‘모르나’(Morna)라는 음악과 그 음악을 연주하는 마이라 안드라데와 그들과 세사리아 에보라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이곤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를 확인한다. 퓨전은 혁신이고 새로운 것을 낳는다는 것을….

대동문화 86호 [2015 1,2월호]

장용석 문화기획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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