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를 찾아서

흑산도의 겨울 초입은 어림잡을 수 없었다. 바다는 청자빛 하늘의 따뜻한 햇살을 받고 낮게 엎드려 조는 듯 하다가 조개구름이라도 옅게 드리워질라치면 낯빛을 바꿔 당장이라도 섬을 삼킬 듯 금세 발톱을 내세웠다.

이맘 때 흑산도를 가장 위협하는 녀석은 태풍이었다. 녀석은 상라봉에서 손차양으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일찌감치 방향을 바꾸거나, 머지 않아 자동소멸될 시한부에 불과하더라도 맥없이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녀석은 섬 사람의 속종은 아랑곳없이 몽니부리듯 무시로 크게 몸을 일으켜 세워 이방인의 그 어떤 틈입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이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흑산도 어업인들에게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가까운 어장을 생활 터전으로 삼는 이들과 달리 먼 곳까지 나가서 며칠을 견뎌야 하는 어민들에게는 더욱 힘겨운 일이기도 했다.

올해 11월의 바다는 유달리 사나웠다. 태풍 몇 개가 겨끔내기로 들락거리면서 한 달 내내 늧이 좋지 않았다. 태풍주의보에서 태풍경보로, 태풍경보에서 태풍주의보로 특보가 이어지며 발을 묶기 일쑤였다.

11월의 끝자락에 다다른 어느 날, 영진호의 심동열(58) 선장은 예리항으로 나갔다. 이 날은 며칠동안 태풍의 영향으로 묶였던 발이 겨우 풀린 때이기도 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심 선장은 기대감 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한 주 전에도 배를 몰아 나갔지만 하루 만에 뱃머리를 돌려야 했었고, 양망(바닷 속 어망을 건져 올리는 것)보다는 투망(바닷 속에 어망을 깔아놓는 것)에 집중해 홍어를 거의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진호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은 심 선장과 선원을 포함해 모두 6명. 경력은 길게는 5년에서 짧게는 수 개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날카로운 바늘들이 잇따라 엮인 어구를 비롯한 각종 장비와 식량 등을 모두 싣고 나서야 출항 준비는 마무리됐다.

영진호는 이날 오후 2시께 닻을 올렸다. 영진호의 출발을 오후로 잡은 것은 아직까지 되드는 바람의 여진을 줄이고 물 때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들물 때 배를 몰면 물살을 따라 나아갈 수 있어 속력이 빨라지고, 기름값도 아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배는 목적지를 향해 순조롭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지만 심 선장의 생각은 되레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배와 장비는 현재에 비해 턱없이 낙후됐었지만 홍어잡이가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심 선장이 처음 선주이자 선장이 된 것은 1987년. 흑산도에서는 13척이 홍어잡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는 장비가 열악해 멀리 나가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근해에서 홍어잡이를 하더라도 그 양은 적지 않았다. 매번 똑같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양은 끌어올릴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게 언제였더라. 흑산도에서 6시간쯤 달려 먼 바다로 나갔었지. 장비가 없어 나침반만 보고 갔는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안보였어. 깜깜한 밤인데다 해무가 깔렸었나, 어쨌었나. 투망을 했었는데 어디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거야. 그 때 어찌나 피곤했던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아. 그런데 꿈에 북쪽이 보이는 거야. 아침에 꿈 속에 나타난 방향을 따라 갔더니 아 글쎄 망대가 떡허니 있지 뭐야.”

심 선장이 과거 홍어잡이 경험에서 겪었던 일로 주변의 지인에게 자주 건네는 이야기다. 이는 홍어배를 모는 일에 그만큼 연륜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장이라면 장비가 없는 안개 속에서도 투망한 곳을 찾아내야 하고, 자신의 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홍어가 몰려 있는 곳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군탐지기에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선장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기록한 자료들을 참고하거나 다른 홍어배의 정보를 통해 투망할 곳을 결정해야 한다. 선장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고 부담도 크다는 뜻이다.

어민 골칫덩어리 된 중국 불법어선

심 선장이 영진호의 닻을 내린 곳은 예리항에서 다섯시간 가량을 달린 후였다. 거리로는 40마일(64㎞) 가량 떨어진 곳으로, 홍도와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심 선장은 일단 다음 조업을 위해 투망을 하고 이전 조업 때 어구를 내려놓은 위치에서 양망 작업을 시작했다. 선원들은 졸음과 싸우며 힘겹게 주낙을 끌어 올렸지만 홍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심 선장은 밤늦도록 조업이 계속되면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파도도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그는 선원들에게 잠시나마 잠을 자도록 한 뒤 자신도 쪽잠을 청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심 선장은 무엇인가 불길한 기운이 목덜미를 스치는 것을 느끼고 벌떡 일어섰다. 눈을 비비고 밖을 내다보니 시커먼 형체 하나가 시나브로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 선장은 금방 그 정체를 직감했다. 그는 시커먼 형체를 향해 얼른 배의 조명을 비췄다. 어선이었다. 한 눈에 봐도 중국 어선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 선장은 바짝 긴장한 채 중국 어선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중국 어선은 갑자기 낮처럼 환한 조명세례를 받고 당황한 듯 잠시 멈춰서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쳐서 자리를 벗어났다.

심 선장은 긴 날숨을 내뱉었다. 중국 어선이 이렇게라도 자리를 피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불법 어선은 최근들어 우리 어민들에게 가장 큰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툭하면 우리 어선의 고기잡이를 훼방 놓기 일쑤이고, 한꺼번에 100여 척이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바람에 먼저 자리를 피해야 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중국의 불법 어선은 어장을 침해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 어선의 어구를 훼손시키거나 통째로 훔쳐가기도 하는 데, 한 번 잃으면 아무리 홍어를 많이 잡더라도 큰 손해를 면하기 어렵다.

심 선장은 동이 트기 전부터 양망을 시작했다. 하지만 홍어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1시간여 동안 땀흘려 한 줄(20고리-한 고리는 90m가량, 낚시바늘은 450여 개)을 당겨 봤지만 홍어는 고작 3~4마리에 불과했다. 주변의 두 줄을 더 당겨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심 선장은 노트를 뒤적였다. 그동안 자신이 기록했던 자료를 보며 새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그는 곧바로 배를 몰았다. 가끔 파도가 높이 솟아오르기도 했지만 빈 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선원들을 생각하면 더욱 애가 탔다.

배를 몰 때마다 심 선장이 느끼는 건 눈으로 보는 거리와 실제 운행시간의 차이다. 눈으로 1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듯한 거리도 바람이 잡고, 파도가 잡으면 20분이 걸리고 30분이 소요되기도 하는 것이다.

‘흑산홍어 명맥 잇기’ 자부심

영진호는 이전 장소에서 한 시간을 더 달린 후 닻을 내리고 투망부터 했다. 파도가 적당한 높이로 오르내리며 물비늘을 보이고, 기온도 오후가 되면서 적당히 낮아지는 것이 기대감을 갖게 했다.

영진호는 다시 이전에 깔아놓았던 주낙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선장실에서 선원들의 손끝을 주시하던 심 선장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빈 바늘만 연신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 선장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직 때가 이른가?’ 심 선장은 원망의 시선으로 먼 바다를 응시했다.

그 때였다. 마침내 홍어 한 마리가 보였다. 암컷에다 크기도 제법 실한 것이 그동안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마리, 두 마리, 또 한 마리…. 한 번 모습을 보인 홍어는 잇따라 갑판 위에 쌓여갔다. 심 선장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영진호가 이번 출항에서 잡은 홍어는 120여 마리에 달했다. 11월의 성과 치고는 양호한 편이었다. 심 선장은 출항한 지 사흘만에 예리항으로 방향을 잡았다.

“5~6년 전쯤이었나. 그 때는 대단했어. 같은 장소로 네 척인가 나갔는데, 고기가 떼로 지나간 거야. 척당 600~800마리 정도 잡았고, 영진호도 1000마리 넘게 잡았던 것 같아. 어찌나 많이 올라오는지 팔이 심하게 아플 정도였다니까.”

심 선장은 홍어를 잡는데 대한 자긍심이 있다. 칠레 등 수입산 홍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품질이 훨씬 우수한 흑산홍어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 때는 홍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낮아져 홍어잡이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수입산이 식탁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우리 홍어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한 길에만 몰두하게 만들었다.

“칠레산은 껍질을 못먹어. 뼈도 억세서 날 것으로 못먹는다고. 흑산도산은 씹어서 먹거든. 홍어의 식감은 흑산도산이 찹쌀과 질좋은 멥쌀 사이라면 칠레산은 보리밥과 같아. 내장도 갈라서 찌개를 만들어 먹으면 기가 막히다구. 그 뿐인가. 안강망으로 잡은 것은 잡고기가 섞여 있는데다 배부터 상처가 나있거든. 반대로 흑산도 홍어는 내장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해 보관도 용이하다고.”

매번 선원들에게 고생한 만큼 충분히 보상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바다 속은 바다만이 알 수 있다’는 게 심 선장의 지론이다. 오늘은 설령 원하는 만큼 잡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내일은 반드시 만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도 잃지 않고 있다.

심 선장은 태풍특보가 없다면 내일 다시 영진호에 오를 것이다. 남도의 대표 먹거리 흑산홍어를 찾아서….

홍어의 역사

흑산도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흑산도의 예리패총은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 유적으로 평가되는 곳이다. 이 곳은 현재 해수면과 불과 30여 m 떨어진 곳으로서 1954년 국립박물관조사단에 의해 발굴된 뒤, 1967년 서울대학교조사단에 의해 조사됐다.

유물은 주로 자갈층과 패각층에서 출토됐다. 종류로는 토기조각과 석기류가 있다. 석기류에는 날 부분을 마연한 간돌도끼 마제석부(磨製石斧) 외에도 뗀돌도끼 타제석부(打製石斧)·흑요석편(黑曜石片) 등이 있다. 대부분 자갈로 만든 역석기(礫石器)들이다. 이 유적의 토기는 바탕흙과 형태 등으로 보아 빗살무늬토기계통이며 신석기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진리 지석묘도 눈길을 끈다. 지석묘는 칠락산에서 뻗어 내린 구릉의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다에서 300미터쯤 떨어져 있다. 지금까지 흑산도에서 확인된 유일한 지석묘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4호로 지정됐다. 네모꼴이나 타원형의 덮개돌을 서너 개 정도의 지석이 받치고 있는 형태로 남동에서 북서방향으로 6기가 놓여 있다.

발굴조사를 통해 흑갈색 민무늬토기와 회갈색 토기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인근에서 조사된 선사시대의 조개더미와 더불어 신석기∼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알려주는 자료가 된다. 예리패총과 진리의 지석묘군은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흔적으로서 의미가 크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 거주 흔적

흑산도 예리항의 표지석에는 ‘신석기 시대 사람이 거주한 흔적은 있으나 문헌상 기록은 없고 통일신라시대 828년(흥덕왕 2년)에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당나라와 교역시 중간 기착지로 부각되면서 주민이 거주해왔다’고 기록돼 있다.

흑산도 상라산성 일원에는 상라산성을 비롯한 제사유적, 관사터, 무심사지 등 4개 유적으로 이루어진 복합유적이 있다. 상라산성은 고대~고려시대 국제 해양도시의 기능을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흑산도 읍동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축조한 관방시설로 추정된다. 무심사(無心寺) 터는 통일신라 말기의 유적으로 석탑과 석등이 하나씩 남아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홍어잡이는 언제부터 시작됐으며, 주생산지는 어디였을까.

2009년 민속원에서 발간된 책 ‘홍어’의 ‘선사․고대의 홍어잡이’(김건수)에 따르면 현재까지 발굴된 것을 검토할 때 서해안과 남해안에 밀집 분포됐으며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낚시와 그물에 의한 가오리류와 홍어가 출토됐다고 한다.

홍어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홍어와 가오리의 구분인 듯 하다.

‘선사․고대의 홍어잡이’에 의하면 연구자에 따라 홍어를 가오리류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고, 가오리를 홍어류에 포함시키기도 하여 혼란이 있었으나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가오리과를 홍어과로 개명하는 동시에 기존의 학명을 대폭 정리했다고 한다. 한국산 홍어과 어류는 4속(屬), 11종(種)이 서식 분포하는데 흑산홍어의 학명은 참홍어에 속한다.

홍어류는 연골, 저서성(底棲性) 어류로 우리나라 남서해 및 일본의 중부 이남지역과 동중국해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히 목포, 영광, 인천, 부산 등지에 많고 일본 아오모리현 이남 인근, 동지나해 등에서 많이 잡힌다.

흑산군의 홍어와 관련된 대표적인 저서로는 역시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들 수 있다. 예리항 표지석에 ‘1801년(순조 1년) 신유사화로 손암 정약전이 귀양와서 1816년까지 거주하면서 14년만(1814)에 자산어보를 집필하여 우리나라 해산물 및 어류연구에 한 획을 그은 곳’이라고 씌어있다.

홍도·대흑산도·대둔도·영산도·대장도 등과 함께 흑산군도를 이루고 있는 다물도(多物島)는 한 때 ‘홍어의 섬’이라 부를 정도로 홍어잡이를 많이 했던 곳이다. 1970년대 이전에 다물도에서는 노를 저어 다니며 홍어를 잡는 1톤 정도의 풍선배가 30여 척 있었으며, 음력 동짓달부터 4월까지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흑산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미끼를 끼운 연승주낙을 이용해 홍어를 포획했다고 한다.

주낙으로 홍어잡이를 할 당시에는 어선의 규모가 작아 주로 흑산도와 홍도 인근 해역에서만 조업을 했다. 주낙을 미끼를 사용하기 때문에 미끼용 고기를 따로 잡아야 하고 또 주낙에 일일이 미끼를 끼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노동량을 필요로 하는 방법이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홍어파시가 있을 때면 예리항에는 수백, 수천 척의 배가 몰려들어서 배와 배를 건너 몇 킬로미터를 걸어갈 수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관련 사진 등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흑산면사무소에 걸린 1960년대 ‘조기파시’ 사진을 통해 당시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계기 홍어 소비 활기

흑산도의 홍어잡이 어로방식은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1975~1976년 무렵 대청도에서 내려온 어선들이 미끼를 쓰지 않고 ‘󰠈’자 모양의 낚시만을 사용하여 홍어를 포획하는 이른바 걸낙어법을 전파한다. 당시 백령도 근해는 군 작전상 여러 가지로 규제가 많아 조업에 조업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보다 수월하게 조업할 수 있는 흑산도로 근거지를 이동한 것이라고 한다. 걸낙어법의 도입 이후 흑산도의 홍어잡이 어선들이 40여 척으로 늘어났다가 남획과 불법 고데구리(소형기선 저인망) 어선들의 홍어서식지 파괴, 그리고 중국 어선들의 증가로 인해 홍어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면서 1991년에는 두 척만이 조업을 했다. 1993년부터 1997년에 이르는 동안 홍어잡이 어선이 한 척만 남게 되자 신안군에서는 ‘흑산도 홍어잡이 계승 보전사업’을 실시,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흑산도 주민들은 침체기를 겪었던 홍어가 다시 활기를 찾은 계기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는다.

지난 1992년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이후 영국에 머물 때 홍어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공수해 먹었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홍어는 서남해안에서도 잡히지만 유독 흑산도산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흑산도 인근 해역의 수심이 80m 이상으로 깊고 뻘이 많아 홍어 서식에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알을 낳기 위해 영양을 잘 섭취한 상태에서 몰려든 홍어이기 때문에 타 지역 홍어에 비해 찰지고 부드러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홍어를 즐기는 것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홍어를 직접 잡는 흑산도 인근에서는 신선한 홍어를 많이 먹는다. 지금은 흑산도에서 목포까지 2시간 안팎이면 닿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도 그렇듯 과거에도 목포는 배를 타고 흑산도와 인근 섬으로 나서는 출발지이자 바다에 발 담근 섬이 뭍으로 들어서는 관문이기도 했다.

흑산도 인근에서 잡은 홍어는 목포에 모여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목포에서 팔고 남은 홍어는 호남의 젖줄, 영산강 하구에 자리한 영산포로 향했다. 흑산도에서는 싱싱한 홍어를, 목포에서는 중간 정도 삭힌 홍어를, 영산포에서는 푹 삭힌 홍어를 주로 먹게 된 이유다.

홍어와 함께 사는 사람들

11월 말 흑산도 수협 위판장. 이곳은 수협 직원들이 홍어배가 들어올 때마다 고기 바구니를 옮기느라 숨고를 틈이 없었다.

직원들은 일일이 무게를 재고 홍어의 상태를 확인했다. 우선 암치(암컷)와 수치(수컷)를 구분하고 껍질에 상처가 많은 홍어는 배가 위로 오게 뒤집어 놓았다.

홍어는 크기에 따라 암치는 6등급, 수치는 3등급으로 나뉜다.

암치의 경우 8㎏ 이상 1등급, 7㎏ 이상 2등급, 6㎏ 이상 3등급, 5㎏ 이상 4등급, 4㎏ 이상 5등급, 3㎏700g 이상이 6등급이 된다. 수치의 경우 암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아 5㎏ 이상이 1등급, 4㎏ 이상이 2등급, 3㎏300g 이상이 3등급에 각각 해당된다.

등급별로 나눠 줄을 세우자 홍어의 코에 바코드가 부착됐다. 선주명과 무게, 위판날짜 등을 알 수 있는 바코드는 흑산홍어만이 가지는 인식표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매가 시작됐다.

흑산도는 섬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홍어와 인연을 맺고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흑산도의 홍어잡이 어선은 모두 6척. 이들이 흑산도 연안에서 잡는 홍어는 한 해 120여 t이며 위판 금액은 연간 40억 원 정도에 이른다.

흑산홍어는 수협 위판장을 통해서만 거래된다. 수협 위판장에 홍어가 도착하면 수협 직원 5~6명이 함께 움직인다. 이들은 경매사와 경매보조사, 바코드 부착 업무 등으로 나뉘어 일을 처리한다.

수협 흑산지점 김용남(52) 과장은 흑산도가 고향으로, 이곳에서만 11년째 일을 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김 과장은 “수협에서는 어민들이 힘들게 잡은 홍어를 한 데 모아 제 값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좋은 제품이 소비자에게 공급되도록 홍보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민들이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는 함께 흡족하지만 불법 중국 어선으로 인해 어구를 분실하거나 하면 안타깝다.”면서 “어구 분실 때는 금액으로도 손실이 발생하지만 고기도 잡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수협 흑산지점 유통사업과 김병철(35)씨는 “홍어 가격은 중국 어선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기상 여건이 어땠는지에 따라 좌우된다.”면서 “태풍이나 눈 등의 영향으로 배가 출어에 나서지 못하면 당연히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또 “12월까지는 고객들의 소비가 아주 많은 시기가 아니어서 주문량이 크게 밀려있지는 않다.”라며 “주문을 받으면 최대한 빠르게 소비자에게 도착해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보내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흑산홍어는 겨울에 먹어야 제 맛”

위판장에서 선별된 홍어는 곧바로 경매에 부쳐지고 수협 중도매인 20여 명을 통해 육지의 홍어 소매상과 음식점, 식도락가에게 전해진다.

중도매인으로 5년여 동안 활동 중인 이영무(58)씨는 “흑산홍어가 널리 알려진 가장 큰 계기는 소비자의 입맛이었다.”면서 “먹어보면 다른 지역 홍어에 비해 찰지고 좋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흑산홍어는 겨울에 활발하게 활동해 많이 잡히기도 하지만 이 때가 알집이나 내장 등에 영양분도 많아 맛도 최고에 달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예리항에는 홍어를 파는 식당이 밀집해있는데 이 중 일부는 중매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홍어 위판이 있는 날이면 중도매인은 경매로 갓 사온 홍어를 전국 각지로 택배 보내느라 분주해지는데, 이 때는 흑산도에 하나뿐인 우체국도 함께 바빠진다.

예리항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흑산도항 여객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우리식당 할머니집이다. 손금순(83) 할머니가 40년 넘게 운영해 온 이 집은 10평 내외의 작은 식당으로 허름해보이지만 세월의 내공이 쌓인 맛과 넉넉한 정이 어우러져 홍어 마니아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다만 할머니는 최근 건강이 안좋아 광주에 머물고 있으며, 가게는 당분간 목포에서 생활하고 있는 딸이 맡고 있다.

손 할머니는 전화통화에서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항상 정성껏 대접하려고 노력했다.”라며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흑산도로 다시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흑산도를 찾지 않고 흑산홍어를 맛보려면 신안군 수협 흑산지점이나 포털사이트에 나와 있는 중매인들의 주소를 검색해 연락하면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홍어의 고장 명성 잇는다

신안군은 홍어의 명성을 잇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군은 흑산도에서 매년 축제를 개최해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으며, 체계적이며 양질의 홍어를 공급하기 위한 생산이력제 등을 실시 중이다.

신안군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개최하고 있는 대표 행사는 홍어축제. 지난 2007년부터 꾸준히 행사를 치르고 있으나 지난해의 경우 세월호 사고로 취소했다. 이에 앞서 2012년은 예산 미확보로, 2009년은 신종플루 발생으로 각각 취소돼 아쉬움이 남는다.

제6회 행사(2013년)는 5월 4일부터 이틀간 흑산면 예리 물양장에서 치러졌다.

이번 축제에는 홍어배 등 어선에 오색기와 만선기를 달고 해상퍼레이드를 펼친 것을 시작으로 1004인분 홍어회 무침만들기, 출어하는 어선의 안전조업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 흑산면민 노래열전, 객석 참여 한마당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부대행사로는 흑산홍어전시, 홍어시식회, 길거리사진전시회를 비롯 흑산도에서 생산되는 수산특산품 등을 전시, 판매하며 다양한 먹거리 장터도 함께 운영했다.

제5회 행사(2011. 5. 6~7)는 흑산홍어 전시관, 홍어시식회, 홍어무침, 풍어제, 홍어 위판 행사, 홍어가요 열창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관광객 체험행사를 제공했다.

흑산홍어 축제에 앞서 가정의 달을 맞아 경로효친 사상 고취와 홀로 사는 노인 보살피기 등 흑산면민의 날을 개최해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흑산홍어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축제기간동안 여객선사로 하여금 목포와 흑산간을 운행하는 쾌속선 요금 20%를 할인하는 이벤트도 곁들여졌다.

제4회 행사(2010. 9. 11~12)는 홍어시식회, 홍어무침, 흑산홍어 요리전시관, 풍어제, 홍어위판행사, 홍어가요 열창, 흑산홍어 전시관, 흑산홍어 어구정리 체험 등 볼거리와 관광객 체험기회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는 선조 때부터 바다를 생계삼아 거친 파도와 싸우다 불의의 사고로 고인이 된 어업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행사기간동안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씻김굿과 위령제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쾌속선 요금 20% 할인 행사도 펼쳐졌다.

제2회 행사(2008. 10. 11~12)는 홍어시식회를 비롯 흑산홍어회무침, 흑산홍어전시관, 즉석 홍어경매, 길놀이, 용왕제, 해군선상체험, 홍어가요열창, 홍어○×퀴즈, 불꽃놀이 등 흑산홍어의 맛깔스러 맛과 체험문화를 함께 보여주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또 흑산도에서 생산되는 전복과 우럭, 자연산 해초 등 흑산도의 대표 수산특산품 판매장 및 먹거리장터도 함께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특히 축제기간동안 흑산도 갯바위에서 흑산도를 찾는 낚시 동호인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흑산도 홍어컵 갯바위 낚시대회’를 개최해 축제의 흥을 돋우기도 했다. 첫 회 행사(2007년)는 10월 6일부터 이틀간 치러졌다. 제1회 흑산홍어 축제를 앞두고 흑산도내 20여 군데 숙박업소 예약이 거의 끝나는 등 전국적인 관심이 쏠려 축제의 전망을 밝게 했다.

축제에는 홍어 무료 시식회와 홍어 썰기 등 다채로운 체험행사가 마련됐으며, 7일에는 홍어잡이배가 대거 참가한 홍어 위판행사가 이색 볼거리로 참가자들의 발길을 끌었다.

생산이력제․자원회복사업 등 주력

홍어축제와 함께 흑산홍어의 명성을 잇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도 실시되고 있다.

홍어 생산이력제는 흑산홍어의 생산, 위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생산이력관리시스템’을 운영하는 제도로 2009년 10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생산이력제는 흑산홍어의 브랜드 가치 향상은 물론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생산지 표시를 엄격하게 하고자 홍어잡이 어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게 됐다.

흑산홍어를 사는 소비자들은 홍어 몸체에 붙여진 바코드 번호를 신안군 인터넷 홈페이지나 자체 홈페이지(www.shinan-heuksan.com)에서 확인하면 생산일자와 홍어잡이 어선 및 흑산홍어의 생산, 위판 여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신안군은 흑산홍어에 대한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권리화 지원과 박스, 포장디자인, 캐릭터, 슬로건을 개발하는 등 브랜드 명품화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가 참홍어 어족 보호를 위해 2007년부터 시작한 참홍어 자원회복 사업도 눈여겨볼만하다. 참홍어의 회유경로와 서식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인공위성을 이용한 전자표지 방류 조사도 실시 중이다.

서해수산연구소는 참홍어의 이동 경로와 성장률 등을 조사하기 위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스파게티처럼 생긴 재래식 표지표(노란색 13㎝) 926개를 참홍어 몸에 부착, 흑산도와 대청도 연안에 방류한 바 있다. 표지표에는 고유번호와 서해수산연구소의 전화번호를 기재, 방류된 참홍어를 다시 잡았을 경우에 신고 할 수 있도록 했다.

서해수산연구소는 2009년까지 표지 방류한 참홍어 926마리 중 2.8%인 26마리가 다시 잡혔으며, 최대 방류기간은 386일, 최대 성장률은 체반폭 2.7㎝/월, 평균 성장률은 1.5㎝/월(암컷 1.6㎝, 수컷 1.3㎝)로서 암컷이 수컷에 비해 성장이 빠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흑산도 앞바다에서 방류한 참홍어는 주로 흑산도보다 위도가 높은 위쪽으로 이동하였으며 멀리는 군산 앞 바다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흑산홍어에 대한 홍보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극단 갯돌이 지난 2013년 마당극으로 선보인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는 표류를 통해 세계에 눈을 뜬 파란만장한 여행기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홍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간접효과를 얻기도 했다.

군은 또 2013년 조선시대 섬사람들의 민권운동가 김이수(1743~1805)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동화 <흑산도 소년장군 강바우>의 발간을 지원한 데 이어 <홍어이야기>, <소금이야기> 등 지역 역사문화자원을 소재로 한 창작지원을 지속할 방침이다.

흑산권의 교통망과 시설사업도 병행된다.

군은 기상악화로 자주 발길이 끊겼던 신안 압해~흑산 항로에 2,200톤급 전천후 카페리선이 1월 중 취항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흑산 어업인들은 양질의 어패류를 생산하고도 적기 수송을 위해서는 어선으로 목포까지 개별 운송해야 하는 등 시간적,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왔으나 이번 취항을 계기로 물류수송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노후화가 심한 흑산 여객터미널도 예산 36억원을 확보, 연중 신축할 방침이다.

대동문화 86호 [2015 1,2월호]

김만선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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