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제자를 바라본다. 스승은 “내가 제자를 더 좋아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35년의 세월동안 단 한 번도 변함없이 사제지간의 인연을 오롯이 가슴과 머리에 품은 채 한 미술관에 서는 풍경은 어느 그림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더욱이 사제지간의 균열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작업 방식도, 경향도 서로 다르지만 인간적인 정과 인연으로 무등산 자락의 한 미술관에서 나란히 의기투합, 전시를 열고 있는 것이다. 이 겨울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어디 자연만 얼어붙을까. 우리들의 삶이 심한 한기를 느낀 것은 이미 오래됐다. 이들 스승과 제자의 의기투합은 단순한 전시라기보다는 오랜 인연에 대한 또 다른 온기로 읽혔다.

지난해 12월 20일 개막, 오는 3월 4일까지 무등현대미술관에서 '강과 유가 함께'라는 타이틀로 영암 출신 유승우 화백(전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과 신안 출신 그의 제자 강태웅 작가(중앙대 예술대학 교수)가 전시를 열고 있다.

타이틀에서 스승의 제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직감할 수 있다. 스승은 제자를 기꺼이 빛나도록 앞에다 방점을 찍어놓은 것이다.

유 화백은 "특히 '유'가 '강'을 좋아한다. 말은 안 해도 교감이 되고 통한다. 그래서 내가 '강'한테 그랬다. '강'하고는 평생 한번 쯤 전시를 하고 싶었다"고.

제자는 “늘 한결같은 선생님의 화업에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걱정이 앞서는 눈치다.

전시실도 사이좋게 나눴다. 스승은 '짓'(Mind Gesture)이라는 주제로 1층에, 제자는 '순환'(Circulation)이라는 주제로 2층에 작품을 내걸었다.

12월 21일 잠시 들른 전시장 곳곳에도 스승과 제자의 진한 정이 느낌으로 다가왔다.

강 작가가 중앙대와 인연을 맺기 전 유 화백을 찾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밝힌 것이 인연의 시작이 됐다.

1980년대 민주화시대의 소용돌이 속에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던 강 작가는 스승에게도 믿음직스런 제자였다.

스승과 제자는 중앙대 외에도 사단법인으로 지역의 대표적 미술그룹으로 자리매김된 ‘에뽀끄’ 활동을 통해 사제지간의 정이 한층 더 깊어졌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이 인간적인 교감이라고 하는 공통분모로 묶여져 있지만 작품이 던져주는 메시지 또한 다른 듯하면서도 똑같다는 생각이다.

‘짓’을 하는 것도. ‘순환’을 바라는 것도 불안과 우울, 정신보다는 물질이 넘치는 현 시대에 대한 일갈을 위한 것일게다.

40년 동안 추상 외길을 걸어온 스승은 대학을 뒤로 하고 1990년대 중반 낙향해 장흥 부산면 탐진강변 폐교(금자분교)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이 무렵엔 스승은 구체적 작업보다는 오랜 도시생활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데 주력했다. 이후 장흥 천관산 밑 폐교(북초)를 거쳐 지난 2005년부터 곡성군 겸면 소재 페교(마삼분교)로 옮겨와 머물고 있다. 모든 문명의 그늘을 지워내고 달랑 전화만 있는 그곳에서 박스나 각종 포장지 등 버려진 것들을 다시 미술품이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스승이 버려진 것들을 소소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삶 때문이다. 어머니는 낡은 것이나 버려진 것들을 모두 필요한 것으로 뚝딱 만들어냈다. 어머니가 버리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이처럼 버려진 것들을 소재화하는 데는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다는 설명이다.

“자꾸 뭔가 이미지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 무심과 무념, 무아가 자동적으로 흘러나온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70여 점은 모두 이런 그의 정신이 스며있다.

그러면서도 짙은 아쉬움을 내비친다. “1980년대 한울타리에서 마음의 아픔, 시대의 아픔을 나눴다. 예전에는 2인전이니, 3인전이 많았는데 다시 제자와 미술관에서 작품으로 만나기 어려울 듯 싶다.”

이에 반해 제자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추구한다. 여러 가지 재료에 색상을 입힌다. 국내에 작업실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은 제자는 학기중 연구실이나 학생실기실을 돌며 작업을 펼친다. 이번 작품들도 그랬다. 방학 때는 뉴욕 작업실에서 보낸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작업을 해야하는 분주한 일상 속 그의 작업 키워드는 모두 자연을 통한 인간성 회복에 모아진다. 타이틀 ‘순환’의 종착지가 바로 그 지점인 셈이다.

그가 구사하는 순환에는 우리의 일상사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미국, 중동 등 세계 각국의 신문지를 오려붙이고 콜라주하는 방식을 구사한다. 이번에 출품한 22점이 모두 그렇다. 신문을 활용하는 것은 지구촌 사람들의 삶이 순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제자는 14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하느라 그곳에서 보냈다. 유학동안 제자는 스승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손편지를 받고 타국에서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견뎠다. 이번 전시는 제자를 생각하는 그 때 손편지의 완결판으로 읽혔다.

유 화백의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단 한 줄로 정리됐다. “안보면 보고 싶고….”

대동문화 86호 [2015 1,2월호]

고선주 광남일보 문화부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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