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천은 광주 사람들의 뜨거운 심장 한가운데를 적시며 흐른다. 1929년 광주학생 독립운동과 1980년 광주항쟁의 정신적 원천인 광주천은 민족정신과 민주주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등산과 광주천은 광주시민의 살아있는 영혼이고 양심이며 프라이드다.

내가 광주천에 처음 발을 적신 것은, 6․25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1952년 가을이었다. 6․25 때문에 학업을 중단했다가, 광주학강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 되어 담양에서 광주로 옮겨왔다. 광주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은 광주천 상류, 증심사 계곡물이 가파르게 흘러내리는 배고픈다리 부근이었다.

이 때 광주천을 따라 학교에 다녔고 어른이 된 후로는 양림동과 양동에서 광주천을 끼고 살았다. 그리고 2012년 졸작 <타오르는 강> 8․9권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꼬박 하루 걸려 배고픈다리에서 하류 끝까지 걸어보았다.

‘굽이굽이 용틀임하듯 물이 굽이돌아 흐르는 널따란 광주천에는 여기저기 하동들이 물장구를 치며 멱을 감고 있었다. 투망질로 물고기를 잡는 사람도 띄엄띄엄 있었고 상류 쪽 팽나무 그늘 밑에서 한가롭게 낚시질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둑도 없는 천변에는 팽나무며 미루나무 실버들나무들이 숲을 이루었고 물 가까이에는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한 때 이곳에서는 의병을 처형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닷새 만에 광주 작은 장인 부동방장이 선다. 물줄기를 막은 보가 있고 보 아래쪽에 작은 쪽배가 한가롭게 떠 있는 큰 웅덩이가 보였다. 주변에 팽나무와 버들나무가 우거져 있는 웅덩이 가장자리에 수상 누각을 지어놓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광주천 건너 서쪽 야트막한 산자락 끝 마루턱에 세워진 양파정이 헌걸스러웠다.’ (졸저 <타오르는 강>에서.

1923년 불로동 부근 광주천의 모습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지금 어디에서 이렇듯 자연과 사람이 한데 어울리는 광경을 볼 수 있겠는가. 숲을 이룬 천변 둑에 낚시꾼도 보이고 꽤 널찍한 모래사장도 펼쳐졌다. 1908년에는 의병장 기삼연이 이곳 서석교 아래 백사장에서 처형되었다.

광주 작은 장이 열렸던 이곳은 1919년 광주 3․1만세운동 현장이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체가 된 성진회가 조직되었던 여관과도 가깝다. 또한 부동방장에서 가까운 곳(구시청)에는 20년대 광주사회운동의 중심적 공간이 되었던 흥학관(興學館)이 있었다.

60~70년대 명물 ‘뽕뽕다리’ ‘판자촌’

광주에는 두 곳의 장터가 있었다. 지금의 양동시장을 큰 장이라고 했고 불로동 부근 천변을 부동방장 혹은 작은 장이라고 했다. 작은 장은 충장로 금동 불로동 양림동 학동 등 중심지를 끼고 있어 큰 장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까지 만해도, 학동 기마장 앞 광주천변에 규모가 꽤 큰 나무전이 있었다. 나무꾼들이 무등산에서 해온 땔감이다. 이 나무전은 연탄이 보급되면서 자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작은 장터 부근에는 조탄보를 막아 쪽배를 띄울 정도로 큰 물웅덩이를 이루었으며 아름다운 누각도 있었다. 양파정 건너편 물 가운데에는 석서정(石犀亭)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이 정자는 고려 때 광주목사 김상(金賞)이 광주천 물길을 바로잡아 홍수를 막기 위해, 양파정 앞 물 가운데 석축을 쌓고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지은 것이다. 석서정 양쪽으로는 다리를 놓아 건널 수 있게 했다. 목은 이색이 기문을 짓고 첫머리에 光之州里라고 하여 처음으로 광주를 ‘빛의 고을’이라 칭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60~70년대 광주천의 명물은 두 곳의 뽕뽕다리였다. 광주천 동쪽 임동 쪽에서 발산과 광천동으로 건너갈 수 있도록 구멍이 뽕뽕 뚫린 철판지 다리를 놓았다. 그 무렵 전남방직과 일신방직공장이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에는 수많은 여공들이 이 뽕뽕다리를 건넜다. 학동과 방림동을 연결하는 곳에도 80년대 학림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뽕뽕다리가 있었다.

지금은 방림2동주민자치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이곳에 뽕뽕다리 마을 전시관을 만들고 길이 6미터의 뽕뽕다리를 재현하여 향수를 달래고 있다. 뽕뽕다리 시절 불로동의 부동교는 목교라서 뛰어갈 때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광주천 두 곳에 뽕뽕다리가 있을 무렵인 70년대는 광주천에 콘크리트로 빨래터를 만들기도 했다. 아낙들이 수십 명씩 줄을 지어 쪼그리고 앉아서 빨래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빨래터에서는 10원을 주면 빨래를 삶아주기도 했다.

또 하나의 광주천 명물은 판자촌이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양동 광주천변에는 백여 채가 넘는 판잣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 판자촌이 한 때는 양동시장의 중심상가 역할을 했다. 큰 비가 올 때마다 판잣집이 물에 떠내려갔으나 곧 다시 짓곤 했다. 사진작가 강봉규씨가 양동 판자촌을 촬영하여 사진화보집에 실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일도 있었다. 70년대 초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이곳의 판잣집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역사와 문화가 함께 흐르는 곳으로

광주천이 오염되기 시작한 것은 도시근대화라는 미명으로 도시개발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양동시장 쪽이 복개되어 하천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고 아파트와 대단위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오폐수가 넘쳐흘러 물이 썩기 시작했다. 물론 그동안 정화사업으로 물이 깨끗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유로운 마음으로 발을 담그고 앉아 강의 흐름을 보면서, 켜켜이 쌓인 피로를 헹구어낼 정도로 성큼 다가가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손을 적시고 싶을 만큼 청결하지 못하고 자연의 생명력이 넘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민들이 여유롭게 다가가고 싶도록 가꾸어야 한다. 광주천을 보면서 시를 읊고 노래하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강, 역사와 문화가 함께 흐르는 강으로 되살릴 수는 없을까.

광주천에는 다리도 많다. 하지만 어딘가 어설프고 조잡하여 광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파리 세느강에는 수많은 다리가 있지만 미라보 다리 하나로 파리의 브랜드가 되고 있다. 광주도 단 하나만의 다리라도 제대로 만들어서 광주의 명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광주천의 역사적 흔적들을 복원하여, 무등산, 아시아문화전당, 양림동, 충장로, 금남로,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등을 문화벨트로 연결할 수는 없을까. 그러자면 40년 넘게 콘크리트에 덮여있는 양동복개부터 걷어내야 한다. 광주천이 역사와 함께 흐를 수 있도록 문화를 되살린다면 광주정신은 더욱 빛나지 않을까.

대동문화 86호 [2015 1,2월호]

문순태 소설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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