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골목길 걷기,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이어본다. 동네의 나무와 숲, 놀이터, 주요 건물과 지붕의 색깔, 담장, 축대, 교차로, 건널목, 거리의 간판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본다.

골목을 이으면서, 동네를 돌면서 우리 동네의 동서남북을 파악하고,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표정을 살펴본다. 동네를 돌면서 우리 동네의 나무와 숲의 건강상태를 파악한다. 건널목을 건너면서 장애우 입장에서 꼼꼼히 살펴본다.

아이들과 손잡고 돌면서 내가 자라고 동네도 함께 자란다는 생각을 갖도록 도와준다. 함께 도는 동네 한 바퀴는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동네사람, 나무와 숲, 날아다니는 새. 흐르는 시냇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중한 관계라는 동네공동체의식을 갖는다. 골목길 걷기 편린(片鱗)들이다.

담쟁이 품격

남문 밖, 옛날 이 근처에 성황당이 있었단다. 학산 산자락을 목 자른 경전선 철길 양편, 왼쪽 대학병원은 전남대학교이고, 오른쪽은 조선대학교 병원이다. 도시치유, 도시재생 진료다. 푸른길 학마을을 걷는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 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 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의 시다. 격물치지(格物致知), 담쟁이의 리더십을 배운다. ‘함께’를 배운다.

1등보다 함께

토끼와 경주하여 거북이가 또 이겼다. 지난번에 승리했을 때는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박수를 쳐주는 이가 없다. '왜, 나에게 박수가 없는 것일까?' 거북이는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신사(愼思)에 들어갔다. 신뢰, 배려, 협력, 책임 .'맞다, 토끼를 깨웠어야 했다' 시대정신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근면, 성실이 핵심가치였고, 지금은 배려와 협력, ‘함께’다. 덮게 열린 용봉천 모래톱에는 물오리 세 마리가  노닐고 있다. 곧 있으면  용봉천 모래톱에서도 거북이가 오수를 즐길  것이다. 무등경기장 보수공사가 끝나면 봉정산 토끼가 무등경기장에서 재미난 협동경주를 하자고 용봉천 모래톱 거북이를 찾을 것이다. 거피취차(去彼取此), 경쟁보다는 협력이다. 관계성의 성찰이다.

번진 학습열기

그 해 5월 이후, 30년하고도 훌쩍 몇 년이 더  지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광주의 5월을 깊게 모르고 있다. 구고심론(求古尋論), 구하라. 찾아라. 그것을 구하고 찾으려면 땅을 최소한 사람 키 열배, 옛날 어른들 말씀으로 열 길 정도는 파야 물이 나온다는 ‘구’(求)라는 한문글자 의미를 광천동 성당 앞에서 골목연찬을 통해 알게 되었다.

5월 첫 토요일에, 그 당시 들불 열사들이 야학했던 광천동 성당이다. 성당을 둘러보고, 삼화아파트를 둘러보면서 구하고 찾은 것은 광천동 들불야학 학습열기가 고스란히 80년 5월 그 역사의 한복판으로 번져갔다는 것이다. 해만 지면 분수대광장 라운드학습이 열린 도청 앞으로, 도청 앞으로-,

주민에게 배우기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굽이굽이 아홉 굽이 구슬 구멍, 공자는 선물 받은 구슬을 도무지 실로 꿸 수가 없었다. 공자는 여러차례 궁리 끝에 뽕나무 밭에서 일하는 아낙에게서 구슬 꿰는 법을 배웠다. 공자천주(孔子穿珠), 공자가 마침내 구슬을 뀄다는 이야기다. ‘마을 만들기는 주민에게서 배운다.’ 이게 마을학습의 핵심이다. 바랑산 아래 소태실 서경이 할머니를 세 번이나 만나고 나서 골목이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으로 좋은동네 만들기 현장 교실임을 깨달은 것이다.

가물 논 물대기

가로질러 시장보러 가는 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을비가 내린다. 예술의 거리를 걸으며 보고 듣고, 대인시장에 들러 보고 듣고, 예술의 거리에서 대인시장으로 오면서 가면서 떠오른 생각은 가물 논에 물대기, 제수한답(制水旱畓)이다. 시장에는 사람들이 몰려야한다. 그런데 저절로는 안 온다. 감나무 아래서 입 벌리고 있다고 홍시는 저절로 입으로 안 들어온다.

뉘 탓 말고, 시장공동체 주체들이  함께하기다. 시민공감대자아내기 부터다. 초겨울 추운 날에도 중앙초등학교 담장은, 담쟁이는 오르고, 아이비는 내리면서 함께 푸르게 푸르게 담장을 덮고 있다. 대인동 사법서사회관 건너 제봉로194번길 옆, 황금빛을 찬란히 발하고 있는 도심 속의 저 모과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재래시장, 대인시장 활성화의 메시지다.

섣부른 개발은 악행

우산의 푸른 풀, 우산의 나무들, 우산의 숲 사람들은 도끼로 우산의 나무를 마구 잘라내고, 아침이슬 먹고  우산에 자란 새싹을 양들이 마구 뜯어먹고, 이런 민둥산이 되는 것을 맹자는 이를 우산지목(牛山之木), 악행이라 했지만. 도시숲 가꾸기를 통해서 인간 본래의 성선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다. 푸른길 동쪽 저만큼, 중흥3동에 와우산, 사람들은 ‘당뫼'라 한다. 근처 말바우 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와우산은 도시화로 산자락이 모두 잘려나가고 민둥산이 되어 몸뚱어리만 남았다. 광주의 교훈 우산지목이다. 도시철도 2호선이 남광주 푸른길을 지날 계획이란다. 고가철로 만든다고 콘크리트 기둥이 세워지고, 주차장 만든다고 우람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후세 사람들이 볼 때 광주악행을 저지를 계획을 세운다. 우리가 푸른길을 함께 걷자고 하는 것은, 단순히 나무를 심고 가꾸는 도시재생운동을 넘어, 본디 선했던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공동주택 재개발 지표

성큼성큼 학(鶴)과 뒤뚱뒤뚱 오리(鳧)다. 원래대로 학은 다리가 긴 학이어야 하고, 오리는 다리가 짧은 오리여야 한다. 그들에게 다리가 길다는 것과 짧다는 것은 그게 당연한 이치고 도리다. 학의 개성이고, 오리의 매력이다. 다리가 오리보다 길다고 잘라버리면, 다리가 학보다 짧다고 억지로 이으면, 이치도 도리도 아니다.

근심(憂)이고  슬픔(悲)이다. 이치나 도리에 어긋난다. 학이 아니고, 오리가 아니다. 거시기 머시기 왈가왈부에 앞서 원천 무효다. 재개발을 앞둔 운암동 주공3단지는 건너편 1단지와 2단지 재개발에서 얻은 교훈은 단학속부(斷鶴續鳧)다. 재개발, 다시 다듬는 삶터에 근심과 슬픔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최소한 지금 상태의 집 반 나무 반을 살릴 일이다. 이게 공동주택 재개발 지표다.

성직자의 선비정신

광주천과 극락천의 분수령 치마봉을 감고 도는 방림동 오방로를 걸었다. 고려를 자빠뜨리고 새 왕조를 세우는 일에 가담할 뜻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방원은 포은의 마음을 떠본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렇게 <하여가>로 회유했으나, 포은은,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렇게 <단심가>로 유혹을 뿌리친다.

개혁보다 도리를 지키는 질서유지가  더 먼저라는 선비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역사의 큰 장면이다. 해방 정국, 백범 김구선생은 광주의 오방 최홍종 목사를 찾아와 구국의 정치현실에 참여하기를 청했다. 오방은 정치참여 보다는 성직자로서 구국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사양하자, 백범은 오방의 고매한 인품에 감동하고, 붓으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썼다.

대동문화 87호 [2015 3,4월호]

최봉익 공동체 모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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