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부터 3월 초순까지 나는 맨하탄에 체류하고 있었다. 미국 국토안전부가 압수 보관중인 대한제국 국새와 조선왕실 어보의 반환문제를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문화재청의 예상에 의하면 이것들은 2014년 6월경 한국으로 반환될 것이라고 했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4년 상반기 한국을 방한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2013년 11월 미국으로 갔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한제국 국새를 우리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는 프로젝트 '응답하라 오바마–왕의 귀환'편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병합당할 때까지 사용되었던 임금의 도장은 왜 미국까지 흘러들어간 것이었을까?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 황제로 즉위한 뒤, 황제국의 권위에 알맞도록 거북이로 만든 손잡이를 용으로 변경함과 동시에 황제지보를 비롯한 국새를 새로 만들어 사용했다. 그리고 이 국새는 1907년 고종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한 순종에게 전달되었다. 1910년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이 강제병합되자 조선총독 데라우치는 순종이 사용했던 국새를 빼앗아 일본 궁내청, 이른바 천황궁으로 보냈다.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고 일본에 종속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조치였다. 1946년 8월 15일 맥아더는 해방 1주년 기념식에 미군정청 하지 중장을 통해 '조선의 자주독립을 바라 마지않는다'는 친서와 함께 황제지보를 비롯한 대한제국 국새를 다시 돌려주었다. 일본으로부터 37년 만에 되돌아온 국새는 해방과 자주독립의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제자리를 찾은 듯했던 국새는 다시 비운의 운명에 사로잡힌다. 1950년 6·25전쟁 기간 중 다시 분실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옥새, 제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황제지보’와 국가권력을 상징하는 ‘대한국새’였다.

비운 사로잡힌 '황제지보'와 '대한국새'

2010년 미국 메릴랜드에 위치한 미국 국가기록보존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미국 국무부 관리가 작성한 전쟁 중 서울에서 발생한 '미군의 문화재 절도 사건'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아델리아 홀 레코드'라고 불리는 이 문서에는 전쟁기간 중 미군이 종묘와 궁궐에서 '임금의 도장'을 훔쳤고, 한국 정부가 47개의 옥새를 워싱턴의 주미한국대사관을 통해 분실신고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를 근거로 미국 내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옥새의 흔적들을 조사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LA카운티 박물관에 조선 8대 임금 중종의 왕비 어보가 보관됐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때부터 수년간 나는 문정왕후 어보의 반환을 위해 노력했고, 지난 2013년 9월 박물관측은 6·25 전쟁 당시 분실된 도난품이란 사실을 인정, 전격 한국으로 반환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LA카운티 박물관이 한국으로 조선왕실의 옥새를 반환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뒤, 미국 골동품상이 또 다른 옥새의 행방을 신고했다. 미국 국토안전부는 골동품상의 신고를 받고 LA 인근 샌디에이고의 용의자 집을 수색한 결과 9점의 옥새를 추가로 발견했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사라진 대한제국 황제의 옥새 '황제지보'가 있었다. 1946년 맥아더가 해방 1주년을 맞아 다시 한국으로 돌려주었던 바로 그 옥새였다. 미국 국토안전부는 전쟁 당시의 미군 도난품으로 간주, 압수절차를 진행했고, 문화재청은 아마도 2014년 6월경 한국으로 반환될 듯하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파생시킨다. 육지가 끝난 곳에서 바다가 시작하듯이. 아델리아홀 레코드의 발견이 문정왕후 어보를 찾게 하고, 문정왕후 어보는 대한제국 국새를 찾게 한 셈이다.

그런 인연의 흐름 속에서 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대한제국 국새를 들고 와서 우리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직접 대한제국 국새를 돌려주기를 희망했다. 6․25 전쟁이 끝난지 60여 년. 분단과 전쟁의 상처에 신음하던 우리들에게 미국 대통령의 대한제국 국새 반환은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에 잃어버린 자존심․민족혼 찾기

사실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국새라는 유형의 물건을 넘어, 지난 시기 우리가 잃어버렸던 민족의 자존심이나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상처받은 민족의 혼 같은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한제국 국새를 직접 돌려 준다면 6․25전쟁의 아픈기억을 극복하는 역사적 사건이 될뿐만이 아니라, 또한 문화재반환운동에 있어서 세계적인 사례가 만들어져 문화재를 빼앗긴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사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힘겹게 운동을 시작하던 2014년 2월 초. 눈 내린 미국 뉴저지에서 제이크 정 변호사를 만났다. 나는 국새 반환과 관련해 청원서를 전달할 정치인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뉴저지가 지역구인 의원이며, 연방 상원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메넨데즈 의원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제이크 정 변호사는 그로부터 4주 뒤, 메넨데즈 의원과의 면담을 성사시켰고 면담자리에서 청원서가 전달될 수 있었다. 나아가 메넨데즈 의원은 자신이 직접 친서를 덧붙여 케리 국무부 장관과 국토안전부 장관 상원의원 2명에게도 우리의 청원서와 '조속히 반환해달라'는 자신의 의견서를 전달해 주었다.

미주 동포들의 한인 사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최한규 거사님의 주선으로 워싱턴 PNP 포럼이란 단체의 초청으로 워싱턴에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강의를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거기서 나는 미국 국토 안보부에 압수중인 대한제국 국새와 조선왕실어보를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가지고 오는 ‘응답하라 오바마’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했고, 함께 백악관 청원운동을 진행하자고 제의했다.

백악관은 한 달동안 10만명이 서명하면, 백악관이 직접 답변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워싱턴의 동포분들은 모두들 흔쾌히 받아주셨고 그 결과 LA, 보스턴, 뉴욕 등지의 한인단체들까지 결합, 13개 한인단체와 협력해서 백악관 청원 사이트 ‘We The People’에 10만 서명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백악관 청원운동이 시작되자 미주와 한국의 언론들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응답하라 오바마 운동은 수면위로 올라와 주요 이슈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직 미국에 머물고 있었던 2월 26일의 일이었다.

2014년 4월 25일 응답하라 오바마 작전은 성공리에 종료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진 뒤, 대한제국 국새를 비롯하 9점의 조선왕실인장을 반환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쾌거요, 세계 문화재 반환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만드는 순간이었다. 정부는 대한제국 국새의 소장처로 조선왕실의 주요문화재를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국립고궁박물관을 지정했다. 드디어 대한제국 국새는 자기 집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었다.

대동문화 87호 [2015 3,4월호]

혜문스님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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