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화제 끝에 그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당시 모여고 교사로 있던 선배는 문득 혼잣말하듯 말했다. “학교 담장 한 번 넘어본 적이 없는 아이는 결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고. 왜일까.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되면서 제일 먼저 나는 그 선배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매 학기의 첫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한두 번쯤 결석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어쩌면 말을 익히고 첫 걸음마를 떼게 되면서부터 남보다 더 뛰어나고 앞서고자 숨 가쁘게 달려온 아이들에게 결석은 나에겐 그 선배가 말하는 일종의 ‘담장 넘기’에 해당하는 것. 나는 아이들이 제도 교육의 틀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수업 진행 원칙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경쟁의식 때문인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마치 “목소리” “하나도 흐트리지 않”은 채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김명수,「하급반 교과서」)데 급급한 교육 시스템에 잘 길들여진 탓인지, 불가피하게 결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내내 출결사항에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소극적이며 소심한 행위에 지나지 않을, 이른바 ‘결석할 권리’조차 맘껏 행사하는 아이들을 만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순응이 아니라 모험과 저항이다

하지만 한 인간의 일생이나 인류사에서 중요한 것은 당면한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순응이나 순치馴致가 아니다. 불가피한 상황의 강제성과 행위의 우발성이 서로 마주치는 데서 발생하는 오는 모험과 저항이다. 낡은 세계의 가치와 삶의 방식에 대해 의심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 동의한 셈이 되고, 따라서 자신들이 원하는 진정한 자유와 창조는 불가능하다. 크고 작은 관습과 편견과의 양보 없는 싸움과 대결 없이 개인이나 집단의 발전이나 진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기엔 아이들이 곧잘 선보이는 반항이나 제어되지 않은 열정들을 하나의 탈선이나 방종으로 치부하며 억압해선 안 된다. 밀란 쿤데라가 그의 소설 <생의 다른 곳에서>에서 말하고 있듯이 오히려 그것들을 일생을 바쳐서라도 얻고자하는 생의 최대 가치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언젠가는 찾아오기 마련”인, 자신들의 “어머니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도망치는” 시기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보아야 한다.

그들이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고통과 시련, 상처나 비행들조차 무조건적으로 동의하거나 포기하기를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역류 또는 거부의 몸짓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예수나 부처의 일생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먼저 예수의 경우 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요구에 따라 광야로 나가 사십일 동안 들짐승들과 함께 기거하며 밀려오는 배고픔과 외로움, 추위와 더위와 홀로 씨름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부처의 일생 역시 마찬가지다.

진리의 길을 가기 위해 모든 권력과 쾌락이 보장된 왕궁을 떠나 고행의 길을 자초한 인물이 바로 부처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류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존경받고 있는 성자들인 예수나 부처는, 다름 아닌 남들의 시선이나 기대를 거부한 채 자신들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한 길로 과감히 뛰어든 용기 있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이른바 일류대 출신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그들의 능력이나 창의성이 아니라 입시지옥에서 승리하기 위해 놀거나 잠을 자고 싶어도 꾹 참아내며 입시지옥을 통과했던 인내력. 다소 학교교육의 체제나 학습내용이 불합리하거나 불만족스러워도, 묵묵히 학교교육 체제를 묵인하고 순종해온 이력 때문이라는 소문이 사실일까. 결코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전면적인 것은 아닐 지라도, 우리 사회가 지난 시대를 거쳐 오면서 민주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합리성과 양식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한 개인의 개성보다도 전근대적인 조직의 논리와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줄 모르는 인물들이 더 각광받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각기 다른 개인들이 각자의 노동과 직업을 통해 자기실현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나면서 얻어질 성숙한 사회에 대한 기대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영웅은 우연히 출연하지 않는다

한 해 무려 6만 8,000여 명의 청소년들이 학교교육 현장을 떠난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 행동과 학업 실패, 삶의 변고와 관심 상실 등이 학업중단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것들은 획일화된 교육이나 사회에 대한 자발적인 거부 또는 비판의 성격을 띠고 있다. 비록 한때 잘못된 선택이나 극단적인 충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특히 그것들은 긴 인생의 여정에서 볼 때 자신의 삶과 미래를 전혀 새롭고 다른 모습으로 바꿔가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러한 아이들의 탈선이나 일탈에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뭔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모험을 걸며 ‘담장 너머’의 세계를 기웃거리는 아이들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안정된 생활과 따스한 잠자리를 마다한 채 급기야 가출하기도 하는 이른바 ‘탕아들’에게 멸시와 적대의 시선을 보내기 일쑤다.

하지만 뛰어난 인물이나 위대한 영웅은 우연히 출현하지 않는다. 결코 평탄치 않은 탄생과 박해, 추방과 실패의 과정을 거친 이후에 나타난다. 특히 그들은 일상적이고 시대적인 시련과 좌절 속에서 인간적인 능력으로 해결하기에 거의 불가능한 과제를 운명적으로 짊어졌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든 자신의 일생에서 적어도 한번쯤은 “취할 순간조차 주지 않고/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높이도 폭도 없이/떨어”(김수영, 「폭포」)지는 추락 또는 거의 죽음에 가까울 정도의 자기부정. 스스로를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세우는 모험 또는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자기붕괴의 경험을 겪기 마련이다. 소중한 자신의 목숨과 바꿀 만큼 가장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도 불사하며 기꺼이 가시밭길을 가려는 결단과 그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떠맡으려는 의지와 마주칠 때가 있다.

결코 달갑지만은 않을 방황과 방랑이 그 힘을 발휘할 때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순간. 마치 네 마리 야생마들이 끄는 수레에 올라탄 것처럼 어디론가 달려가거나 끌려가는 ‘질풍노도’의 시간 속에서 자신만을 위한 고독과 고립은 한갓 시간적인 낭비나 인생론적 낙오가 아니다.

오히려 틀에 박힌 시민적 삶과 평화에 안주하는 것 외에 별다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마부가 되어 고삐와 채찍을 쥐고 그 야생마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궁극적 생의 목적지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이들아, 그러니 언제든 기회가 되면 우리 함께 담장을 넘자! 일부러라도 결강하고 결석하며 이제 정말 충분히 좌절하고 제대로 절망하는 시간을 갖자!

대동문화 87호 [2015 3,4월호]

임동확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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