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 오월을 담보로 한 문화예술의 진행은 시대적 격변과 늘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마저 부실하게 화학적이 되면서 문화예술은 수많은 절망을 승화해야 했다. 희망을 반추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나 할까. 엄혹한 시절 오월 문화예술은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맞서며 진실에의 열망을 고스란히 껴안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월을 주제로 한 글과 그림, 노래들이 내․외연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왔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오월 그날의 참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희석되는 것처럼 문화예술 역시 많은 변화를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 애초 사실적 전달에 치중한 것이 80, 90년대 창작방식의 패턴이었다면 21세기에 접어들면서는 그 스토리들의 형상화에 더 집중하는 형국이다. 전면적인 과정의 묘사도 후퇴했고, 21세기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시각의 오월 문화예술 두께도 얇아졌다.

특정한 스토리에 소재주의적으로 접근하거나 단편들을 삽입함으로써 대단히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이야기 전달만 반복되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월 문화예술의 창작 속 투영은 그 빈도 수에서도 현격하게 감소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제 동면기로 접어드는 형국일까

오월 문화예술에 대한 진정성은 무엇이고, 정체성의 활로는 미궁에 빠진 듯하다. 이제 동면기로 접어드는 형국일까에 대한 의문부호가 붙을 정도로, 그 힘과 동력이 상실되는 것은 아닐까 자문하지 않을 수 있다.

한 발짝만 대중 속으로 들어오면 오월 문화예술은 선명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몇몇의 예술가들에게서 오월 문화예술이 생산되고 소비되면서 긴 동면에 빠지고 있다면 억측일 지도 모른다.

오월은 문화예술의 단골 메뉴였다. 진보진영의 예술가들에게 오월은 바이블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신자본주의가 급격하게 우리를 공략하고 우리네 삶의 공간을 물들이면서 더더욱 먹고 사는 문제에 침몰하고 있는 상황이 매일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80년 오월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월은 창작화 단계에 놓여져 있었을 뿐 이 창작화 단계를 지나 수용의 과정을 탄탄하게 거쳐 공유의 폭이 확대돼야 했었다. 일상 공간에 오월이 더 읊어지고 노래되며 그려졌다면 오월은 훨씬 더 우리들 생활 속 깊숙이 뿌리내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오월문화예술은 창작화 단계에서 대다수 씌어지거나 그려지고 노래되어진 것들이다.

많은 작가들과 화가, 음악가들에 의해 오월은 문화예술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오월이라고 하는 매개는 다수 대중 속으로 확대하면서 오월 문화예술의 명맥이 살아숨쉬도록 하는 데 결정적 중추 역할을 했다. 이들 예술가들이 창작품을 내놓고, 독자나 관객이 향유하는 흐름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런 공식마저 ‘이게 정답이다’라고 할 수 없는, 갑갑한 상태에 직면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외연이 넓어지는 측면도 전혀 부인하기 어려우나 오월은 새로운 세대들의 대거 등장에 따라 현대사의 한 기록물로 편입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오죽하면 지난해부터 '오월 문화예술 감정수업'이라는 것까지 등장했을까. 갈수록 오월의 희미한 기억들을 문학 중심의 예술작품을 통해 일깨우고 그 진정성과 역사적 사실의 유추 등을 통해 오월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해보자는 취지다.

‘오월 문화예술 감정수업’ 등장

지난해에 이어 열리고 있는 이 강좌는 오월 문화예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 특성과 역사문화적 자산을 주제로 특화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창출하자는 것인데 청중생들에게 오월의 느낌을 잡아가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는 모양새다. 조진태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이 강좌를 맡아 진행 중이다. 오는 11월까지 열릴 이 강좌도 이제 오월 문화예술의 향방이 사실의 나열이나 배열가지고는 한계에 봉착한 만큼 한 사람이라도 더 공감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문학작품을 통해 오월의 감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나가야 한다.

이 강좌는 오월의 가치를 정립해나가는 데 있어 대단히 새롭고 실험적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오월 문화예술은 사실적 기록에서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야기되어지는 오월로 방향을 다시 잡아가면서 공감의 틀을 짜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오월을 기억하는 세대도 점점 감소하고 있다. 여기다 의식의 공유마저 옅어지다보니 매년 5·18주간이 돼야 오월을 떠올려보는 대중들이 부지기수다. 다들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봉착되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지역에서는 1970년대 민중문화운동과 그를 단초로 한 오월 광주, 투사회보 등 문화선전 역할과 양식을 조명해 오월의 맨살을 끄집어내려하는 시도가 다수 이뤄져왔다.

그런데 이 다음 과정의 방향 설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새로운 세대에게 오월의 궁극성과 당위성을 설파하는 데 여러 문제들이 노출됐던 것이 사실이다.

진일보하면서도 통일된 방향을 세우지 못하게 되자 외연도 정체기로 접어드는 듯한 느낌이다.

2004년 이후 5·18 민주화운동 기념행사와 때를 같이 해 5월 가족시·산문낭송대회, 거리시화전, 5·18다큐멘터리 상영, 5월정신이 담긴 시화전, 청소년을 위한 오월문학강좌 등 오월정신을 고양하는 행사들 역시 오월 문학이 어떠한 확장지점을 갖고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오월문학이 한국문학사 중 내용 중심의 분류로 볼 때 뚜렷한 특징을 갖는 문화적 소산으로 연구 가치와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온 만큼 그동안 세간의 관심과는 별도로 현대문학사에서 한국근대민중사와 결부시켜 연구 발전시켜야 하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회화도 적극적인 현실참여 의식에 의한 사실주의 회화를 통해 문화변혁운동으로 옮겨간 것은 사실이지만 21세기 새로운 시대와 맞닥뜨리면서 큰 방향성의 가닥을 잡는데는 미흡했다.

청년미술의 현실주의 정신과 형식의 대집결만으로는 공감의 틀을 세우기가 다분히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마당극단 ‘신명’, 극단 ‘토박이’, 미술 ‘시매연’, 사진 ‘사실’, 문학 ‘청년문학회’, 노래패 ‘친구’, 노동문화패 ‘일꾼마당’, 농민문화운동 ‘황토바람’의 연합체였던 광주문화운동협의회, 그리고 그 이후 광주민미련,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광주민미협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사실주의에 입각한 민중문화예술이 전개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 민중문화예술단체의 명맥도 많은 부침의 과정이 뒤따랐다.

올 1월 광주민미협 회장으로 뽑힌 허달용 회장이 당시 “밑으로 내려가 시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나 프로그램을 신설해 열어보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시민은 오월 문화예술의 주요 수요층인 셈이다. 시민이 수용하는 오월 문화예술로 진행이 돼야 그 외연은 확장될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시민 속에 뿌리내리지 못할 경우 향후 오월문화예술의 확장에도 상당한 장애가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

오월 문화예술 확장 가능성 높아

그럼에도 희망을 반추할 수 지점들은 여럿 있다. 오는 9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연다. 문화중심도시의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5·18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여기서 오월 문화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오월 문화예술은 느리지만 점차 확장의 매개들이 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 점은 고무적이다.

‘오월음악제’나 ‘오월창작음악제’ 등은 5월의 음악적 확산을 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고, 도시의 공간들에 들어서거나 설치되는 조형미술이나 광주폴리는 미술의 영역에서 오월의 행간을 넓히고 있다.

또 이런 기류는 지역문화예술이 갖는 미적 성향을 다양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함께 5·18기념재단이 펴냈던 ‘오월문학총서’도 오월 문화예술의 행간을 넓혔다는 풀이다.

5월문학총서는 5·18민주화운동기록물이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5월문학의 성과를 한데 묶어 발간한 것이다.

2012년 8월 시 부문과 소설 부문을 시작으로 2013년 4월 희곡과 평론 부문까지 총 4권이 완간됐다.

이 오월문학총서는 흩어져 있었던 오월 문학작품을 총결산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작업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오월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음악과 미술에 비해 문학의 창작화 과정은 부진하다. 더욱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사업에서마저 문학분야는 소외되고 있다.

특히 눈에 보이는 전시효과에만 급급하게 될 경우 오월 문화예술의 확장은 요원할 뿐더러 정신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과 문화예술행정의 뒷받침 및 지원이 지속적으로 누락된다면 부실화로 치달을 수 있다.

지난해 발간됐던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운다’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소설은 억울한 영혼들의 말을 대신 전하는 오월의 노래로, 오월의 실종자 문제를 드러내면서 독자들에게 오월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를 통해 한강만이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1980년 오월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개별작가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월을 전파하는 데 문화예술처럼 좋은 영역은 없다. 아울러 그 확장에도 작가적 섬세함으로 파헤친 오월은 깊은 슬픔과 감동으로 독자들의 기억에 강하게 각인된다. 그 기억이 오월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오월 문화예술의 확산은 예술가들만의 몫이 아니다. 더 많은 문학작품과 회화, 노래는 문화행정 및 제도가 뒷받침될 때 지금보다 더 탄탄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을 밝힌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고선주 광남일보 문화체육부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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