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문화예술’의 가치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 도청시민군 본부는 계엄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지만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침탈당했다.

죽음과 좌절과 슬픔이 광주는 물론 한국사회를 가득 덮었다.

그리고 신군부의 무한 철권정치가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옥으로 끌려갔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계엄당국의 체포를 피해 몸을 숨기고 길고 긴 수배생활을 감내했다.

암흑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 동토의 땅에서 가장 먼저 새싹을 내밀었던 것이 문화예술운동이었다. 문화예술의 강인한 생명력은 바로 이 어려운 상황에서 확실하게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광주자유미술인회는 계엄군들의 학살로 죽었던 시민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씻김굿’을 1980년 7월 남평 드들강에서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그리고 잠시 해산되었던 극단 광대 회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본격적으로 마당굿을 만들어 공연을 시작했다.

또한 가수 김종률은 기타 하나만 들고 콘서트 무대를 만들었다.

그들에 의해 현대 대한민국의 민족민중문화운동이 최초로 발화되었고 이것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아시아 각국에 급하게 타전되었다.

1980년 오월항쟁의 경험은 이 지역 문화의 오랜 서정적 전통에 서사를 불어넣었다. 우리는 기록되지 못했던 진실한 역사를 찾기 시작했다. 오월학살은 일제식민지 문제나 한반도의 분단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오월문화예술은 단지 1980년 5월 현장을 단순히 재현하는 역사화(歷史畵)나 역사극(劇)이 아니라, 오늘날 현실상황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새로운 오월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증거하고 극복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문화예술주의를 너머 삶 속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양식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오월문화예술은 불의한 권력 시스템을 끊임없이 감시하며 현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근원적인 악에 대해서 부단하게 저항하는 모든 사람의 노력을 미학이라는 장치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지금 세계는 물론 특히 동아시아는 국가주의의 파고가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그 파고가 거셀수록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절대의미는 국가의 전체적 이익에 의해서 파멸의 길을 걷는다. 그 이후에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들어선다.

‘오월문화예술’은 군부 파시즘의 국가폭력으로부터 인간다운 삶을 되찾기 위해 태어난 예술양식이다.

그래서 1980년대 내내 이 지역에서 만들었던 ‘오월문화예술’의 양식과 미학은 동아시아 민중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다시 필요한 시대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왔다.

상시적, 지속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오월문화예술을 새롭게 창작하는 일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각 부분에서 지금까지 축적된 주옥같은 작품을 상시적으로 전시하고 공연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필요하다. 즉, 전시장과 공연장과 연습장이다. 광주시민은 물론 광주에 오는 누구나 이곳을 방문하면 반드시 오월광주 정신으로 현실과 자기들의 삶을 바라보는 문화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전시공연 뿐만 아니라 튼실한 학습의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그 내용과 질을 한껏 높여야 할 것이다. 소위 진지한 서사성과 현실문제에 조응한 저항정신이 펄펄 살아있는 문화예술이 상시적으로 공연 전시된다면 문화관광과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일들을 관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예산이다.

그러나 오월광주의 시각(眼)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문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예술행위를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뒤받침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생각에서는 대단히 절망적이다.

예산이나 조직 시스템에서 지방정부의 입김이 조금이라도 작용한다면 향후 파견 공무원 따위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간섭을 받게 되며 결국 가장 중요한 <문화예술의 오월정신>까지 송두리째 거세당할 가능성이 명백하다. 한국사회에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끝없는 배반의 역사를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주의!:공무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숨 쉬는 소리 외엔 믿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매년 5월 18일 망월동 묘지의 추모식이 국가로 이관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한곡 제창하는 일도 시민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또한 2014년 광주비엔날레 걸개그림 <세월오월>사건을 뒤돌아보더라도 소위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이라는 지방정부 시스템에서도 결국 시장 당사자에 의해서 예술표현의 자유가 유린되면서 전시가 무산되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했다.

그리고 광주광역시라고 해서 보수당 시장이 향후 당선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이런 따위의 정치적 향배와 상관없이 상시적으로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민과 문화예술가들의 힘으로 하드웨어가 만들어져야 하고, 예산 역시 철저하게 단 한 푼도 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지혜를 문화운동적 차원에서 풀어내야 할 것이다.

선택과 포기의 프로세스

민주화운동의 성지이며 민족, 민중, 민주문화의 고향이라는 명예와 정부예산을 풍부하게 받아내는 풍요는 함께 누릴 수 없는 모순적인 갈등관계에 있다.

다음의 일간지 기사는 너무 부끄럽게도 구차스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광주 시민들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저는 쓰레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쓰레기통에서)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가지고 청와대 정무수석을 시키고, 홍보수석을 시키고 이렇게 배려를 했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17대·19대 총선에서 두 번이나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으며,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다 나온 뒤 지난해 7·30 재보선 때 전남 순천·곡성으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됐다.

이 최고위원은 “저는 18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광주·전남·전북 구석구석에 그 많은 일을 하고도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며 “(그런데) 왜 지금 이정현이한테 해달라고 찾아오는지 알 수 없다”며 호남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한겨레/2015.3.27.

물론 그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내가 아는 한에서 그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 문제는 그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해대는 우리들의 구차스러운 모습이다. 우리 지역의 어떤 이가 이정현 국회의원을 찾아가서 구걸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으나, 이젠 시민들 스스로 포기와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오월정신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고 모두 헌신짝처럼 벗어 던져버리고 돼지 같은 풍요를 선택할 것인지, 또는 조금은 가난하게 살면서 삼시세끼 중에서 한 끼쯤 굶더라도 명예로운 삶과 공동체의 선을 선택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답은 항상 간단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답은 우리가 지난 시기에 했던 일들에서 찾을 수 있다.

‘오월문화예술’과 ‘민주주의의 성지 광주’는 ‘새로운 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적 동력을 갖추고 있는 우리들의 유일한 자산이다. 1980년대 내내 오월학살진상규명 투쟁시기에 치열하게 토해냈던 문화적 자산은 실질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충분한 문화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극단 ‘광대’의 후예들인 극단 ‘신명’, ‘토박이’가 만들어낸 마당굿과 연극들, ‘오월시’와 ‘젊은벗들’ 동인들의 핏빛 서정성,

‘광주시각매체연구회’의 판화와 걸개그림들과 시민미술학교 프로그램 등을 상시화 할 수 있는 시스템만 마련된다면 이 지역을 아시아의 새로운 문화의 성지로 만들어낼 수 있는 큰 자산이 분명하다. 필자는 지난 20 여 년 동안 일본, 타이완, 태국, 스리랑카, 필리핀, 싱가폴,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등지에서 순회전시와 강연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으로 그 문화적 경쟁력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의 정치지도자와 관료 따위들은 언제까지나 중앙정부에 머리를 조아리며 예산 앵벌이도 부족해서 이정현 의원 같은 분에게 굽신대며 부탁만 할 것인가. 새로울 것도 없는 구호인 ‘문화가 최상의 경쟁력이다’라는 말이 광주에서는 그냥 말뿐인가.

이 지역에서 지난 시기에 수많은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낸 문화적 자산을 당신들은 왜 스스로 폄하하는가. 남들이 자기네들의 경쟁력을 위해서 이미 만들어놓은 대중성과 예술성의 미망에 사로잡힌 흐리멍텅한 눈으로 ‘오월문화예술’을 바라보는가. 그렇게 말하면 자신이 뭘 많이 아는 사람, 세련된 문화인처럼 보이던가. ‘오월문화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대중성과 에술성을 창조 확대해 볼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하는가.

이러한 노력과 투자가 심정적으로 싫다면 걍 가만 두시라. 설 건드려 놓을 바에 차라리 가만 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걍, 가만 두시고 이정현 같은 분에게 평생 예산 거렁뱅이 짓이나 하면서 정치생명을 보전하시라. 그리고 그 거랭뱅이 예산에 서로 숟가락 넣기 싸움이나 즐기시라.

답은 늘 바로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홍성담 작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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