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른이 될 수 없다. 죽은 자들이 유령이 되어 떠돈다. 무심한 시간은 변함없이 흐른다. 부조리하게도.

부끄럽지 않은 새해를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 2015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4월이 돌아왔다.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고, 누구도 돌아올 수 없는데, 기어이 봄은 찾아오고 벚꽃은 다시 피어나고야 말았다. 무심한 시간의 흐름이 우리를 비통에 잠기게 한다. 화려하게 피어난 꽃들은 그것을 같이 볼 수 없는 이들을 떠오르게 했을 뿐이다. 덧없이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들도 슬픔을 덜어 주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비통함은 배가된 부끄러움을 재료로 삼아 증폭된 것인 까닭이다.

그날 이후, 우리는 스스로의 자발적 의지와 자율적 주체성을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날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한다’는 방식으로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슬퍼한다’거나 ‘내가 행동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순간, 스스로를 그들로부터 구분 짓고 충분히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그들을 대상화시켜 바라보는 위치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무사히 지속되는 일상 속에 안전하게 자리 잡고 선 채 낮은 곳을 향한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대하며 자신의 감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는 꼴이 될 것이다.

세월호의 참사 앞에서는 ‘내가 슬프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분명 나의 슬픔을 초과한다. ‘나’의 슬픔을, 그리고 나의 ‘슬픔’도. 그러나 슬퍼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날 이후 우리는 슬픔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 슬픔은 저렇듯 이중부정의 형태로, 또는 ‘나’라는 주어 없이 그저 ‘슬프다’는 비인칭적 표현으로만 말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나’의 개별성으로부터 물러나도록, 그리하여 스스로를 함께–슬퍼하고 함께–고통 받는 집단적 공감 주체의 한 부분으로 환원하도록 강제했다.

우리의 언어를 끊어버린 ‘0416’

한동안 말문이 막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한국문학이 어떻게든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당위 앞에서 가장 먼저 행해야 했던 것은, 그러므로 필사적인 공감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일은 우리의 언어를 끊어버리는 사건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감정이 직접 말해질 수는 없었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독일에서처럼, 세월호 이후 한국에서 그에 대한 개인의 정서를 직접 말하는 작품을 쓰는 일은 실로 야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자각을 내포한 형식으로만 표현될 수 있었다. 때로는 자신을 비워내어 스스로를 그들의 말의 통로로 내어주는 방식으로, 또 때로는 그 일을 직접 말할 수 없어 다른 이야기를 통해 우회하는 방식으로. 지난 10월 25일 두 번째 ‘304 낭독회’를 통해 발표된 이영광의 ‘수학여행 다녀올게요’나 같은 날 발표된 진은영의 ‘그날 이후’와 같은 시들이 앞의 예에 속한다. 여기 그 일부를 옮긴다.

아니요, 나타납니다…… 나타나고 나타나고 나타납니다

떠는 손과 엎드린 몸, 무너지는 가슴들에 젖고 있습니다

아니요…… 구조 없는 구조를, 그저 귀찮고 귀찮고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들을,

썩은 돈다발을,

통곡과 능멸의 항구를 떠다닙니다

행진을 가로막는 도심의 장벽을 봅니다

슬픔을 내려치는 칼 위에 앉아 있습니다

우는 누나와 굶는 아빠와 얻어맞는 엄마를 안고 있습니다 조준하듯

망각이 되자고 날뛰는 기억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속에서 기억합니다 무사하지 말아요

슬픔을 비웃는 얼굴들을, 기쁜 슬픔들을 보고 있습니다 저격하듯

어떤…… 거짓을 보고 있습니다

악마라 부를 거예요

교통사고야 조류독감이야 미개한 국민이야를

물속에서 듣습니다 아무도 무사하지 말아요 놓아주지 않아요

― 이영광,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부분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가도 슬퍼하지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ᄊᆞᆼ둥이 하은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 진은영, ‘그날 이후’ 부분

이 아픈 시들에 대해,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더 아프고 잔인한 사실들에 대해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그러니 이대로, 그러나, 천천히, 지나가자…. 직접 그 일을 말할 수 없어 다른 장면을 통해 간절한 공감의 노력을 우회해 표현한 경우로는 김애란의 ‘입동’(<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을 들 수 있다. ‘입동’은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 4ㆍ16을 지나온 우리는 갑작스런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그린 이 작품을 세월호와 무관하게 읽을 수 없다. 갑작스런 사고로 무고한 아이가 죽었다는 상황 설정이나 그 부모를 둘러싸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268쪽)이 도는 등 우리가 보고 들었던 일들과의 구조적 상동성 때문이다. ‘입동’이라는 제목 역시 4ㆍ16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작품의 내용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 제목은 분명 겨울이 오고 있으니 이제 곧 이대로 해가 바뀌어 버리고 말리라는, 시간의 흐름이 부조리하다는 감각의 산물이리라.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입동’은 이렇듯 구조적 상동성을 지닌 다른 장면을 통해 절박한 공감의 노력을 행한다. 그러한 노력 속에서 우리가 왜 이토록 슬플 수밖에 없으며 왜 아무런 잘못도 실제로 행하지 않았음에도 죄책감에 빠져야 했는지가 정확히 드러난다. 집값의 반이 넘는 금액을 대출로 끼고서 집을 산 주인공 부부는 아들 영우가 어린이집을 옮겨 다니지 않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가장 기뻐했다. 계속해서 반으로 접히는 종이 위에서 버텨야 하는 ‘신문지 게임’ 참가자 같은 처지에서도 그처럼 기뻐할 수 있었던 것도, 동시에 탈락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신문지 게임에 임했던 것도 바로 영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역시 그랬다. 우리가 그동안 발 디딜 곳을 점점 좁혀오는 세계의 폭력을 견뎌온 것은, 어느 정도는 그렇게라도 지켜낸 세계 속의 자리를 물려줘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4ㆍ16은 바로 그러한 노력을 산산조각 내는 사건이었다. 세월호의 침몰은 그렇게 지켜온 자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단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좁은 신문지면을 넓히기 위한 노력의 결과들을 독점하는 자본과 국가는 우리가 발 딛고 설 자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냈다. 다음과 같은 말은 그래서 무거운 실감으로 다가온다.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이 시멘트 벽면 아래였나? 하는. 우리가 20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내린 곳이,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도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276쪽)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견뎌야 했던 것은 조금씩 자리를 좁혀오는 세계의 폭력만이 아니다. 이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러한 폭력의 희생자들을 외면함으로써 그 동조자가 되는 상황도 우리는 함께 견뎌 왔다. 그런 의미에서 ‘입동’의 주인공이 보험회사 직원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보상액수로 응답하는, 자본의 논리를 실천하며 “사무적인 표정으로 누군가의 슬픔을 대면”(268쪽)하는 인물이었다. 이전에는 그 역시 놀랍게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이웃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영우를 잃은 뒤 주인공이 행하는 이 무겁고도 아픈 반성을 통해 ｢입동｣은 4ㆍ16 이후 드러난, 우리 사회의 공감능력이 이미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묵직하게 환기시킨다.

반성이 아무리 깊어도 현실의 거대한 힘을 당할 수는 없다. 주인공 부부는 결국 영우의 죽음을 대가로 받은 보험금 통장을 헐기로 결정한다. 집을 사기 위해 받았던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만, 현실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그 무능은 죄가 된다. 그것이 영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본의 논리에 연루되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ㆍ16 이후로는 그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한, 우리의 살아 있음 자체가 죄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비통함을 위로하고 우리의 죄를 속량해줄 수 있는 것은 무고한 아이들뿐이다. 식탁 의자 옆 수납함에 가려 보이지 않던 벽 한쪽에, 선물처럼 다 쓰지도 못한 자기 이름을 남겨둔 영우처럼.

간접살해 문제 마주한 ‘연대기, 괴물’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 비통한 죽음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무겁게 자각했다. 그것은 이미 용산참사와 쌍용차 사태를 통해, 그리고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의 죽음과 같은 사건을 통해 이미 예고돼 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러니 실은 우리는 우리의 연루됨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부인해 왔던 것이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바로 우리의 죄가 빚어낸 참상이므로, 이런 일이 벌어지게 한 현실을 바꾸어 내는 일도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저 죽음과 무관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에 의해 행해진 이 간접적 살해의 책임을 끝까지 묻고 이 국가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임철우의 ‘연대기, 괴물’(<실천문학> 2015년 봄호)은 그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다음은 세월호 침몰을 중계하는 TV 화면 속에서 주인공 송달규가 본 환상이다.

거꾸로 처박힌 선체 주변의 수면 밑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놈이었다. 공룡 닮은 몸통, 뱀처럼 긴 꼬리, 네 개의 다리를 가진 정체불명의 괴물. 그놈은 흐릿한 수면 밑에서 검은 지느러미를 부챗살처럼 펼친 채 뒤집힌 선체 주위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268쪽)

이 괴물은 홉스가 국가를 비유했던 성서 속의 괴물인 ‘리바이어던’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연대기, 괴물’이라는 제목은 우리의 감각과 무관하게 부조리한 흐름을 이어가는 연대기적 시간을 변함없이 지속시키는 것이 바로 국가라는 뜻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서북청년단 단장에 의해 범해져 태어나고 버려진 아이라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를 시작으로, 송달규는 그의 실존적 경험들 속에서 우리 사회가 거쳐온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괴물의 환상을 보았다. 참전했던 베트남에서, 1980년의 광주에서, 침몰하는 세월호의 중계화면에서,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국가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일상 속에서.

세월호의 침몰 이후 우리는 함께–슬퍼하고 함께–고통 받는 공감의 공동체로 재구성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한 채 살아왔는지에 대한 아픈 통찰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우리는 지금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자각 역시.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공감해야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명령이 주어져 있다.

문제는 그러한 공감의 행위를 통해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에 있다. 자신의 약점을 자국민에 대한 폭력을 통해 덮어버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국가는, 그러나 힘이 세다. 결과에 대해 물으면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기 어렵고, 그래서 미리 좌절해 버리기 쉽다. 1년 전 그날 이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많은 날 동안 무력감에 빠져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불/가능성에 대한 사유와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로 쓰인 작품이 김연수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문학동네> 2014년 겨울호)다. ‘다만 한사람을 기억하네’는 시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의 공감과 그에 바탕을 둔 기억이 틀림없이 힘을 발휘하리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지면상의 제약이 있어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결정적인 대목을 옮겨 둔다.

후쿠다 준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어서, (……) 자살하려고 하기도 하면서도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일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도니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가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

나는 작년에 혼자서 제주도로 가던 밤을 떠올렸어. 그래, 바로 그 배야. 인천에서 출발해서 제주까지 가는 여객선. (……) 밤새 탁자에 몸을 기댄 채 둥근 창밖만 내다봤지. 거기에는 그저 어둠뿐이었어. 세상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그저 캄캄한 밤바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노라니까 그 어둠 속에도 수평선이 있어서 어둠과 어둠이 그 수평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 뒤섞이는 거였어. (……) 노래를 불러 보았지. 멀미에 시달리면서. (……) 내가 눈을 떼면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빛을 보았네, 라고 (……) 한 사람을 기억하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라고. 그러고 나니 그 부분이 마음에 들더라. 그래서 그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거야. 자는 듯 마는 듯, 웃는 듯 우는 듯, 한 사람을 기억하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라고 흥얼거릴 수 있어서. (60~61쪽.)

공감의 가능성 기초 다시 세워야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우리는 우리의 공감능력이 이미 죽어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공감의 불가능성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공감의 가능성의 기초를 반드시 다시 세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남겼다. 그것이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무엇보다도 주체적 자율성에 대한 주장을 불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한, 어떤 종류의 의지 표명도 그것이 불가능함에 대한 자각보다 먼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함에 대한 승인에 그쳐서도 안 된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한국문학은 ‘가만히 있지 말라’고 명령하는 타율성의 힘으로서의 진리에 대한 응답으로서 존재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5년 4월 16일, 광화문 광장에는 7만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 꽃 한 송이를 바치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노란 분필로 인도의 블록 위에 추모의 글과 그림을 남기고, 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끝없는 애도의 행렬이었다. 함께–느끼고 함께–아파하는 이 공–감의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끼고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고, 우리 자신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이 사회를 바꾸어 내야 하지만, 그래서 섣부른 위안을 거절해야 하겠지만, 애도의 공동체가 이렇듯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무심한 시간의 흐름은 이 애도의 공동체에게도 서서히 절망과 피로를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 문학이 타율적 진리에 대한 충실성의 기록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때 이 공동체의 감각을 분할하고 재분배하여 우리의 공감을 다시 새롭게 하는 기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결국에는 선한 결과를 돌려주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아야만 애써 기억하며 공감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양재훈 문학평론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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