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서 컬렉터(collector)라는 말이 나올 때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이들은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다.

이탈리아는 중세미술의 엄격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우면서도 정교한 서양미술의 꽃을 피웠던 르네상스미술의 진원지이자 많은 천재 작가들을 배출해 낸 나라로 서양미술사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은 당대에 손꼽히는 갑부이자 문화예술의 훌륭한 후원자였고 지상최고의 컬렉터였다. 메디치 가문에서 운영했던 은행사업의 수익원은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는데 많은 부분 할애 되었고 미술 전문가를 두어 작품을 직접 컬렉션하며 작가의 작업 활동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도록 주력했다.

이같은 메디치 가문의 문화예술 후원의 바탕 위에 미켈란젤로, 다빈치, 티치아노, 보티첼리 등 미술사를 빛낸 작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세기만 하더라도 예술가에게 컬렉터란 ‘후원자’로만 여겨졌다. 이는 과거 예술품 수집이 귀족이나 상류층에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면서 컬렉터들의 행위는 단지 수집의 의미를 넘어서 미술품의 유통 구조인 시장으로까지 확산됐다.

오늘날 컬렉터는 작품 구입이나 판매는 물론 작품의 가치를 규정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컬렉터의 역할이 많아지고 중요해졌다는 의미이다.

광주에서 만난 민종기(60) 민심의 종소리 행정 및 법무 연구원장은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컬렉터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이력에서 돋보이는 것은 풍부한 행정경험이다. 1978년 광주시에 7급 공채로 공직의 첫 발을 디딘 후 전남도청 사회복지과장, 화순 부 군수, 전남도의회 의정 지원관 등을 역임했다. 전남도 행정심판위원회, 법무담당관 보직에 이르기까지 행정심판 청구의 주류를 이루는 인허가 업무를 오랫동안 처리해왔다.

또 개발행정, 도시행정, 문화재분야, 지역계획분야를 직접 경험하며 실질적인 행정 경력을 쌓았다. 도청 서기관 시절에는 도의회 지원 분야, 농림 ․ 수산 분야, 환경정책분야, 에너지, 공업행정 분야, 사회복지 분야를 다양하게 거쳐 왔다. 이때부터 민 원장은 도민의 어려운 행정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로 정평이 났다.

이에 따라 민 원장은 자신의 행정경험과 법률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고 봉사하겠다는 의미로 지난해 6월 광주법원 인근에 행정법무연구원을 개원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원인의 재산 피해를 줄이고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민 원장은 민원인 상담에서부터 사건 분석, 관계 법리 검토, 최적대안 모색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구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민 원장은 이처럼 행정 경험도 풍부하지만 고미술 작품 수집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고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오랫동안 국내 고문서들을 중심으로 한 유물을 수집해왔다. 그동안 수집한 유물이 무려 4,000~5,000여 점에 이르는데 이 중 상당수가 중요한 사료 가치를 지닌 것들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암행어사가 임금에게 보고한 문서들을 모은 자료입니다. 선(先) 시정 조치, 후(後) 임금께 보고한 문서인데 관료가 백성의 어려움은 뒷전에 두고 개인의 이익을 취해 징벌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갖고 있는 자료를 보면 의미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아요.”

민 원장은 암행어사가 마패를 관인으로 도서(圖署)를 한 자료 가운데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중요시한 효(孝)와 관련하여 가슴을 울리는 조사기록이 많다며, 이런 살아있는 사료에 근거하여 후세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집대성한 자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민 원장이 보유한 고문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시대 임란 이후의 역대 영의정 친필 편지도 거의 빠짐없이 수집이 되어있고, 한 집안 대대로 내려온 민초들의 애환이 담긴 자료들도 있다.

하지만 민 원장이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따로 있다. 국내 미술품에 관심을 갖다보니 자연스럽게 세계 보물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러다 우연히 중국의 고대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 원장과 중국 유물과의 인연은 7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미술품 수집가였던 고(故) 김희용씨를 만나면서 중국 고대황실 유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김희용씨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중국 고대유물의 베일을 벗기신 분입니다. 인류가 1만년 전쯤 만든 흑피옥(黑皮玉, 검은 칠을 한 옥조각상) 매장지를 중국에서 17년 동안의 끈질긴 탐사 끝에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고, 이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중국 10대 문화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민 원장은 “무엇보다 각 시대별 고대 출토도자기들만의 특징을 터득, 국내에 전수함으로써 한국인에게 자체감정 능력을 부여한 점이 대단히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 원장은 고(故) 김희용씨와의 인연을 계기로 중국 고미술품 수집의 매력을 알게 됐고 한 점 한 점 공을 들여 수집하기 시작했다. 고미술품이 있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발품을 팔아 현장을 찾아갔고, 안내 서적이 없어 배울 수 없었던 전문지식은 스스로 공부하며 깨달아야만 했다. 민 원장은 중국고대 유물의 핵심이 되는 흑피옥과 춘추시대 칠기, 도자기, 황실 먹 등을 중심으로 수집에 나섰다.

“중국 고미술품의 경우 오랜 역사와 뛰어난 아름다움, 문양과 기형의 다양성이 매력적입니다. 각 시대별로 특징이 달라 멀리서 보더라도 그림이나 문양만 보면 곧바로 제작시대를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중국 고미술품 수집에만 매달리던 민 원장이 작품의 객관적인 평가서를 중요하게 생각한 계기가 있었다. 서울의 한 중견회사 대표가 찾아와 자신이 갖고 있는 송나라 시대 불두(佛頭)도자기를 양도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중견회사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사찰이 있다며, 그곳에 모시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불두도자기의 제 가치를 알지 못했던 민 대표는 마침 한․중 고미술 협회가 주관해 열린 중국도자기 감정행사에 출품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감정위원들이 참가한 그 행사에서 놀라운 평가가 나왔다. 중국 감정위원들 전원 동의 하에 국보지정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불두도자기는 송나라 시대의 기물로서 조형이 매우 특이하고 그동안 발굴된 부처상과 다른 새로운 유형이어서 중국불교전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국보급으로 평가됐으며, 극치의 아름다움까지 지니고 있어 감정위원들이 ‘희세진보’라며 입을 모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함께 출품한 작품 중 ‘동림연사 어묵’은 우리나라 대표 서예가 유희강이 단 한 번만 갈아 사용하고서 너무 아까워 더 사용하지 못하고 타개했는데 그 당시 먹과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정위원들은 ‘이 먹의 가치는 원 청화 도자기 3점을 합한 가치보다 높다’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또한 200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250억원에 거래된 귀곡화산도(원 청화자기)보다 더 크고 미학적인 문양의, 새로운 귀곡화산도 도자기가 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등 민 원장의 출품작 20여 점 중 17점이 하나같이 진품명품으로 드러나 감정위원들이 탄성을 연발했다.

“그 때부터 중요한 유물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공신력 있는 분들의 감정평가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꽤 많은 유물에 대한 확인서를 갖고 있죠. 또 일부 유물은 우리 정부 산하 국립연구기관이 직접 검사한 탄소연대 측정자료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민 원장은 앞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보유한 유물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국공립 박물관 건립을 통한 기증으로 관람객들에게 볼거리 제공의 길을 트는 것이다.

더욱이 광주의 경우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진행 중이고 오는 9월이면 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될 예정인 만큼 아시아 문화의 핵심이 되는 중국고대 유물들은 ‘슈퍼 차이나 시대’를 맞아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도자기분야에 체계적 연구가 부족한 만큼 자신이 가진 작품들을 연구 자료로 활용하고 국제교류의 구심점이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해외로 유출된 국내 유물을 환수하는 데에도 공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재청 집계로는 15만6,200여 점 가량이 해외 20개국에 유출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가져간 유물도 많아 실제로는 50만 여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민 원장은 “중국 유물의 경우 해외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국제 감정가에 기준하여 해외 유출유물과 등가교환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라며 “보물 하나 하나가 중요한 만큼 이를 통해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체계적인 연구 활동도 하면서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들을 환수하는데 쓰였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민 원장은 이와 관련, 우리 국력이 세계 6대 수출대국으로 커진 만큼 이제 우리는 세계 보물에 눈을 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의 경우 세계 유물을 보더라도 배척하는 시각이 있는 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물안 개구리식 사고를 벗어나야 합니다. 세계 다른 국가의 경우 대부분 매장유물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수집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달라요. 수집가들에게는 지구의 마지막 지하보물창고라 할 수 있죠. 오랫동안 닫혀있다 개방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매장 미술품 발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도 방관자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상호교류 협력하고 연구활용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민 원장은 미술 작품의 수집과 후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발전, 나아가 국가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김만선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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