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의외로 밝았다. 병원이라고 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므로 전화통화는 가능하다는 게 그의 말이었다. 치료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조심스러웠지만 그는 되레 기자를 안심시켰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이야기는 빨리 나아 화우(畵友)들과 어우러져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인이자 화가인 김재균(63) 전 국회의원. 그가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10일까지 남도향토음식박물관에서 8번째 개인전을 열어 주목을 끌었다. 특히 그의 전시회가 의미를 더한 것은 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가운데 개최됐기 때문이다.

작가는 “건강으로 인해 자연 속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면서 “빨리 회복해 우리 문화 속에서 우러나온 정서를 더 깊게 표현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가 그림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일주일에 크레파스 한 통씩을 썼을 만큼 그림을 좋아해 틈만 나면 스케치북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에는 백일장 부문에서 예술적 끼를 발산하며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고, 고등학교에서는 문학반인 ‘가로수 문학’의 주축 멤버로 열심히 시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님의 반대로 예술인의 꿈을 꺾을 수밖에 없었고, 정치학을 선택했다.

작가가 다시 붓을 든 건 서른 살 무렵이었다. 당시 광주사생회를 이끌던 고(故) 오승윤 화백을 비롯해 오건탁 전 광주시립미술관장, 조규일 하백 등과 함께 스케치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면세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형상화

그의 작품은 삶의 무게와 자아, 내면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형상화했다는 평을 받았다.초기에는 운주사 시리즈를 통해 운주사의 불상과 석탑을 소재로 작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과 미완성인 인간 자체에 대한 고뇌와 탐구, 천불천탑이 이루지 못한 미완의 염원을 표현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완의 세계'는 오랜 시간으로 인해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천불천탑이 작가를 통해 재구성돼 새로운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지고 현재 자신이 풀어가고자 하는 미완의 숙제들에 대한 생각을 담아 눈길을 끌었다.

그가 그동안 천착한 작품 소재는 남도의 풍경이다. 작가는 남도의 사계와 만나면서 한국의 향토적인 미감과 색채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숨쉬고 있는 산과 흙, 바다, 바람을 고스란히 닮은 우리 민족의 생명성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저에게 그림을 가르쳐주신 분들이 모두 인상주의 작업을 하신 분들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저의 작품도 오지호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요.”

전시회에서는 ‘무등을 그리며’를 주제로 그동안 틈틈이 그려온 한국화 40여 점을 선보였다. 무등의 봄과 가을, 풍경, 산하의 모습 등을 통해 무등산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에게 특히 무등산은 각별하다. 30대 초반에 방황하던 시기, 작가는 학동에 살면서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국회의원을 그만둔 뒤에는 무등산 곳곳을 다니며 스케치 작업에 열중했다. 3년여 동안 스케치를 하다 보니 작품이 쌓였고, 새인봉 하나를 그리기 위해 같은 장소를 수차례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무등산은 어머니 품과 같은 산으로, 입석대만 하더라도 그런 산세를 보기 어렵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역사나 현실 속에서 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광주시민에게는 주시는 것이 많은 산”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2001년 목우회 공모전 서양화 부문에서 운주사의 돌부처를 형상화한 ‘천지합일Ⅱ’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대한민국미술대전 4회 입선, 국제 현대미술창작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미협과 목우회, 광주사생회, 가톨릭미술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감수성 풍부한 시인으로 시집 두 권 상재

작가는 또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이기도 하다.

1998년 계간 <시대문학>의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한 이후 <달빛아래 찔레꽃>(2001), <장수풍뎅이를 만나다>(2009) 등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이 중 <장수풍뎅이를 만나다>는 광주 북구청장 시절부터 2008년 국회 본회의장 점거농성 당시까지 굴곡의 시기마다 꾸준히 창작활동에 몰두하며 쓴 시들을 모은 것으로 ‘시 쓰는 국회의원’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1월 화순에서 장시간의 수술을 마친 뒤에도 한 편의 시를 쓰기도 했는데 작가는 그 작품을 팸플릿에 실어 이번 전시회 제목으로 삼았다.

만년산 너머 무등산정에는 흰 눈이 쌓이는데

매운 삭풍을 견뎌내는 한그루 외로운 소나무

언제 다시 올라볼까 늘상 바라보던 산이여

천지간에 홀로 닿기 아득하다 하겠으니

화음의 빛나는 눈길, 꿈길처럼 선연하다

어서 일어나 걸어보자 天․地․人 세 봉우리

(시 ‘무등을 그리며’ 전문)

작가는 정치적 이력도 화려하다. 초대와 2대 광주시의원을 거쳐 민선 2․3기 때는 광주 북구청장을 지냈으며, 제18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그의 정치적 활동은 문화예술과 접목돼 꽃을 피우기도 했다.

“북구청장 때 구청 내 갤러리를 전국 최초로 오픈했는데 이후 전국의 공공기관과 군부대까지 갤러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시민뿐 아니라 참여 작가들에게도 매우 뜻깊은 계기가 됐을 거예요. 정치와 행정의 접목은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것이고, 광주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작가는 지금 건강 회복을 위해 요양을 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예술이란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이며, 자신은 궁극적으로 예술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그는 꼭 다시 벗들과 함께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릴 생각이다.

작가는 기자와 통화를 마치며 소망 한 가지를 더 말했다.

“꼭 같이 시원허게 막걸리 한 잔 헙시다. 함께 지냈던 일 생각하니 더욱 한 잔 하고 싶네.”

대동문화 88호 [2015 5,6월호]

김만선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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