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문화의 시대’라는 말은 이제 진부한 화제가 되었다. 얼마 전만 해도 예술이 밥 벌어 먹여주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미 많은 미래학자들은 ‘문화예술이 사회의 큰 힘(power)의 축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리프킨(Jeremy Rifkin)은 그의 책 <유럽의 꿈(European Dream)>에서 ‘산업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생산 시대가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얀센(Rolf Jensen)은 <꿈의 사회(Dream Society)>라는 그의 책에서 ‘정보사회 다음은 꿈의 사회이며, 꿈은 바로 이야기며 문화’라고 설파했다. 이들의 예견대로 ‘문화 시대’는 이미 우리 시대의 강력한 현상이 되었고,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이 같은 현상을 한류(韓流)를 통해 바로 알 수 있다. 싸이(Psy)의 ‘강남 스타일’은 유튜브 창사 이래 최고치인 조회 수 23억 뷰를 이미 기록했고, 220개가 넘는 나라에서 그의 뮤직 비디오를 보았다. 어디 ‘강남 스타일’뿐인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곧 K-Pop은 아시아 지역 어디를 가나 젊은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고, 방송 드라마 또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는 소재도 음식이나 패션 등 다양한 문화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고, 향유 범위도 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까지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처럼 세계를 상대로 힘찬 용틀임을 한 적이 과거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1세기를 지배하는 힘-지식 창의 체험 감성

이처럼 문화가 인구에 회자되고 시대를 활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우선 산업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껏 우리는 영국의 경제학자 클라크(Colin G. Clark)의 1, 2, 3차 산업 분류에 익숙해 있다. 앞으로의 경제는 이 같은 획일적인 산업 분류 방식이 아닌 경계를 넘나들며 융합하는 형태로 다양화될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창조 경제’라는 것도 ‘모든 산업에서 창의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다양한 산업을 포괄하는 경제’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이 같은 ‘창조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식, 창의, 체험, 감성 등 문화적 창의력과 감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음의 이유를 들라면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 곧 ‘창의 경영’과 ‘문화 코드’를 중시하는 경영 환경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와 제3섹터에서도 창의적 아이디어의 제안과 ‘문화 코드(culture code)’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만 제품과 서비스의 혁신, 나아가 맞춤형 디자인과 마케팅을 할 수 있고, 이것은 기업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는 문화 산업, 곧 콘텐츠 산업의 시장 규모가 크게 성장함으로써 국가 경제에 상당한 정도로 기여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문화 산업이란 쉽게 말해 전통문화, 문화예술, 생활양식, 이야기 등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창의성과 기술을 가미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화산업 진흥법’이나 ‘콘텐츠산업 진흥법’에 따르면 출판, 방송, 광고, 음악,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 솔루션 등을 말한다. 그러나 문화산업은 이들 외에도 음식, 패션 등 그 범위가 꽤 넓다고 할 수 있다.

문화산업은 한 장르 자체로서도 규모가 만만치 않지만 한 작품이 여러 장르로 활용되고 파급되는 특성, 곧 OSMU(one source multi use)의 특성이 있어서 특히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전망에 의하면 올해의 세계 문화산업 시장의 시장 규모는 1조 6천억 달러, 곧 약 1,800조원의 거대한 시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약 100조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게 되면 세계 문화산업 시장에서 8~9위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제까지의 성장 수준과 현재의 잠재력을 감안할 때 10년 안에 세계 5위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문화산업의 경제적 규모를 들어가며 호들갑을 떤 이유는 괄시 받고 천대 받던 문화예술이 이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대우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 문화 산업은 현 정부에서도 ‘창조 경제’의 주요 축이 되어 우선적인 정책적 지원을 받을 정도로 중요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0여 년 전부터 각 지방 정부마다 특정 문화예술 장르를 선점하기 위한 물밑싸움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다. 물론 문화 예술의 최대 시장은 서울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경쟁 체제는 서울을 제외한 제2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은 통영과 평창(대관령) 쪽에서 일찍부터 음악제를 개최해 오는 등 지명도를 높여 왔다. 대중음악은 아직 뚜렷한 주자가 없는 가운데 고양시(일산)가 대중음악 공연장 건립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등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가평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인천 펜타포트록 페스티벌 등 서울 주변 도시들의 공세가 치열하다.

광주, 문화 예술로 먹고살 수 있다

오페라는 대구가 오페라 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자칭 타칭 오페라 도시가 되었다. 대중문화 쪽으로 눈을 돌리면 영화는 올해로 20회째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부산이 일찌감치 영화도시로 자리매김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영상 유관 기관의 이전은 물론 부산 영화의 전당, 부산 영화촬영 스튜디오 등이 세워졌고 최근엔 대규모 종합 영화촬영소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영화보다 훨씬 큰 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게임은 성남(판교)에서 선점했다가 정치적 힘이 막강한 대구에서 작년 대구 글로벌 게임센터를 오픈하는 등 게임 산업에 공을 들이면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상황이고,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부천이 일찌감치 자리를 틀었다. 무형문화재 분야는 전주가 전주 소리축제를 개최하더니 국립무형유산원을 유치하는 등 이 분야의 주인이 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예향 광주는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모든 문화예술 분야를 아우를 것인가? 앞에서도 보았듯이 이미 다른 도시에서 특정 분야의 문화예술 산업을 선점한 마당에 쉽지 않은 일이다. 또 광주시의 열악한 재정 상황, 인프라, 전문 인력, 지원 정책 등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는 학수고대하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올해 개관한다 한들 만족스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은 의외로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할 수 있고 남이 아직 크게 눈독들이지 않은 분야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지원 육성하는 것이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분야는 단연 미술이다.

미술로 말하면 호남 남화의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고, 현대 미술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지며 3,000명에 이르는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미술의 콘텐츠가 든든하고 탄탄하다. 무엇보다 20년 역사를 지닌 광주비엔날레는 이제 세계 5대 비엔날레 수준에 이르는 등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위세 때문인지 아직 미술 도시를 만들겠다는 도시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미술 특구, 예향 광주를 획기적으로 바꾼다

물론 미술은 순수예술 분야라 산업화가 쉽지 않고 경제적 효과 또한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도시 계획을 재검토하여 두 세 곳에 미술 특구를 조성해 보면 어떨까? 미술가들이 모여들고 스튜디오와 작업실, 갤러리가 가득한 미술의 거리가 들어서게 해보자.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확실한 시의 정책 의지가 필수적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가 부러워하는 미술의 거리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미술의 향취를 맛보러 이 거리를 찾고, 자연스레 광주는 문화관광의 도시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독특한 촬영 거리를 찾는 영화는 물론 드라마와 교양 프로그램 등 각종 방송 촬영을 위한 자연스런 세트장이 되고 이것은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술특구가 활성화되면 미술 작품 거래가 늘고 미술은 산업으로서 자리매김을 할 것이고 다른 문화 산업과 관광 산업의 발신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대동문화 89호 [2015 7,8월호]

광주비엔날레 박양우 대표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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