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말 그대로 향, 즉 지방에 둔 학교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자고로 유명하여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고을에는 반드시 이런 향교를 설치했고 향교는 대개 관아가 위치한 읍치 지역에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가끔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사례들이 있다. 전남 나주시에는 향교가 둘인데 시내 교동의 나주향교와 남평읍 교원리의 남평향교가 그것이다.

그런데 나주의 경우는 일도 아니라고 웃어넘기는 곳이 있다. 전북 고창군에는 향교가 셋이나 된다. 고창읍과 흥덕면, 무장면에 각기 향교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뭐, 전북까지 갈 것도 없다. 화순군에도 화순향교, 능주향교, 동복향교 등 셋이다. 그리고 나주 말고도 현재의 해정구역상 여수시에도 여수향교, 여천향교로 두 곳이고, 순천시에도 순천향교와 낙안향교로 둘이다. 이쯤 되면 대개 눈치 챘겠지만 한 지역에 향교가 여럿인 것은 예전 별개의 고을이던 곳이 그간 행정구역 통합을 통해 하나로 묶으면서 생긴 결과다.

왜 함평향교는 대동면에 있을까?

그럼에도 대개 향교는 관아 소재지와 인접한 곳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을 깨는 곳이 있다. 함평향교는 합평읍내가 아닌 대동면에 있다. 그래서 간혹 함평향교를 일컬어 소재지 면의 이름을 따서 대동향교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사실 함평향교는 원래 함평읍 내교리에 있었다. 지금 함평골프고등학교가 소재한 동네다. 그런데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이곳의 향교가 홀라당 타버렸다. 전란 뒤에 함평 사람들이 다시 향교를 같은 자리에 복구했는데 돈도 적잖이 들고 향교 인근 산도 어느 문중의 선산이 되면서 여러모로 원래 복구 의도와 맞지 않았다. 이후 향교를 지금의 대동면으로 옮겨 1630년대에 지금과 같은 면모로 향교를 다시 지었다.

그런데 지금이야 향교가 있는 지역을 대동면이라 부르지 당시엔 동현내면(東縣內面)이라 했다. 이름이 암시하듯 동현내면은 내교리가 속했던 서현내면과 함께 함평의 읍치였다. 다시 말해 현 향교 자리는 조선시대만 해도 함평읍내에 속했다. 그러던 것이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지금의 함평~영광을 잇는 23번 국도의 동쪽을 싹둑 잘라 대동면에 포함시키면서 졸지에 향교가 대동면에 있게 됐다.

헌데 함평향교를 길게 얘기한 것은 정말 이 향교를 말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사실은 이 향교가 위치한 동네인 대동면 향교리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숲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줄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도 있나요?

이 숲은 여러 수종의 나무로 이루어져 있고 나무들의 나이는 3백년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이 숲은 길을 따라 길쭉하게 펼쳐져 있어 한때 ‘줄나무’로 불렸는데 이 말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지금은 ‘함평 향교리 느티나무·팽나무·개서어나무 숲’이라는 엄청나게 긴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런데 2002년 필자가 이곳에서 만난 동네분들 얘기로는 그냥 향교숲 또는 향교리숲이라 부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왜 함평 사람들은 여기에 숲을 가꾼 것일까? 예로부터 함평향교가 들어선 자리는 천하의 명당이었더란다. 그런데 명당의 기운이 워낙 세서 일반인이 이곳에 집을 지으면 오히려 화를 입을 것이란 말이 있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과연 그런가 싶어 집을 지어 살아봤는데 정말 액운이 들어 집터를 포기했다고 한다. 결국 일반인이 살기에 벅차지만 성현을 모시고 교육하는 향교를 지으면 낫겠다 싶어 향교를 이곳으로 옮겼다.

그런데 좋은 기운은 철철 넘치는데 이것이 자꾸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문제였다. 향교리를 가보면 실제로 뒤편으로 산봉우리가 있을 뿐 주변은 온통 들판이다. 이른바 함평평야가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좋은 기운의 유출을 막기 위해 길게 둑을 쌓고 숲을 가꿨는데 이것이 지금의 향교리숲이 됐다고 한다. 둑은 90년대 중반까지 확연하게 남아 있었으나 그 자리에 길을 내면서 원형을 잃었다.

이렇게 숲을 조성하기는 했는데 이 숲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향교리숲은 용케 원래의 모습을 건사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영광 법성포에 가면 유명한 숲쟁이가 있다. 법성포 북쪽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숲이다. 이 숲은 1807년 겨울 법성포의 400여 가구에 큰 피해를 안긴 화재 뒤에 불의 재난을 막기 위해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수산봉 불기운을 막으려면 숲이 필요하다

함평향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819년 함평향교에 화재가 일어나 대성전과 명륜당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 사람들은 화재 원인을 단순한 인화나 불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향교리 서쪽 함평천과 너른 들판 너머에 수산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다. 원래는 세 봉우리가 서로 높이는 달리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가운데 봉우리는 해발 100여 미터, 좌우편의 봉우리는 그보다 절반가량 낮았다. 이 봉우리들은 먼발치에서 보면 다양한 모습으로 비쳤다. 주변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과 이어보면 마치 물결치듯 보여 말 그대로 수산봉(水山峯)이 된다. 또 세 봉우리만 따로 떼놓고 보면 언뜻 뫼 산(山) 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머릿속에 불 화(火) 자를 그리고 보면 영락없이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1819년 향교의 화재를 겪은 뒤 사람들의 뇌리를 가득 채운 것도 이 불의 형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산봉의 화기가 들판을 가로지나 향교리로 날아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숲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고 이것이 숲이 지금까지 온전한 모습을 지켜온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과연 수산봉은 불의 산이었을까? 수산봉 남쪽에는 수산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의 별칭은 화산(火山)이다. 수산봉이 불의 산으로 인식됐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정말 이 산이 불의 산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산에는 과거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사를 지내면 비가 내려 풍년이 들곤 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고자 영응비(靈應碑)라는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함평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상과 관념을 만들어낸 수산봉은 이제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수산봉이 나비축제를 위해 산 전체를 나비 형상의 관목으로 조성해서가 아니다. 필자가 기억하기에 이른바 나비 동산이 되기 전부터 이 산은 거의 민둥산에 가까웠다. 나비 동산을 꾸몄던 것이 잘못은 아니었다.

나비 동산으로 변한 수산봉의 정기

문제는 오른쪽에 있어야 할 봉우리가 지금은 없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이 봉우리를 허물고 그곳에는 공원과 도서관이 들어섰다. 공원과 도서관은 꼭 필요한 것이었겠지만 구태여 이 봉우리를 허물어가며 그곳에 세워야 했던 이유는 모르겠다.

요즘 지도에 나와 있듯 수산봉을 가운데의 가장 높은 봉우리만을 지칭한 것이라 생각해 다른 봉우리는 잘라내도 괜찮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아직도 수산봉이 액운을 불러오는 산이라 믿어서 일부를 잘라낸 것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숲은 전설을 머금고 산다. 향교리숲이 여느 가로수나 방풍림, 마을숲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을 일구고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서 수산봉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하나의 봉우리가 아니라 세 봉우리가 나란히 있었을 때 말이다.

대동문화 89호 [2015 7,8월호]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사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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