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을 한국 사회를 멘붕으로 몰아간 사건은 단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이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온 나라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태 이후로 국내 경제는 IMF 때보다 더 최악의 상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나라 상황이 마치 4백여 년 전 조일전쟁(임진왜란) 때와 흡사한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당시 선조의 무능한 조선 조정은 일본의 침략 야욕을 직시하지도 못한 채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돼 사사건건 대립하여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았다. 왕은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달아났고, 강토와 힘없는 백성들만 유린되고 도륙을 당해 아비규환을 이뤘다.

7년간의 임란왜란이 끝나자마자 조선은 청나라가 침략한 병자호란(1636년)을 당해야 했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로 항복을 했으니 우리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훗날의 환란을 없애기 위해 조심하다

임란 직후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懲毖錄)>을 썼는데, ‘징비(懲毖)’란 ‘내가 그 잘못을 뉘우쳐 경계하고, 다시 훗날의 환란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나 <징비록>의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임진왜란보다 더한 치욕을 당한 것은 역사의 뼈아픈 교훈을 무시한 대가였다. 조선 말에 이르러서도 임병양란보다 더한 주권을 강탈당한 채 질곡의 일제강점기 36년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했다.

세월호 사고 때 하나 같이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며 ‘징비’를 가슴에 새겼고, 범국가적으로 환골탈태해 한국을 재건설하자고 한 목소리를 내면서 야단을 떨었다. 그리고 참사 일주년, 메르스 사태를 당해 갈팡질팡하는 현정부의 무능을 보면서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한국 사회 답답한 현실을 보는 많은 국민들은 과연 한국의 미래에 희망이 있는가 묻고 있다. 지도자가 없는 나라, 리더가 없는 사회, 원칙이 통하지 않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산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 같은 시민운동도 사라졌고, 매체는 많지만 비판과 견제로 바른 말을 하는 언론은 없고 권력에 기생하며 연명하는 사이비 언론인만 득실거린다. 독재 정부는 눈치 볼 것 없는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치르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역사 속에 훌륭한 지도자의 롤 모델을 찾기 위해서인지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업과 공무원 사회에 부는 ‘이순신 리더십’ 배우기도 그런 맥락이다. 지난해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다룬 영화 ‘명량’이 극장가를 강타했다. 이에 앞서 ‘불멸의 이순신’이 있었고, 지금은 ‘징비록’ 등 안방사극 등을 통해서도 그 열기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한국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리더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꼽는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은 늘 스스로를 낮추고 귀를 열어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려 했던 것이다. 더불어 수시로 토론하면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하는 자세에 있다.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한글 창제다. 세종은 자신과 다른 뜻을 가진 대신도 멀리 하지 않았고 천한 백성이라도 귀하게 여겼으며, 능력이 있는 자라면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세종이 ‘나는 왕이로소이다.’ 하면서 오만에 빠져 글 없는 백성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면 한글 창제라는 신제품은 생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도자에는 보스와 리더가 있다. 보스가 힘을 이용하여 오만과 독선 독재하는 자라면, 리더는 공명정대를 지향하며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자이다.

소통하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

이순신과 원균을 보면 리더와 보스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좌수영 군막 안에 ‘운주당’이란 장군의 회의실이 있다. 이순신은 이곳을 일반 병사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토록 하여 부하들과 바둑도 두고 술도 마시면서 군부대가 어떻게 돌아가고 백성들의 삶이 어떠한가를 온몸으로 들었다. 딱딱한 회의나 격식을 차린 보고서보다는 자연스런 자리에서 그들의 고충과 아이디어를 가감 없이 들으면서, 수군의 경영과 백성들의 삶을 걱정했던 소통의 열린 공간이었다. 밥 공덕이라 했다. 마주앉아 밥 먹고 술잔 기울이다보면 만사가 막힘없이 술술 풀리게 마련이다.

반면 이순신의 뒤를 이은 원균은 운주당을 폐쇄하여 자신의 첩과 술자리 등 사적 공간으로만 사용했다. 정보는 두절되었고 상하 소통도 막혀 부하들의 충언도 무시하고 오만과 독선으로 조선 수군의 전멸을 초래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보스의 말로를 잘 보여준 예이다.

달콤한 소리에만 열리는 귀

지금의 박근혜 정부의 통치를 오만과 독선의 불통 정치라고 한다. 친불친 호불호(親不親 好不好)에 따라 지연과 학연의 계파로 나뉜 지역 차별도 노골적이다. 최근 아시아문화전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지역민들은 전당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닐까 하여 심히 우려하고 있다. 본래 조직의 지도자가 오만해지면 균형을 잃어 편협하게 되고 주변의 진정한 충고를 귀담지 않는다. 싫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지도자가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좋아하게 되면 참된 정보는 차단된다.

훌륭한 지도자는 자기 말보다는 남의 말을 잘 경청한다. 우리 관상(觀相)에서 귀가 큰 사람은 크게 될 인물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한국의 불상과 관음보살상의 귀가 이목구비의 균형으로 볼 때 파격적으로 큰 것은 아마도 중생들의 아픈 사연을 많이 듣고 자비로 구제한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상징일 것이다.

만백성의 어버이인 대통령의 귀는 당연히 커야 한다. 그러나 귀가 얇아서 줏대가 없으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크고 달콤한 소리만 골라 듣고, 작고 힘없는 사람들의 쓴 소리를 못 듣는 귀라면 굳이 커야할 필요는 없다.

달콤한 말에만 귀를 열게 아니라 쓴 소리에도 귀를 열어야 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몸에는 이롭다하지 않았던가? 서울시청 광장에 조각된 ‘대형 귀’는 현대판 신문고 격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 지도자들은 겸허하게 세종대왕과 이순신의 리더십에 대한 공부를 몸으로 체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운주당’의 정신이 부활돼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희망의 바람이 들불처럼 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대동문화 89호 [2015 7,8월호]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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