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유명 댄스 그룹의 한 가수가 솔로로 데뷔하면서 ‘락rock’ 음악을 하겠다고 하자, 누리꾼들이 일제히 그를 비난하거나 조롱하기에 나섰다. 그 때부터 그는 자기 생각이나 개념을 없는 자를 의미하는 ‘무뇌충’으로 불리며, 이른바 ‘국민적 밉상’이 되어갔다.

이미 반주와 노래가 녹음된 ‘AR(all recorded)’ 테이프에 맞춰 입만 벙긋거리는 가수가 ‘무슨 락 음악이냐?’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아이돌 그룹’의 댄스 가수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그의 노래 실력이나 숨은 노력이 무엇인지 따져 묻지 않은 채, 그의 ‘주제넘음’과 ‘경솔함’을 들먹이며 그에게 온갖 모욕과 악담을 막무가내로 퍼부었다.

인터넷 마녀 사냥의 사냥꾼과 희생양

미국 유명 대학의 학력과 졸업 여부를 두고 ‘인터넷 마녀 사냥’의 희생물이 되었던 또 다른 가수 역시 그렇다. 급기야 한 방송사가 현지 취재에 나서고 경찰과 법원이 그의 졸업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의문과 논점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그는 가수로서 명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조차 맘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높은 학력과 지능지수(IQ)에 대한 그의 말들에 대한 근거 없는 반감과 질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유․무명 인사에 관계없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사태는 주로 그 때문이다. ‘네가 잘 나봐야 얼마나 잘 났느냐’는 심리가 집단적 인식 공격으로 나타나거나 익명의 그늘 속에 숨어서 활동하는 사이버상의 테러로 이어진다.

어떠한 종류의 ‘잘남’이나 ‘앞서감’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도가 곧잘 특정 인사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와 저주로 투사된다. 세상의 가치 기준과 평판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이나 불신이 정당한 권위나 보편타당한 진실마저 외면하게 만든다.

제가 가진 능력이나 재주가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서로 다툼을 이르는, 일명 ‘도토리 키재기’라는 속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선 서로간의 의견 차이가 크지 않음에 강조점을 둘 때, 그것은 상호간의 화해를 부르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똑 같은 크기와 양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와 맞물릴 때, 그것은 서로가 가진 질적 차이와 깊이를 무시하는 폭력으로 전화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 그만그만한 모습의 ‘도토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뚜렷한 개성과 가치를 지닌 ‘도토리’들을 평균화하고 단순화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도토리가 키재기 한다?

‘못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은 또 어떤가. 그때그때의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남달리 유별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충고하는 의미가 담긴 이러한 격언은 자칫 한 인간이 가진 개성이나 장점을 사장시키거나 없애는 데로 이용되어 왔다. 또한 그것은 이른바 남과 다른 말과 행동들을 무조건적으로 폄하하거나 용납하지 못하는 옹졸함과 치사함으로 변질되곤 했다.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튀는 발언’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전직 대통령처럼 모난 언행을 불온시하거나 금기시하는 이러한 태도나 관습적인 사고는 극단적인 경우 당사자들을 자살로 내몰기도 한다.

자기들만의 공동체 결속력과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모두가 공모하여 하나의 희생양을 만드는 ‘왕따 현상’ 또한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어느 특정집단이 공유하는 임의적 가치나 규준에 벗어났다고 생각될 때, 여러 사람들이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집단 따돌림이 시작된다. 특히 그것은 어느 집단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이른바 ‘튀지 않는’, 조금이라도 모가 나지 않는 '평균적인 인간상' 에 모자라거나 넘쳐날 때 일어난다.

그 어디서도 검증받은 적 없는 자기들만의 행동과 가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가장 연약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괴롭히는 것이 왕따의 주된 원리이다.

그런 만큼 ‘왕따’의 주체들은 스스로가 타인들보다 더 잘 나거나 큰 ‘도토리’를 지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남이 잘난 꼴도, 못난 꼴도 안 보겠다는 심리적 평균주의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한다. 또한 그들은 도토리로서 나는 다른 도토리와 다르지 않으며, 특히 그럴수록 나는 다른 도토리들로부터 ‘함께 할 또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담합 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나의 삶과 가치 기준이 내가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대로 맞춰 살고자 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질 나쁜 범죄적 연대 또는 최악의 공모(共謀)로서 왕따를 양산시키도록 한다.

하지만 크기나 모양에 있어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세상의 어느 도토리도 똑같은 것은 없다. 외견상 ‘비슷하다’고 믿는 것은 양적이고 계량적인 차원의 착각이나 오해일 뿐, 세상엔 단지 하나의 도토리가 있을 뿐이다.

질적인 차원에서 볼 때, 모든 도토리는 그 수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필시 그 특성이나 모습이 제각각일지라도 모든 도토리는 그 자체로 완벽한 생명체이며, 무엇보다도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저만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일각엔 여전히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야합과 협잡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동시에 여전히 ‘너와 나 사이에 차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느냐’는 식의 무차별한 평등주의 내지 가치 상대주의가 판치고 있다.

각자가 쏟은 노력이나 그로 인한 고뇌의 깊이와 높이에 대한 성찰을 거부한 채 자기보다 뛰어난 자들을 무조건 깎아내리고 무시하는 데 급급하다. 자기희생이나 주위의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을 규명하고 진리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들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거나 이단자로 내모는 여론몰이가 심심찮게 눈에 띤다.

하지만 온갖 모욕과 조소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재기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두 가수가 보여주는 것처럼 ‘평범’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존재와의 차이를 드러내는 ‘비범’을 누르는 사회에선 진정한 영웅이나 창조의 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만의 개성이나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기보다는 주변의 눈치나 시대적 대세를 쫒는데 급급한 우리 사회 속에서 각자가 그들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고 자기성숙을 이루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 각자의 지닌 내재적 가치에 주목하지 못한 채 존재의 평등성만 강조하는 것은, 자칫 남자다움이나 여성다움처럼 마땅히 보호되어야할 진정한 차이마저 없애는 환원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

눈치만 보다가 도토리는 도토리가 되어버린다

모든 도토리들은 도토리라는 본질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평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서 발아된 상수리나무가 다 같이 동일한 가치를 가진 나무라고 할 수 없다. 한 알의 도토리에서 한 그루의 상수리나무로 성장하는데 있어 차별화는 필수 불가결하다. 상수리나무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화는 것처럼 이미 도토리와 전혀 다른 새로운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은 같은 크기나 부피로 환원시키려는 ‘도토리 키재기’의 사회에서 그 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급격하고도 완전한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 왕따현상처럼 힘 약한 희생양을 제물로 하여 겨우 유지되는 집단이나 공동체 속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모두가 해방되는 진정한 날들의 도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대동문화 89호 [2015 7,8월호]

임동확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