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홍어애국이 생각나 지인과 영산포 홍어거리를 찾았다. 탁 트인 영산강 줄기를 바라보며 아직도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영산포 등대를 바라본다. 1915년 일제가 나주평야의 수탈곡물을 배로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내륙에 세운 유일한 등대다. 강바람을 등지고 서서 홍어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스라이 보이는 200년은 넘었을 듯한 웅장한 팽나무 한그루, 그리고 빨간 벽돌집 한 채, 창고인 듯 아닌 듯 아리송한 일제강점기의 건물로 보이는 그곳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홍어애국을 맛보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좀 더 가까이 가서보니 ‘영산나루’라는 영산포에서는 보기 드물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 우측에 자리 잡은 빨간 벽돌집 안쪽을 기웃거리다가 화단에 낮게 서 있는 안내문을 보았다. ‘동양척식 주식회사 문서고’

영산포 홍어거리에 남은 일제의 냄새

일제 36년 한반도 강점은 우리 국민들의 얼과 혼이 송두리째 뽑혀버린 악랄한 암흑기였다. 일본식 2층 목조 건물이며 콘크리트 교량 등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그 시절의 잔재물들, 영산포 등대 역시 일제 강점기의 잔재물이고 이 문서고 역시 그 시절의 일그러진 유물이었다.

이 문서고 안내문의 상단엔 ‘나주 영산포 농지를 수탈하기 위해 1909년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 영산포 지점의 문서를 보관했던 곳’이라고 쓰여 있다.

1908년 일본은 ‘동양척식회사법’에 따라 조선의 경제 독점과 토지. 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국책회사인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를 세운다.(이하 ‘동척’으로 표기) 주요 목적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인 조선에서의 착취를 위한 것이었다. 동척은 조선 각지에 지점을 두고 농업용 토지와 건물의 매매, 임차, 경영을 자행한다.

수탈한 토지를 기반으로 일본인 농업 이주자들을 조선 각지에 정착하는 사업을 추진한 결과 1926년까지 약 1만호의 일본 가옥이 조선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동척의 지원 아래 직접 경작하기보다는 지주가 되어 조선 농민을 착취 압박한 일제의 대변자이자 앞잡이가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인 빈농 약 30여만 명이 토지를 상실하고 북간도로 이주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동척의 지점 건물로 부산, 목포, 대전 등이 남아있다.

나주시 영산동에 위치한 동척 영산포 지점은 1909년 설립되어 영산포 배후 농지를 약탈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궁삼면 사건이다. 현재 영산포 지점 건물은 문서고만 남아 있으며 문서고 역시 일반인에게 매입되는 바람에 내부는 안타깝게도 변형이 되어 있다. 문서는 해방 당시 신한공사에 넘겨져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당시의 내부 시설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나마 다행이도 레스토랑 업주는 그 건물을 남겨놓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만행을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나주 궁삼면을 전국1호 수탈지로 삼아

나주 궁삼면 지역은 동척의 대표적인 피해 지역이다. 궁삼면은 행정상의 지명이 아니고 3개면(현재의 나주 영산포, 왕곡, 세지 등)을 일컫는다. 동척이 설립된 직후 최초 매수 대상지가 궁삼면이었다. 나주는 기후 풍토 및 경작 상태로 볼 때 일본인 이민을 수용할 여유가 많고 모범적 농촌을 경영하는 데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전 흉작으로 잠시 떠나있던 농민들에 대한 토지가 국가 조세를 담당했던 경저리의 농간으로 경선궁장토로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척은 경선궁에 토지 매각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선궁은 “이 토지는 면민과의 계쟁지여서 매각하기 어렵다”며 처음에 거절했다가 조선총독부의 압력과 농민의 저항 때문에 시가 200만원에 상당하는 토지를 단돈 8만원이라는 헐값에 매각한다. 매수 면적 중에는 기존의 경선궁장토와는 관계없는 토지도 포함되는 등 동척의 토지매수는 약탈 그 자체였다. 동척의 강제 토지 매수 이후 농민은 동척을 상대로 토지 소유권 확인 및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궁삼면 사건은 나주군의 궁삼면 토지가 동척에 매수된 1909년부터 1945년까지 농지 회수를 위한 최장 기간의 항쟁을 벌인 일제 36년사에서 최대의 사회 문제 중 하나였다.

일제의 잔재물 역사 교육 자원으로 영원히 남겨야

나주 영산포에서 영암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혁신도시를 통해 오는 길과 만나는 왕곡면 소재에 당시 사건에 대한 농민운동 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둘러보았다. 책에서 보는 자료만 가지고 일제의 만행을 느끼는 것과 잔재물들을 직접 보면서 느끼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다. 일제는 척식(개척과 식민)을 통해 본격적인 한국 강점 준비에 들어간 일본, 일본인 농민을 한국의 각 지방에 침투시켜 한국 농업을 장악할 인적 기초로 삼고 동시에 일본의 식량 문제,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당시 한국 각지에는 개항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수많은 일본인 농사 조합과 농업 회사들이 설립되었는데 일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국책회사로서 동척을 설립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존과 민족성, 그리고 의로운 항거 정신으로 우리 후대에 자랑할 만한 자랑거리를 남겨야 한다.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을 뒤로한 채 사라져가는 그 잔재물들이 아쉽기만 하다. 동척의 영산포, 목포 지점은 일제의 수탈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가야 할 우리의 근대 문화유산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재 영산포 지점이 외형적인 문서고로만 보존되어간다는 것이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연장되었던 신한공사 역시 동척의 잔재물로 확인되고 있다.

1951년도 토지 개혁 시점까지 신한공사의 소작료 징수는 일제의 그 잔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우리나라에 대한 또 다른 억압과 탄압이다. 이러한 면만 보더라도 일제강점기 잔재물들을 보존하여 눈으로 직접 보고 몸소 느끼는 역사적 인식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동문화 89호 [2015 7,8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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