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06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하며 발표한 ‘신국토 구상’을 보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신국토의 미래모습은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나가는 거대한 파이(π)형을 이루게 된다. 대한민국 생존의 조건을 내걸고 국토구조를 파이형, 다핵·분산형, 글로벌형으로 바꿔 전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는 동시에 제2의 국가도약을 이루겠다는 계산이다. 이를 위해 국토발전의 기본 방향을 국가주도가 아닌 지역주도, 수도권 집중이 아닌 다핵·분산형 구조, 개발위주가 아닌 친환경적 발전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계획이었다.

그 후 10년, 전국 10개 혁신도시(革新都市, Innovation City)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힌다는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의식주의 미래형이 혁신도시라면, 불과 10여 년 전에 이런 도시계획을 꿈꿨을까. 주말이면 짐 싸들고 이리저리 떠돌아야 하는 직장인도 문제지만 원도심의 공동화는 예견된 미래였다. 그러나 시위를 떠난 활이라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혁신도시의 활성화는 지역사회의 미래가 달려있는 중대사항이다.

목사골 나주는 예로부터 문물의 통로가 된 곳이다. 빛가람동의 김문석 동장은 “현재 혁신도시가 진통 중에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인구도 빠르게 유입되어 정착하고 있으며, 지난 9월 15일에 1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 추세대로라면 연말쯤에 1만 3천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시형성의 척도가 되는 것은 인구, 빛가람동의 1만명 가운데는 관외 전입자가 84%에 이르고 있다. 또한 혁신도시의 상징이자 컨트롤타워가 될 빛가람 에너지밸리센터가 지난 9월 16일에 착공식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수도가 빛가람에서 시작하는 기념비적인 날이 됐다.

정주여건 시급한 기러기 아빠들

그러나 희비가 엇갈리는 빛가람 혁신도시. 처음 목표했던 5만 명의 정주인구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한국전력을 비롯한 16개 기관 중에 15개가 입주를 마친 현재 7천 명 정도의 기관 종사자들이 입주를 마쳤다. 혁신도시의 건물 분양은 70%를 넘었지만 입주율은 10% 선, 아직은 도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더구나 문제는 정주여건 개선이다. 대부분의 건물이 깨끗하게 신축된 데다 도시계획도 잘 되어 있지만 정작 미관을 해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각종 불법 광고물과 유흥업소가 난립하는 등 폐해가 나타나고, 건물이나 아파트 분양을 알리는 불법 현수막도 방치된 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빛가람 혁신도시는 전국에서 그 규모가 자장 작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도시의 이념구현에 적합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전 기관 이외의 건물이 난립하고, 유흥시설로 채워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 교육 인프라가 없기에 직장인들의 가족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주를 마친 20~30대의 젊은층의 불만은 쌓이고, 40~50대의 중년층은 아예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50대 이후의 장년층에서는 오히려 시골생활을 좋아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최소 5년에서 7, 8년은 잡아야 좀 안정되고 활성화 될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이정도의 문제들은 미리 예견했을 것인데, 왜 대책을 강구해 놓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1만 여명의 직장인이 옮겨오면 가족과 아이들의 교육과 생활에 대한 배려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기관원들조차도 생활근거지라 생각 안하고 있다. 잠시 일하다 떠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증거로 주말이면 한국 전력만 해도 35대의 전세버스가 대기, 직원들을 태워 서울 등지로 이동한다. 직장인의 엑소더스로 버스의 불빛이 장관을 이룬다. 회사는 회사원의 복지차원에서 전세버스를 동원하지만, 실제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고단한 몸을 실어야 한다.

서울까지 간다는 40대의 직장인, 매주 금요일이면 4시간씩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고 또 일요일 오후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이곳에 온다고. 저녁 6시가 넘자 여행가방을 든 사람, 끄는 사람, 이불보따리까지 싸들고 버스에 오른다. 정말 기관만 옮겨왔지 생활권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를 이곳 사람들은 나베리아(나주시베리아)라고 부른다.

주거문화를 보면, 기존의 아파트와 별 다름없는 메마르고 까칠한 콘크리트 덩어리만 보인다. 이것이 어찌 2030년을 바라보는 신도시의 모습일까. 아무 차별성 없이 지어지는 아파트, 고층건물만이 혁신도시의 모습인가. 그것이 살고 싶은 미래도시 계획이었던가. 학교라고 해봤자 빛가람초에 봉황고. 이런 인프라로 이주를 운운하기에는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그러자 원룸족들을 타킷으로 하는 술집이나 유흥가가 속속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볼 것도 없고 즐길만한 문화도 없는 척박한 도시환경, 일 끝나면 술이나 한잔하는 거지라는 푸념 섞인 한숨만이 나온다.

나베리아

나홀로 혁신도시

최근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방근무를 하느니 차라리 퇴직하겠다’는 비율이 최고 20.5%라고 한다. 광주·전남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간 임직원 7천 227명 중에 170여명이 희망퇴직을 했다고 밝혔다. 전국에서 빛가람 혁신도시가 가장 높았고, 대구와 충북이 뒤를 이었다.

빛가람 혁신도시의 배후도시로 나주 구도심은 한숨, 광주는 웃고 있다. 광주의 봉선동, 노대동과 선운지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혁신도시의 정주여건이 좋지 않아서 광주로 유입된 경우다. 혁신도시의 예상인구 5만 중에서, 이주기관의 100%가 정주해도 2만, 나머지 2만은 나주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주 구도심과 인근 읍면의 인구이탈이 예상된다. 나주 구도심에 있다가 혁신도시로 사업장을 이전한 사례도 많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최근 사업장을 이전한 D증권 관계자는 말한다. “지금은 걱정보다 공동화 대처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 혁신도시 활성화 방안에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이곳 혁신도시는 지리적으로 사통팔달의 명당 중의 명당이다. 시간의 문제일 뿐 활성화가 안 될 수가 없다. 서로가 지혜를 모아 그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처음 노무현 정부에서 발표한 혁신도시의 단계별 개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1단계는 2012년까지 공공기관의 이전과 정착단계, 2단계는 2020년까지 혁신도시에 유치된 민간기업, 대학, 연구소 종사자들이 산·학·연 연대로 정착하는 단계다. 그리고 3단계는 2030년까지로 혁신도시의 확산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르면 혁신 클러스트 확산에 따른 일자리 등이 안정 될 것

을 내다봤다. 지금은 1단계의 마무리 단계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듯이 2020년, 2030년의 미래를 향하여 지혜를 짜내야 한다.

서로가 지혜를 모으면 어떤 난제도 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호혜원 폐업(이전)’이다. 혁신도시 입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축산악취문제가 해결됐다. 이렇듯 하나하나 난제를 풀어간다면 빛가람 혁신도시는 점점 터무니를 잡아 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2천년 마한역사를 재조명하며 ‘마한문화축제’가 열렸다. 국립나주박물관과 반남고분군 일원에서 펼쳐진 ‘마한인의 귀환’은 빛가람 혁신도시가 활성화 되면 더욱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또 나주대교와 빛가람대교에 조성된 아름다운 억새밭 ‘영산강 억새와 사랑축제’도 나주의 가을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문화축제였다.

호남고속철 KTX 개통으로 서울과 나주간의 1시간 50분 만에 오갈 수 있게 됨에 따라 2천년 나주 목사골도 서울에서 한나절 관광권이 되었다. 천년 목사골 나주는 향교와 금성관, 목사내아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얼마든지 있다. 봄이면 배꽃, 가을에는 홍어젖갈축제, 공산의 금광토굴 곰소젖갈 등의 특산품도 있다. 나주의 영산강은 미래를 여는 21세기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대동문화 91호 [2015 11,12월호]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