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쉘 오바마의 텃밭배추, 펑리위안의 고춧가루

2013년 미쉘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직접 담근 김치와 자세한 김치 레시피를 트위터에 공개하여 월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또한 2015년 괴산 유기농 박람회에 ‘미쉘 오바마의 텃밭’이 재현되어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중국에서도 김치가 선풍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부인인 펑리위안 여사도 김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2014년 국빈 방문 시 김치 체험에 참여했고, 귀국 후에는 주한 중국대사에게 “한국의 고춧가루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김치의 역사 1,300여년,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에서는 추운 겨울을 날 절임 음식, 딤채가 탄생했다. 마늘과 생강, 고추 등 모든 재료가 약선이며 오방색이 모두 사용된다. 말 그대로 식약동원의 음식으로 김치의 식재료는 모두 약이다. 또한 발효 음식이다. 유네스코는 2013년 한국의 김치와 김장문화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고 한국은 김치의 종주국이 되었다.

김치 교육의 대모, 김치 전도사 김정숙 교수

발효 김치가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린 시절에 먹어 본 경험이 없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의 엄마들은 김치를 안 담고 잘 안 먹는다. 수입김치가 판을 치고, 건강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져서 식당 김치를 먹기를 꺼려한다. 점점 김치에 대한 그리움이 사그라지고 있다.

김치의 종주국인 한국, 김치의 조기교육을 역설하며 세계 방방곡곡에 김치 문화를 전파하는 김정숙 교수를 만났다. 런던, 파리, 워싱턴, 센다이 찍고 중국, 호치민, 페루, 우즈베키스탄을 돌아 터키, 러시아 등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김정숙 교수. 김치와의 인연은 찹쌀 궁합의 필연이었다. 조리과 교수로 학생들에게 살림살이의 기본은 반찬 만들기가 아닌가. 그중에서도 김치는 한국 음식의 핵심으로 그녀의 김치 사랑은 당연한 것.

학생들과 김치 공장 견학을 갔는데,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모두 연로한 할머니들이인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김치를 만들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답을 찾듯이 사명감이 생기고 김치학과를 전국 최초로 개설한 것이 2005년의 일이다. 김치를 반찬에서 교육으로 끌어 올리며 다양한 연구를 시작했다. 먼저 자료를 모으는 일, 김치 박사도 많고 김치에 관한 논문도 많았지만 정답은 없었다. 김치 종주국에서 김치 담그는 것을 가르치는 유일한 대학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전남과학대학교에서 김치발효과를 이끌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본격적인 10년, 김치책만도 3권을 썼다. 학생들 가르치다 보니 교재가 없고, 서로 달라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서로 다름을 부정했으나, 김치는 서로 다름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치는 생물이기에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르고, 손맛과 입맛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김치는 하나로 통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를 울린 김치, 김치 한조각의 힘

김정숙 교수의 초등학교의 꿈은 선생님, 중학교의 꿈은 시인이었다. 그녀는 겨울철 처마 밑에서 시래기 우는 소리를 들었다. 선생님의 꿈도 시인의 꿈도 다 이뤘다. 그러나 요리 선생님이 되어서 시래기국을 끓어도 어머니 맛이 나지 않았다. 엄마는 멸치와 된장을 풀어서 끓였을 뿐인데, 요리 선생인 내가 귀한 쇠고기를 넣어 끓여도 엄마의 그 맛은 나지 않았다. 그것이 엄마 요리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 두레 밥상에 앉아서 수저 적시고 먹었던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아쉬움, 음식이란 허기를 달래기에 앞서 위안이 되고 행복을 충전하는 기능도 있다.

한번은 워싱턴의 한인 축제에서 김치 시연 행사를 할 때다. 동행 중에 한 분이 친척을 준다고 묵은 김치를 가져갔어요. 그때 한 할머니가 다가와 전시용 묵은 김치를 사겠다고 하는데 파는 것이 아니라고 했더니 가시다 돌아오셨어요. 그리고 작은 손가락 마디를 보여주며 이 만큼만 먹어볼 수 없냐는 거예요.

눈빛이 간절해서 조금 잘라드렸더니 입에 넣고 몇 걸음 걸어가다가 멈추어 큰소리로 “바로 이 맛이야, 내가 19살 때 목포에서 먹어봤던 그 김치 맛!”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목덜미에서 뜨거운 전류가 흘렀어요. 70대 중반의 여인이면 50여년은 미국에서 살았을 텐데 어렸을 때 먹었던 김치맛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치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고향에 대한 향수인거죠.

가족을 식구라고 하는 것처럼, 음식을 나눠먹는 사이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정한이 생긴다.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고려인 김치 축제가 있었다. 할머니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오셨다. 북한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원색의 한복과 말투였지만 얼마나 그리운 김치였으면 한번 받고 또 다른 줄에 오래 기다려 김치를 받아갔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 이후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면서도 잊지 않았던 김치, 어쩌면 고려인을 살린 것은 김치가 아니었을까. 그 혹독한 겨울을 견딘 것, 지금도 고려인은 김치를 담가 먹는다. 물론 토속 한국의 김치는 아니었지만, 마늘과 소금, 고추를 넣어서 고추물에 막 썬 배추를 넣은, 나박김치의 건지만 건져둔 듯 희멀떡한 김치를 먹고 있었다. 러시아사람은 안 먹는 고려인 김치, 더욱 김치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는 30만명 이상의 고려인 후손들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 김치는 어머니와 같은 음식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를 위해 차린 ‘고려인김치’가 놓인 상 앞에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조국을 그리워하는 김치 한보시기에 울었고, 우리나라가 살만하면서 잊고 살아온 미안함 때문에 울었고, 조국의 발전에 친정집 경사처럼 자부심을 갖고 있어 울었다.

세계인의 건강식 “김치예찬”

세계적으로 절임 음식은 대부분의 나라에 있다. 중국은 파오차이, 일본은 즈께모노, 인도는 아차르, 태국은 팟깟덩, 독일은 사우어크라우트 등인데 대부분 1차 절임이고 한국의 김치만이 2차 절임 즉 발효음식이다.

2008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된 이소연이 가져간 볶음 김치, 어떤 나라에도 오방색, 오미가 다 들어간 요리는 없다. 단연 김치다. 먼저 빨강색의 고추는 심장이다, 미나리와 파의 초록색은 간, 마늘과 생강의 노란색은 위장, 검정색인 젓갈이나 표고버섯은 신장이고, 흰색의 무는 기관지나 폐에 좋다. 오장육부에 도움이 되는 한 접시, 김치에는 맵고 짜고 시고 달고 감칠맛나는 오미가 다 있다. 이보다 훌륭한 음식이 있으면 말해 달라. 더구나 김치는 중용의 도를 지키는 음식이다. 마늘을 많이 넣으면 누린내가 나고, 생강이 많으면 쓴맛이 난다. 따라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적당함, 중용의 미가 김치에 있다. 비만, 고혈압에 가장 좋은 원푸드가 김치다.

음식 문화는 그 나라의 얼굴이다. 김치는 냄새 나는 변방의 음식이 아니라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적 음식이다. 1천 년을 이어 온 우리나라의 얼의 음식이다. 2~3백가지의 재료, 모든 채소가 김치의 소재다. 뿌리채소, 줄기채소, 잎채소, 한국의 김치는 한국 어머니의 숫자만큼 다양한 살아있는 생물이다. 따라서 김치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담그는 것, 햇볕과 온도, 시간 그리고 용기 등의 조합으로 발효되는 김치, 김치는 과학이다.

세계를 돌며 김치를 전파하다

터키의 MAM연구소에 2주 동안 ‘김치기술전수’교육을 했다. 우리가 원하는 배추가 없었고, 터키 연구원들이 젓갈 냄새가 싫어서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생각한 것이 현지식 김치였다. 한국식 배추김치가 아니라, 그 지역의 야채로 담는 현지인들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김치를 팔기 위한 상술이 아니라 김치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김치 세계화를 열어가는 길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급해 하지 않고 세계인들이 건강식품으로 효용을 인정하여 스스로 만들어 먹게 해야 진정한 김치 세계화가 된다. 김치를 식문화의 하나로 국제 사회에 소개하여 가난한 사람들도 자기가 가꾼 채소와 양념으로 김치를 담가 먹게 가르쳐야 한다.

김치가 세계화하려면 빵 문화권 보다 밥 문화권에서 부식으로 김치를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동남아 지역 가난한 주민들에게 부식으로 김치 보내기 운동을 하면 어떨까? 김치 담는 법을 가르쳐 주고 김치 요리도 가르쳐 준다면 김치문화 수출은 김치수출로 이어지고 김치의 고유명사와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문화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고, 발효 또한 시간이 필요한 일, 김치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상업적인 접근보다 교육과 지역화로 접근해야 한다.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일본 센다이에서 11월에 세계김치연구소와 3회째 ‘김치페스티벌’이 열린다. 지난해에는 현지인들과 600포기의 김치를 담았다. 배추에 고춧가루를 버무리는 것을 김치로 알았던 일본 사람들과 기무치가 아닌 젓갈을 넣은 김치를 담가 피해 입은 분들에게 나누는 행사를 했다. 행사 후 한국 김치 코너로 뷔페를 진행했는데 막 담은 김치에 수육과 굴을 싸먹으며 김치의 다양한 맛과 많은 부재료에 현지인들이 놀라워했다. 더구나 발효 김치의 효능은 일본의 겉절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알렸고 김치와 기무치는 비교할 대상이 아님을 보여줬다.

김치교육의 메카 광주김치타운 김치아카데미

늘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에는 열정과 지치지 않는 꿈의 파장이 좋은 에너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시너지가 된다. 김정숙 교수는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대한민국김치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광주김치아카데미는 김치진흥법이 생긴 후부터 농식품부, aT,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정한 김치전문교육기관, 김치 교육훈련 기관이며, 2가지 교육 기관으로 인정받은 유일한 곳이다.

김치아카데미에서는 김치 및 발효식품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김치 소믈리에 과정을 비롯하여 간장, 젓갈, 식초, 가양주 등 안전한 먹거리와 생명의 밥상을 차리는 곳으로 김치전문교육으로 유일한 창구다. 전국 각지에서 교육생들이 몰리는 이유이다.

광주는 발효식품 교육의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광주김치타운, 그리고 광주 김치아카데미다. 5년이나 10년 후에는 광주김치타운, 김치 발효과를 거치지 않고는 전문가 되기 힘들 정도로 김치의 메카가 광주 김치 아카데미라고 자부한다. 정말 주춧돌을 쌓는 마음으로 간다. 세계인들이 와인을 배우러 프랑스 파리로 가듯이 김치를 배우러 광주로 몰려오는 때를 꿈꾼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광주는 한국 전통 발효식품의 메카가 되어야 한다, 풍부한 식재료의 집산지, 빼어난 솜씨와 맛과 멋을 아는 광주의 특성을 살려 발효 학교 과정을 만들고 한국 발효 음식의 세계화에 앞장서야 한다. 여기에는 지자체와 시민의 관심이 꼭 필요하다. 광주 김치타운이라는 훌륭한 시설, 검증된 건강 식품,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지속가능하게 지원을 해야 한다. 광주시에서 발효학교를 설립하여 교육한다면 아시아의 발효학교로 건강한 식문화의 진원지가 될 것이다.

실적보다 중요한 것은 은근과 끈기, 기다림의 미학이다. 광주 세계김치축제도 고정된 장소 없이 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광주김치타운에서 개최한다. 앞으로는 계속 김치타운을 활성화시켜 나가 김치와 발효식품의 메카로 세계인에게 전파를 해 나가야 한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 한 그릇과 어머니의 김치 한 조각이 있다. 뜨끈한 정이 있다.

대동문화 91호 [2015 11,12월호]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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