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는 꼭 사람만이 아니다. 예술 작품도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다. 예술작품에는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살았던 예술가의 정신과 지혜가 담겨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술가가 몸담고 살았던 나라 사람들의 심미안이 담겨 있고 취향과 종교와 삶의 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오랜 역사가 숨어 있다.

그림 속에 웅축된 고뇌의 생애

그림 한 점은 단순히 종이나 비단 위에 물감을 칠한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선을 얻기까지 숱한 세월을 고뇌하며 몸부림쳤던 작가의 생애가 응축되어 있다. 그래서 먹으로 그린 선은 작가의 생명줄이자 감상자를 깨어나게 하는 영혼의 울림이다. 그림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작가는 시대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우리에게 영혼의 메시지를 전해줄 것이다. 들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언제든지 들려줄 것이다.

동양화에서 명화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그림에 ‘기운이 생동해야’ 명화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려야 기운이 생동한 그림이 되는 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기운 생동한 세계가 어떤 것인지 그림과 함께 살펴본다.

동양화는 지극히 철학적이면서 친절한 배경 설명이 필요한 그림이다. 그림 속에 소나무를 그렸을 때 그 소나무는 단순히 감상하기 위한 소나무가 아니라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한 남자가 강가에 앉아 낚시 바늘을 드리우고 있는 그림은 그 주인공이 물고기를 잡는 한가한 낚시꾼이 아니라 자신과 포부를 함께 할 사람을 기다리는 강태공임을 의미한다. 그림 속에 숨겨진 상징을 이해할 때 그 상징은 희한하게도 지금 내가 고심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열어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것이 동양화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와 교훈이다.

작가들의 삶 또한 그림 못지않게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역적의 후손으로 몰린 심사정, 망국의 한을 품고 벙어리 흉내를 내며 살았던 중국의 팔대산인, 이민족이 지배하는 조정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지조를 지킨 조맹부 등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오로지 한 필의 붓을 돛대 삼아 부침이 심한 시대적 격랑을 헤쳐 나간 사람들이다.

이상좌는 노비 출신으로 중종의 총애를 받는 화원이 되었고, 황태자처럼 살다 몰락한 집안의 김시는 조선 중기에 절파화풍의 대가가 되었다. 인생을 정리해야 될 나이까지 백면서생으로 초야에 묻혀 산 강세황은 나이 환갑이 넘어 승천하는 용처럼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 명문 집안에서 명문으로만 살면서 중국과 조선의 예단을 휘젓던 김정희는 말년에 8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를 통해 ‘추사체’를 완성한 대가로 거듭났다.

예술가들의 삶은 개별적이지만 자신에게 달려드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확립했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진즉 포기했을 것 같은 순간에도 그들은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그 고통을 곰삭히고 발효시켜 예술 세계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그림 한 편으로 설핏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태했던 영혼을 맑은 물에 헹구듯 명료해질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 이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이생진 시인은 ‘나는 GNP가 늘어나는 것보다 수평선이 늘어나는 것이 좋아.’라고 했다.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작고 소소한 삶의 행복에 있다. 때로는 내 의견과 다른 남의 의견도 들어보며 공감하고, 같은 상황도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즐겁고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힘껏 사랑하자

더욱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을 그림과 함께 살펴보겠다. 정선의 ‘금강전도’와 ‘장안사’를 통해서는 인생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 하고, 안중식의 ‘도원문진’을 보고서는 한 발짝 물러서 남을 비판하는 대신 그 마음을 이해해보는 자세를 살펴보겠다. 남을 판단하려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여유가 생기는 것 아닐까.

살아가면서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잊지 말자는 생각으로 정한 제목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고달픈 인생이 더욱 행복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늘 곁에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퉁명스럽게 대하고 마음을 나눠주지 못한다. 그 마음을 김정수 작가의 ‘축복’이라는 작품을 보며 되돌아보았다. 광주리에 가득 담긴 진달래를 보며 가까운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기에 때로는 함부로 대할 때가 많지만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선택한 그림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생떽쥐뻬리는 ‘어느 도시가 의미 있는 것은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떨어지는 순간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대상이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다. 말도 잘 안 듣고 매일 속만 썩이는 아이마저 실은 우리와 함께하며 마음을 나눌 시간이 그리 오래지 않다는 것을 알면 지금 이 순간을 있는 힘껏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높은 벼슬을 했음에도 얼굴의 검버섯까지 생생하게 그린 ‘신임 초상’을 통해서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살펴봤다. 지금이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언젠가는 고통이 꼭 끝나기’ 때문에 그 시기를 이겨내는 믿음을 가지면 된다. 또한 지금 누군가를 몹시 미워하고, 분노하는 사람에게는 김홍도의 ‘추성부도’에 나온 가을 낙엽처럼 분노도 떨어트리고 가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동양화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

재능이 없다고 고민하고 좌절한 사람은 손봉채 작가의 ‘물소리 바람 소리’를 감상해보자. 그의 작품은 큰 나무조차 작은 이파리에서 시작했다고, 재능은 타고나는 것뿐 아니라 노력으로도 이룰 수 있다며 우리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또한 나는 왜 이리 늦될까 하며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예순 살에 처음 직업을 가진 강세황의 인생을 들여다보자.

강세황은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언제든 시작할 수 있을 때부터 열심히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내가 언제쯤 최고가 될까 하며 고민하는 청춘이 있다면 임서령 작가의 ‘매력 뿔’을 감상해볼 일이다. 그녀의 그림은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라며 늘 자신감을 가지고 살면 된다고, 나도 그렇게 살겠다고, 그러니 우리 함께 자신감을 잃지 말고 살아가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우리는 넘어지더라도 언제든 일어나 다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아주 숭고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숭고한 영혼은 쉽사리 절망하지 않는다. 사소한 일에 불평하지 않는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더 많이’ 갖고 사는 것보다 ‘느리고, 불편하게, 더 적게’ 갖는 삶을 지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과정에서 사소하게 여겼던 꽃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이, 길가에 핀 꽃을 바라보며 살기를 바란다. 어느 장소, 어느 길 위를 걷더라도 그 길옆에는 항상 꽃밭이 있기 때문이다. 사막에서도 꽃은 핀다.

대동문화 91호 [2015 11,12월호]

조정육 그림 공부 인생 공부 저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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