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급속하게 얼어붙고 개성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개성은 한때 수도였으며 중심이 되는 지역이었다.

'개성(開城)'이란 지명을 그대로 풀자면 ‘성문이 열린다’는 뜻이다. 남북 간의 대문 역할을 한 곳이 개성이고, 창구 역할을 한 곳도 개성이었다. 그러나 남북 양국 간의 이해에 따라 개성(開城)과 폐성(閉城)이 반복되고 있다. 남북 간의 대화는 끊어지고 금강산과 개성 관광도 막힌 지 오래다.

개성공단이 민간교류 역할을 희미하게나마 이어왔지만 공단의 자금이 미사일 발사에 쓰였다하여 하루아침에 폐쇄되고 만다. 수많은 노동자들은 자고 일어나 보니 일자리를 잃었고, 기업은 줄줄이 파산 직전에 몰리게 되었다. 뉴스를 접하는 모든 국민은 남북 긴장이 고조되는 이 같은 상황에 불안하기만 하다.

우리의 금강산은 영영 ‘그리운 금강산’으로 남게 되는 것인가, 이산가족들의 상봉은 어떤 창구로 재기 가능한 것인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비극은 언제 끝이 날 것이며 남북 간의 평화통일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렇게 냉전시대로의 회귀인가.

이렇게 보니 개성은 민족분단은 물론, 질곡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고을인 듯싶다. 온갖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애처로운 고을, 개성의 회고가(懷古歌)가 떠오른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여말 삼은(麗末三隱)의 한 사람인 대학자 야은 길재의 시조이다. 개성은 고려 오백년의 도읍지이자 태조 왕건의 선대 개성 왕씨들의 본향이다. 소나무가 많은 송악산의 이름을 따서 송도(松都)라고 불러 왔던 곳이다.

이성계의 전주이씨가 조선을 창업하면서 왕도(王都)가 송도에서 한양(서울)으로 천도되었다. 오백 년 동안 누리던 고려의 영화는 끝이 났고, 왕씨들 또한 변성(變姓)을 하거나 개성을 떠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슬픈 운명이 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초상집처럼 변해 버린 개성. 폐허가 된 개성 시가의 모습은 필설로 표현키 어려운 처참한 몰골이었다. 박탈감에 빠진 개성의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졌다.

지나는 길손에게 숙식은 고사하고 문전박대는 당연한 일사였다. 이러한 개성의 폐쇄적 분위기는 조선 후기에 이르도록 지속되어 왔다. 마치 공단이 폐쇄된 오늘날의 개성의 실상이 옛 개성의 재현인가 싶어 안타깝기만 하다. 이 무렵 방랑시인 김립(삿갓)이 개성에 찾아들었다. 성문은 굳게 닫혀있고,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길손을 박대하며 인심은 각박했다. 김삿갓은 한 수의 시를 읊어 개탄해한다.

고을 이름을 개성(開城)인데 어찌 문을 닫았으며(邑號開城何閉門)

산 이름은 송악(宋岳)인데 어찌 산에 나무가 없는 것인가(山名松嶽豈無薪)

황혼녘에 길손을 내 쫒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요(黃昏逐客非人事)

동방 예의의 나라에 오직 그대들만 만행을 일삼는 것인가(禮義東方子獨秦)

2008년, 대동문화재단은 <고려 5백년의 숨결을 만나다>라는 주제의 화필답사를 위해 개성에 간 적이 있다. 화가 17명과 회원 29명 등 46명이 참여했다. 개성에 들어선 순간 가슴은 뛰었고, 동시에 분단의 비극이라는 현실 앞에 침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서울에서 불과 70킬로미터,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는 개성은 북한의 ‘경주’로 불리는 곳이 아닌가? 고려 5백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하다. 아름다운 절경과 수많은 문화유적, 시인 묵객들의 자취가 절절히 배어있는 가슴 저미는 땅 개성. 천하절경 박연폭포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충절의 상징 포은 정몽주의 유적 선죽교와 그를 기리는 숭양서원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고려 성균관, 고려 왕건릉과 공민왕릉 등 왕릉군, 만월대, 연암 박지원의 유적 등이 즐비하다. 박연폭포는 절개의 선비 화담 서경덕, 조선 제일의 명기(名妓)이자 여류시인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리지 않는가. 또 백호 임제와 옥봉 백광훈, 김삿갓 등의 풍류 스토리도 이곳에서 이뤄진 것이 많다.

조선 창업을 거부한 고려의 선비들이 숨어 들어가 산 곳이 두문동(杜門洞)이니 이 또한 폐성(閉城)인가? 개성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5백년 역사의 명암과 시대의 영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땅이다. 한국전쟁의 참화도 피해갔던 개성의 역사유적지는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개성은 고을 이름대로 활짝 열려야만 살 길이 있다. 남북 또한 서로가 활짝 열고 소통할 때 비로소 통일도 가까워진다는 것쯤은 초등학생도 알만한 일일 게다. 남북관계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말로는 소통하면서 현실은 여전히 불통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철수하고 열려야 할 개성이 폐성이 되어, 제 이름 구실을 못하는 고을 두문동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화려한 옛 고려 도읍지가 한양 천도 후 좌절을 통감하다가 오늘날 화려하게 개성공단으로 부활한 듯 보였다. 하지만 남북의 몇몇 정치노름에 속수무책 희생양이 되었다. 좌절과 비애를 뼈저리게 당하는 비극의 땅이 되고 말았으니 오늘의 현실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심상치 않은 북측 기류에 대해 해외 여러 나라들이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오히려 한국 국민들은 어린 김정은이가 떼쓰는 격으로 설마 전쟁이야 일어나겠는가,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차분하기만 하다. 한국전쟁 발발 두 세대가 지났다. 전쟁 경험 세대보다는 전후 세대가 국민의 절대 다수인 지금 우리 국민들은 안보 불감증에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남북관계만은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오직 엄동설한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개성이 열리고 남북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금강산과 백두산, 고구려와 고려 옛 유적지를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을까.

만물생동의 춘삼월이다. 동토(凍土)도 녹아내리는데 한 민족의 가슴은 언제쯤 녹아내릴 것인가. 정치적으로 힘들다면 민간 교류라도 지속되어야 할 터인데…. 김삿갓 선생이 다시 개성을 찾아서 ‘읍호개성하폐문’이라 외쳐야 할 것인가?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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