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은 매우 추웠다. 방문객을 맞이한다며 작은 난로를 두 개나 피웠다. 인사를 나누고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사면의 벽에는 그동안 해온 작품들이 걸려 있거나 바닥에 기댄 채 특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성결의 작품 스타일을 구분한다면 ‘신사’ 시리즈와 ‘몽환’ 시리즈라고 정리할 수 있다. ‘신사’는 구상적인 조형성을 강조한다. 사전에 설계된 대로 밑작업을 거쳐 디자인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몽환’은 표현주의적인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꿈속에서 귀신을 보는 것처럼 이미지의 중첩이 강조되어 모호한 느낌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며 <로맨틱>을 보여주었다. 100호쯤 되어 보였다. 경계가 모호한 커다란 얼굴이었다. 입이나 코, 귀가 대충 자리를 잡았을 뿐 끊임없이 덧칠한 흔적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작품 제목처럼 얼굴은 사실 로맨틱해보이지 않는다. 얼굴에는 상처가 나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귀에서 논란 진물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한다. 가만히 쳐다보니 헤어스타일이 작가를 닮았다. 오히려 자화상인 듯 보였다. 결국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 듯 했다.

떠나간 님을 위한 노래

불 옆에 가까이 앉았다. 작업실은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종이컵에 내온 믹스커피는 금세 식었다. 그만큼 춥다는 이야기다. 이런 곳에서 작업을 하는 그의 열정이 가상하다 할 정도다.

그를 광주의 피카소라고 불러도 될까. 아직은 시기상조다.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지난 2년 동안 그의 작품은 광주 미술계의 눈길을 끌었다. 무척 빠르게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몽환’ 작업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는 느낌이 가는 대로 붓질을 한다. 밑그림도 없이 여기저기서 보아왔던 형상들을 중첩시키며 그린다. 자신의 내면 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정신병적인 질환을 토로하듯 드러내고 있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다. 유화 물감에 비해서 사용이 간편하다. 작은 붓이든 큰 붓이든 물을 섞어 캔버스에 붓질을 한다. 마치 수채화 붓질하는 느낌이다. 빨리 마르고 내구성이 강해 속도감 있게 작업하는 그에게는 최상이다.

100호 정도 크기의 캔버스에 붓질을 시작한다 치더라도 한 작품을 끝내는 데 그리 올래 걸리지 않는다. 필자가 찾아간 날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보라고 주문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작업실을 나온 뒤 3시간여가 지나자 페이스북에 작품이 올라왔다.

처음 시작했던 구도였다. 제목은 <떠나간 님을 위한 노래>이다. 긴 머리카락을 한 그녀는 애꾸였고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청색과 적색이 대비되는 바탕의 전체적인 색감은 강렬하다. 그에게 ‘떠나간 님’은 누구일까. 궁금하다.

캔버스의 그녀 입장에서는 작가가 떠나간 님일 듯 싶다. 그는 꿈속에서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꿈을 깰 무렵 그녀의 슬픈 눈동자만을 남겨두고 작가는 현재로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물아(物我)의 구별을 잊어버린 장자(莊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일 수 있다.

피카소에서 베이컨까지

김성결은 2014년 2월에 조선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 석사과정도 수료했다. 그동안 그가 흠모했던 작가는 피카소(Picasso)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다.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파카소는 스페인 출신이지만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입체파 화가이다. 사물을 재구성하고 다양한 시점으로 재조합한다. 1937년의 <게르니카>와 <울고 있는 여인>, 1951년의 <한국에서의 학살> 등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작품이 ‘신사’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영국을 대표하는 20세기 표현주의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인체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고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보인다. 얼굴 대부분이 뭉개지고 왜곡되는 경향이 강하다. 인간 존재에 대한 환멸과 회의를 반영한 것이라 한다. 여기에서 그의 ‘몽환’이 탄생하고 있다.

근래 그는 꿈을 드라마처럼 연속편으로 꾼다고 했다. 꿈속에서 귀신을 만나기도 하고 도망다니며 허겁지겁 어디론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깨어난다. 그 때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다. 여기에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보았던 다양한 이미지들이 중첩된다.

이러한 느낌과 감정들을 하얀 캔버스에 바로 붓을 들고 그린다. 이 때는 설계라는 것이 없다. 감정에 드러난 대로 손길이 움직이고 색상을 덧칠하다보면 결국에는 완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첫 번째 개인전 <로그인>은 2014년 3월에 광주시 동구 장동의 스페이스영에서 열렸다. 사이버공간에서 어디론가 들어가려면 반드시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해야 하는 것처럼 미술계에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더욱이 이 전시는 크라우드펀딩 방식의 모금을 통해 이뤄졌다.

원초적 욕망, 인간의 탈 쓰다

김성결은 “사람이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욕망이나 감정의 부정적인 변화, 주위환경 때문에 드러낼 수 없는 스트레스 등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러한 느낌들을 순수하게 표출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거짓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이 세상,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지 못하는 바쁜 세상으로부터 탈출할 수는 없을까? 그의 대답은 작품을 통해 내뱉고 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과 소통을 하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전시는 2015년 무각사 로터스갤러리에서였다. 이이남씨가 기획한 신인작가 6명의 릴레이 전시는 큰 호평을 받았다. 그도 역시 이 전시를 통해 발돋움했다. ‘신사’시리즈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2015년 광주아트페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높은 가격에 팔렸다. 용기를 얻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1년 농사를 지은 셈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무등현대미술관 레지던시 3기 입주작가(2014)로 있었고, 북경 99미술관 국제레지던시(2015)에도 참여했다. 미테우그로 신진작가 초대전(2014), 광주미술관회 신진청년작가 지원전(2014), 해와미술공간 한중청년작가전(2015)에도 출품했다.

상당히 바쁘게 움직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신사’와 ‘몽환’ 사이에서 아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는 느낌과 붓길 가는대로 캔버스와 씨름하겠고 한다. 늘 변화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정인서 기자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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