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초에 한 외국인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광주를 출렁이게 했다. 광주시와 5·18기념재단에서는 대표단을 독일 현지에 파견하여 곧바로 조문하였고, 시내에서는 5·18기록관에 분향소를 설치하여 시민들이 그가 떠나는 길에 애도의 인사를 표할 수 있게 했다.

그 주인공은 위르겐 힌츠페터라는 독일 출신 기자였다. 그는 1980년 5월 19일 계엄군의 방어선을 뚫고 광주에 잠입하여, 가장 먼저, 가장 가까이에서 항쟁의 잔혹한 현장을 촬영하여 전 세계에 알린 ‘80년5월 광주’의 영원한 증인이다.

그가 남긴 항쟁의 진실은 두 가지다. 첫째는 당시의 공수부대가 자행한 야수적 폭력을 통해서 국가권력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의 끝을 보여주었다. 이른 바, 1세기 전에 역사학자 마이네케가 통찰했던 ‘국가권력의 악마성’에 관한 증언이다. 두 번째는 광주공동체의 위대성이다. 중무장 계엄군을 물리칠 만큼 거대한 힘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이웃사랑과 조화로운 대동세상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거리를 청소하는 학생, 교통질서를 바로세우는 아저씨, 그리고 아주머니들의 이웃돕기활동은 신군부가 광주항쟁을 불순분자의 폭동이며, 약탈, 범죄로 왜곡한 선전이 거짓이었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의미가 있다. 고인의 이와 같은 행적은 광주가 그의 서거에 바친 위의 헌사를 오히려 부끄럽게 할 지경이다.

기록관에 설치된 분향소는 10일 동안 운영한 후에 막을 내렸다. 처음 이틀 동안 참배객들은 광주시청 및 교육청 등 공공기관과 5·18기념재단을 비롯한 5월단체 주역들이 대다수였고, 그 이후에는 조문객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일반 시민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분향소에서 방영된 ‘푸른 눈의 목격자’가 보여주는 청년 힌츠페터의 치열하고 결연한 행동을 보고 젖은 눈으로 나서는 시민들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마무리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곳을 찾은 시민은 306인이었다. 조문객 수를 알고 난 주위의 지인들은 기대보다 낮은 참여도에 놀라고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누구나 바쁜 이 세상에서 힌츠페터를 잘 모르는 일반시민의 조문을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도 없지 않지만, 각종 매체를 통해서 다양하게 홍보된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라는 인식에 필자도 동의한다. 이에 대한 우리의 성찰이 요구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의 생활문화에서 고인에 대한 조문행위는 행위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볼 때, 광주시민 대다수의 의식에서 5·18항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부여와 중요성의 정도가 조문행위를 결행할 정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5·18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시민들이 진지하고 중요하게 받아들여 체화하는 정도가 낮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현실은 광주항쟁에 대한 역사인식에서 우리들 자신의 빈곤한 자화상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 이와 같이 낮은 참여도를 초래한 요인은 무엇인가? 우선 두 가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어느 지인의 말처럼, 학습이론의 관점에서, 분위기 선도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할 정치인이나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참여도가 낮았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광주지역 국회의원 가운데 1인만이 방명록에 기명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구조론적 관점이다. 낮은 참여도에는 5·18과 시민 간에,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5·18관련단체나 그 구성원과 일반 시민 간에 공감도가 낮기 때문으로 본다. 상대방에 대한 공감은 상호간의 이해로부터 발전되고, 상호이해가 원만하게 진전되기 위해서는 개방된 의사소통이 기본 요건임은 상식이다. 그리고 의사소통은 구체적으로 대화와 토론 및 타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이 이론은 양자 간에 대화와 타협의 노력이 미흡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1980년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5·18과 시민사회라는 두 진영 간에 진전되었던 상호관계의 역사를 잠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충 살펴 보건데,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하에서는 시민사회의 개방된 공간이 극소화된 시기였고, 반면에 5·18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 등을 주제로 한 저항투쟁이 지배적인 시기였다. 피의 항쟁이 거리를 흥건히 적신 때였다.

뒤 이은 노태우 정권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었으나, 5·18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보상 및 각종 지원이 적극적으로 시행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사회)과 기존의 5·18피해자 간에 차별과 거리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두 사회세력 간의 거리감은 1990년대 이후 5·18피해자들에 대한 각종 보상과 지원이 거듭 강화되고, 이에 대하여 시민(사회)의 비판적 인식이 널리 번지는 과정에서 그 균열의 폭은 확장되어 갔고, 상호 간에 오해와 갈등 및 상호비방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5·18, 그만 팔아먹어라’, ‘너는 그 때 어디서 뭐했나?’ 등의 담론은 널리 알려진 사례이다. 시민(사회)의 5·18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평가는 후손에 대한 취업가산점 제공, 피해자들의 탈법사례, 민주화 유공자 지정 범위의 과도한 확대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더 심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양자 간이 이와 같은 불화는 광주공동체의 위대성을 배반하는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성찰과 다양한 노력이 경주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5·18기념행사위원회를 주목한다.

이 위원회가 양자 간의 균열과 갈등에 관한 성찰의 산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위원회는 시민사회와 5·18단체가 함께 참여하여 5월행사를 주관하는 주체로 결합됨으로서, 그들 간에 소통과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고 공감도를 제고하려는 기대가 있었다. 이는 ‘5·18을 시민에게 돌려 달라’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였으며, 이 행사위원회를 통해서 광주공동체의 조화로운 통합과 발전을 모색하고자 하는 희망이 내재된 것이었다. 특히 이 행사는 적어도 60여개 이상의 부속 행사와 5월 한 달 동안 계속되는 장기간의 대규모 축제로서 프랑스혁명 기념제를 연상하게 하는 세계적 축제로 성장했다.

필자가 32주년행사위원회를 주관하면서 가졌던 소감의 하나는 매년 시민사회와 5월단체를 중심으로 새로 구성되는 위원회의 출범이 늦어짐으로써 행사준비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 해 행사위원회는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이 위원회를 상설화하여 행사의 연속성과 축적적 발전을 기하고 준비에 충실성을 제고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을 마련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어찌 된 일인지, 상설화된 위원회의 활동은 가시화되지 않았고, 다시 매년 새로 구성하는 형태로 회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행사위원회가 아직 출범하지 못하고 있으며, 행사위원회 구성과 관련하여 시민사회와 5월단체 간에 상당한 오해와 갈등이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어 마음이 무겁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태어난 독일 조국의 고향을 떠나 죽어서 다시 광주 망월동으로 돌아온 힌츠페터를 생각한다. 무엇이 그를 다시 광주로 돌아오게 했는가? 그의 영혼에 살아있는 광주사랑일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렇다면, 그는 광주의 무엇을 사랑했는가? 광주의 5·18, 다시 말하면 5·18의 위대성이리라.

그 위대함은 그 때 광주가 실현했던 ‘사랑의 공동체’에서 빛나고 있다. 그 때 시민들이 실천했던 위대한 사랑, 이웃사랑을 생각하면, 오늘 우리 앞에 전개되는 광주공동체의 균열과 갈등이 참으로 부끄럽다. 물론 1980년 광주가 실천했던 위대한 역사가 지금 살아남아 있는 우리에게 너무 무거운 짐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사의 멍에를 이웃사랑의 실천으로, 대화와 토론과 타협정신으로 끌고 가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삶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서 특히 광주가 그 무거운 역사의 짐을 지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사위원회의 건강한 발전을 통해서 5·18의 새로운 역사를 기대한다.

대동문화 93호 [2016 3,4월호]

나간채 5·18기록관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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