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유채꽃으로 물든 영산포 거리에 알싸한 홍어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바다의 냄새가 나는 듯한 영산포 홍어의 거리가 정겹기만 하다. 홍어의 거리에 도착하자 묘한 기운이 발길을 이끌었다. 영산동 곳곳에는 아직도 대한제국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있는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일본의 패망 이후 일본인들은 일본식 가옥들을 남기고 떠나기에 바빴다. 우리는 적국인의 재산이라는 의미로 ‘적산 가옥’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산포, 수탈과 침략으로 근대 역사 남겨

해방 이후 70여년이 지났다. 나주는 빛가람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고층건물과 함께 점점 현대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영산포 부근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다. 국내 유일 내륙에 위치한 등대(등록문화제 제129호)만이 지나온 역사를 기억하는 듯 영산포를 지키며 서있다.

저 멀리 영산포 다리를 바라보며, 명성이 자자했던 시절을 그려본다. 1897년 목포가 개항되면서 일제는 일찍이 나주 영산포를 주목했다. 물자 교역이 활발하고 비옥한 평야가 많았던 나주는 일제가 탐낼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일본인들은 영산포를 수탈과 침략의 첫 발을 내딛는 곳으로 삼고, 교육, 상업, 금융 시설을 만들었다. 홍어의 거리로 이어지는 일명 ‘원정통 거리’는 일본인들이 상가를 형성했다.

그 뒤편에는 일본식 가옥과 창고들이 들어섰다. 영산포구에 인접해 배가 들어오면 뱃사람들로 동네가 북적였다. 시끌벅적 고성이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던 사람들이 많았을 터다.

지금의 영산동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과연 사람들이 찾아들까 의문이 드는 낡은 여인숙과 일본식으로 지어진 건물만 그대로 남아있다.

그중 관리를 꽤나 잘한 기와로 된 일본식 가옥이 눈에 띈다. 규모가 엄청나다. 집 덩치 자체도 큰데다 앞마당에는 넓은 정원과 연못까지 펼쳐져있다. 얼마나 재산이 많기에 이렇게 드넓을까?

건축자재 일본에서 물건너와 건축하기도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나주지역에서 가장 많은 농토를 가졌던 일본인 대지주 구로즈미 이타로(黑住猪太郞)의 집이다.

지금 봐도 검푸른빛 기운을 내뿜고 튼튼한 기와집의 견고함을 보여주고 있다. 넓은 마당, 푸른 기와집에서 뿜어내고 있는 위화감과 웅장함은 당시 얼마나 수탈이 심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구로즈미는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 영산포 지점을 등에 없고 나주평야와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졸부였다. 구로즈미 소유의 땅을 밟고 지나가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가 소유했던 1100정보(330여만 평)의 어마어마했던 토지는 서울 중구 전체보다 넓은 면적이었다. 그는 대지주로만 만족하지 않고 기업 활동에도 큰 활약을 펼쳤다.

1906년 영산포 우편소장을 거쳐, 1918년에는 조선승입(가마니)주식회사 사장, 1919년에는 영산포운수창고회사 전무를 맡았다.

1925년에는 조선전기주식회사 사장, 영산포 학교조합 관리자, 다시수리조합장, 전남중앙영농자조합장, 조선농회 평의원, 전남농회 부회장 등을 거치며 수많은 기념장, 유공장을 수상한다.

구로즈미 가옥은 1935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총면적 1,022㎡, 건축면적 226,37㎡으로 기와 등 모든 건축 자재들을 일본에서 운송해 건축했다. 소소한 자재 하나까지도 모두 일본에서 직접 가져다 정성을 들였다.

생기 없던 근대문화자원 활용방안 주목해

풍문에는 구로즈미가 일본의 패망을 예견했는지 목재 등 건축자재를 헌 것으로 가져와 지었다는 일설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가옥의 모습만 봐도 구로즈미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했을지 가늠이 안갈 정도다.

구로즈미가 남겨두고 떠난 이 가옥은 해방 이후 선교사가 고아원으로 운영했다. 1981년에는 개인이 주택을 구입해 사용했다. 일본에 있는 가옥을 그대로 떠와 건축해놓은 거나 다름없이 보여 영화 <장군의 아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제는 근대역사가 재조명되면서 복원사업을 통해 지역 관광자원으로 되살리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2009년 1월 나주시는 근대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경제 활성화의 중심 기반 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구로즈미 가옥을 5억 2천만 원에 매입했다.

구로즈미 가옥은 외부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내·외부 복원공사는 지난 2013년 4월 마무리 됐다.

현재는 마당의 조경공사가 한창이다. 당초 유스호스텔 개념으로 사용될 예정이었으나 찻집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그때 그 시절 명성이 드높았던 제2의 전성기를 꿈꾸며….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김다이 기자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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