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을 건너는 방법 중의 하나인 다리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리를 살펴보면 예전엔 석교, 목교, 홍교 등이 주류를 이루다가 최근 들어 철근콘크리트교, 트러스교, 아치교, 현수교 등이 설치되고 있다.

누각이 감싸고 있는 다리도 있다. 곡성 태안사에 위치한 능파각을 찾았다. 섬진강 인근의 봉두산에 위치한 태안사에 도착하면 맨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정면1칸, 측면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 능파각이다.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절 쪽에서 흘러오는 계곡의 양측에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약간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두 개의 큰 통나무를 받쳐 건물을 세웠다. 통나무 위로는 1단의 각진 침목에 민흘림기둥이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다. 태안사 사적기에 의하면 1737년(영조13년)에 건립하고 1776년과 1809년, 1861년, 1923년 등 총 4회에 걸쳐 중수를 거듭하였다.

능파각은 태안사의 금강문으로 누각을 겸한 다리다. 계곡의 물과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의 미인을 의미하여 능파(凌波)라고 했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세속의 번뇌를 던져버리고 부처님의 세계로 진입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년)에 혜철선사가 처음 지었고 고려태조 24년 광자대사가 수리하였다. 여러가지 동물상을 조각한 목재가 사용되었으며 다리와 문, 누각의 역할을 함께 하도록 지은 독특한 건물이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압록 부근에 위치

225km의 거대한 강, 섬진강이 능파각 지척에서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정읍시와 임실군 경계의 옥정호(갈담저수지)를 이루고 순창 곡성 구례 하동을 거쳐 광양으로 흘러간다.

광주방면에서 순천방면으로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곡성읍으로 들어오면 기차마을이 손님을 반긴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완행열차를 타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섬진강변을 천천히 가보는 것은 어떨까. 강변 우측으로는 사시사철 꽃과 나무와 식물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자연의 요람, 나지막한 산이 자리한다.

좌측엔 푸르고 맑은 강바닥에 간간히 드러누운 바윗덩이가 하얀 속니처럼 파노라마를 이루고 강물과 더불어 세상의 눈을 집중시킨다.

강 주변의 가로수는 벚꽃나무가 주류를 이루지만 간간히 대나무가 수분수처럼 서있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압록에 이르면 보성군 웅치면 제암산에서 발원한 보성강이 흘러오며 온수천과 죽곡천을 합류시켜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압록 주변에는 섬진강으로 들어가는 지류에서 잡히는 참게, 은어, 메기, 송어 등 민물고기는 물론 다슬기와 제첩 등 특색 있는 먹거리가 즐비하게 기다린다. 한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는 강바닥에 앉아 시 한수 그림 한 폭 그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압록에서 석곡방향으로 우회전 하여 보성강 길을 따라 올라가다 1.5km지점에태안사 삼거리가 나온다. 보성강을 건너는 태안교를 지나면 태안사를 안내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840 지방도를 따라 10여분 올라가면 태안사가 나온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고향이기도

남해고속도로 석곡요금소를 지나서 압록을 향해가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 목사동면을 통해 가는 길인데 죽곡면 소재지를 지나기 전 용산재가 자리한다.

용산재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을 기념하는 곳이다. 927년 공산전투에서 백제군에게 포위된 태조 왕건을 살리기 위해 왕건의 용포를 대신입고 장렬하게 전사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신숭겸은 고려 초기의 무신으로 궁예의 신하였으나 918년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에 기여하였다. 원래 이름은 삼능산 또는 능산이며 시호는 장절이고 평산신씨의 시조이다.

용산재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 장군이 탄생한 곳이다. 동시에 향교의 기능을 했던 덕양사가 자리한 곳이다. 외삼문인 구룡문을 지나, 대규모의 심숭겸 장군 유적지가 펼쳐진다. 그에 앞서 동재 추덕재와 서재 모충재가 있다.

중앙의 용산재 본당과 더불어 덕양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덕양사는 서원철폐령으로 폐사되었다가 1900년대에 이르러 중건된 향교이다.

신숭겸 장군의 유적으로는 유허비, 유허단, 단소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신숭겸 장군의 태가 묻혀 있다는 단소와 함께 나란히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신숭겸 장군의 유적이 이곳에 일부 전해지며 장군의 묘지는 현재 춘천에 있다.

매년 9월, 신숭겸 장군의 후손들이 덕양사와 함께 제향하고 있다. 용산재 앞으로 꾸며진 작은 공원에는 그의 공을 기리는 탑과 장군의 동상이 자리한다.

조태일 문학관과 경찰 충혼탑이 자리한 곳

태안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조태일 시인의 시문학 기념관이 자리한다. 조태일은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에서 태어났다. 호는 죽형(竹兄)이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1969년 월간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하여 김지하, 양성우, 김준태 시인 등을 배출했다.

독재에 저항하다가 여러번 투옥 되었고 1988년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초대 상임이사를 맡았다. 광주대 교수, 예술대 초대학장을 맡았으나 1999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문학 기념관은 조태일의 고향인 곡성에서 고인의 유물전시 및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3년 건립하였다.

이곳에서는 근·현대시집을 한 자리에 모은 시집전시관 건립 운영으로 청소년 등 문학도들에게 올바른 문학의 지표 역할을 한다. 지역문화 육성발전의 기틀을 삼아 진정한 의미의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태일 문학관을 지나 태안사 정문으로 올라오면 경찰 충혼탑이 있다. 이 충혼탑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 달 만에 경상도를 제외한 전 지역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하자 곡성경찰은 이 지역을 지켜내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 한정일 경찰서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참여하여 태안사 보제루에 경찰 작전지휘소를 설치하고 유격전을 전개했다.

7월 29일 북한군 603기갑연대가 경남 하동지역에서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압록교를 지난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압록교 주변에 매복하였다. 이동하는 북한군을 공격하여 4시간 만에 55명을 생포 또는 사살하고 트럭과 오토바이 등 70여점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격분한 북한군은 8월 6일 새벽 태안사 경찰작전 지휘소를 기습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결과 우리 경찰관 46명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이때 희생된 경찰관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당시에 함께 참전한 동지들이 성금을 모아 충혼탑을 세웠다. 매년 8월 6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85년 국가 차원의 충혼탑과 호국관을 건립하여 매년 위령제를 지낸다.

2000년 압록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당시전투 장소인 오곡면 압록리에 승전탑을 건립하여 청소년의 역사 교육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건물은 각(閣)이요, 건너니 교(橋)라!

능파각은 사시사철 조용할 날이 없는 곳이다. 만곡을 지나 하얗게 흘러내리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사람들의 말소리까지 섞여내며 자연의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누각을 겸한 다리, 초록이 물들인 곳에 주황색의 대비를 나타내고 있는 태안사 누교(樓橋) 능파각(凌波閣), 사찰에 세워진 고루(鼓樓), 종루(鐘樓), 등루(燈樓), 문루(門樓) 등은 같은 개념의 누정이다. 이곳은 문루에 해당된다.

경쾌한 물소리. 오렌지빛 햇살이 초록 이끼 낀 바위에, 5월 싱그러운 초록물이 뚝뚝 떨어진다. 미인처럼 가벼운 걸음걸이로, 능파각을 밟고 지나 산사로 향하게 하는 분위기가 묵시로 지시하고 있다.

'능파(凌波)'란 미련도 욕심도 없이 가볍고 우아하게 걷는 걸음걸이라 표현한다. 또 세속의 번뇌를 넘어 불계로 입문하는 절집 다리라고 했다.

'능파(凌波)', 파도를 넘는다는 의미로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라는 뜻이라고도 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번뇌와 망상, 탐욕과 집착은 버리고 부처님의 세계로 가야 한다며 호젓한 오솔길 너머에 청정세계(淸淨世界)가 기다리고 있다.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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