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마이클 스톤이라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고객 서비스 전문가이자 유명 작가인 그는 지독한 권태에 찌들어 있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나 택시 기사와 간단한 몇 마디를 나누는 것조차 신물이 날 만큼. 그런 그는 강연을 위해 출장 온 신시내티의 ‘프레졸리’ 호텔에서 우연히 ‘리사’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는 유부남이지만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그녀에게 특별함과 사랑을 느끼며 하룻밤을 보낸다. 이 우울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흔한 얘기일지 모른다. 낯선 여인에게 뜻 모를 호감을 느끼며 삶의 열정이나 의미를 되찾는, 혹은 되찾았다고 착각하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단언컨대 <아노말리사>는 특별하다. <아노말리사>에는 진짜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노말리사>는 <존 말코비치 되기>, <어뎁테이션>, <이터널 선샤인> 등의 각본을 쓰며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감수성을 인정받은 찰리 카우프만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듀크 존슨과 공동 연출했고 각본은 본인이 썼다). 첫 번째 연출작인 <시네도키 뉴욕>까지 그가 작업한 영화들이 전부 실사 영화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노말리사>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이를테면 마이클과 리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얼굴과 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설정은 섬뜩할 만큼 고립된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기에 좋은 장치이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기에 더욱 인상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다 모든 등장인물의 얼굴에 그어진 선은 불쑥불쑥 관객에게 이 인물들이 인형임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든다. 관객이 ‘흔한 중년 남자와 자신감 없는 여자의 사랑얘기’에 침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리사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목소리를 낸다. 마이클은 호텔에서 우연히 듣게 된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이끌린다. 마이클은 리사에게 앞으로도 함께할 것을 약속하지만, 리사를 통해 달라진 인생을 기대했던 그는 하룻밤 만에 그녀 역시 남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두 사람에겐 하룻밤의 사랑, 그리고 환희만 남는다. 하룻밤 사이에 권태와 우울, 설렘과 환희, 두려움과 절망이 마이클을 관통한다. 마이클을 억누르고 있던 권태와 무력감이 너무나 무거웠던 나머지, ‘아노말리사’를 만났다고 해도 별 수 없었던 것일까? 영화가 후반으로 치달았을 때, 결국 궁금해지는 것은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가 아니다. 꿈같은 하룻밤을 겪은 뒤의 얼굴, 마이클과 리사의 각기 다른 표정이 궁금해질 뿐이다.

‘아노말리사’는 변칙이라는 뜻의 ‘아노말리’와 ‘리사’의 이름을 합친 말이다. 마이클에게 있어 리사는 정말로 변칙적이고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비록 더 이상 특별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이 절대 무용하거나 무의미한 순간은 아닐 터다.

마지막 리사의 미소가, 그 순간을 아름답게 기억할 리사의 짐작되는 앞날이 그런 희망을 갖게 한다. 마이클은 글쎄, 그가 행복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프레졸리’ 호텔에 묵게 된다면, 리사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호텔복도를 서성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 ‘프레졸리’ 호텔과 발음이 유사한 ‘프레골리 망상’은 주위 사람들을 변장 가능한 동일인으로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유서영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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