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대상을 화폭에 어떻게 옮겨놓는 것인가에 대한 원초적 질문은 늘 작가를 괴롭힌다. 보이는대로 제대로 그릴 것인가, 보긴 했지만 기억에 남은 모습을 그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보았던 감정을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할 것인가 등등이다.

이런 점에서 김병택은 늘 갈등한다. 대학 시절에는 누구나 배운대로 그렸던 전통적 아카데미즘이다. 눈으로 보는 사실주의적 경향이다. 군대를 다녀오고 90년대 초 복학하면서 그가 느낀 것은 ‘시대 변화’였다.

그는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은 사실주의(寫實主義),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재현하는 기법보다는 현실의 사건을 반영하는 사실주의(事實主義), 그에게는 사회적 문제의식을 작품 속에 투영시키려는 작업이 중심을 이룬다.

20대 초반 부모님을 여의고 방황했다. 외로웠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들이 두려웠다. 다시 갈등이 생겼다. 스스로 협소했던 세계관에 대한 개안(開眼)을 느낀다. 자아정체성에 대한 문제 또한 갈등이었다.

삽질공화국, 압박 그리고 극복

90년대 후반부터 그는 이러한 갈등으로부터 벗어난다. 흔히 말하는 현실참여의 미술운동에 뛰어든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잘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대중에게 사회적 문제를 각인시키는 일이라 믿었다.

사회현상은 우리에게 보여진 세상이 아니라 보여지지 않은 세상에 숨겨진 부조리가 넘쳐난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감춰진 진실을 반영하는 길을 찾았다. 많은 이들이 작품에서는 건드리기가 어려운 문제였다. 그에게도 어려웠다.

때로은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사회 공기가 무거울 때가 있었다. 2009년 정치적 이슈로 등장했던 그의 작품은 <삽질공화국>이었다. 그는 이 작품도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단지 4대강 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는 점에 놀라 작업한 것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는데도 밀어붙이기식 토목공사 대통령이라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그해 12월 3일 5.18기념문화관에서 전시 예정이었던 그의 작품에 대해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갔다고(광주드림), 대통령을 비판했다고(뷰스앤뉴스), 그리고 대통령을 풍자했다고(경향신문·한겨레) 국정원에서 광주시와 5.18기념재단에 작품 철거 압력이 있었다.

이 작품 <삽질공화국>은 가로 1.2m, 세로 5.5m 규모의 삽 모양 설치미술 작품으로 이 대통령의 얼굴 그림 170여장이 삽날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제호가 삽자루에 모자이크 처리돼 있었다. 결국 4일 이명박 대통령의 광주방문에 따라 이 전시는 중단되고 말았다.

김병택은 “당시에 가족에게도 압박이 있어 솔직히 많은 갈등이 있었다.”면서 “창작의지를 위축시키는 갈등을 가져왔지만 주변 동료들의 도움 덕분에 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5.18광장은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

2009년 이전 10년간이 작가들에게는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창작 열기가 뜨거웠다.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의 초상을 가지고 리얼리즘에 팝아트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명박에 이르러 반전되었다.

그는 요즘 두 가지 테마에 꽂혀 있다. 하나는 기억의 현재적 존재라는 점에서 5.18에 대한 광장의 기억이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카드를 통한 사회문제의 비유이다. 그에게 1980년 5월의 광주는 역사성과 장소성, 시대성을 뛰어넘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맞닿아있다.

박제된 기억과 반복된 재현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건과 현장을 상징적인 의미로 기록하고 증언하며 분출시키는 과정의 연장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회화의 본분이며 예술가의 덕목이라고 믿고 있다.

그에게 광장의 기억은 붉은 색이 대종을 이룬다. 그가 붉은 색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시절에 그린 작품에도 붉은 황토밭을 즐겨했다. 황토는 농민에게 땀의 역사였다고 생각했다. 남도지역 자연풍광과도 맞닿아있다. 해남 고구마, 무안 양파, 봉황 수박 등은 모두 황토에서 자란다.

예술의 거리 중심의 한 건물 4층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에는 지금도 온통 빨간 색 뿐이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시각적 효과와 이미지의 증폭을 위해 처음에 색이 있는 광장을 그렸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그가 겪은 아픔, 충격, 상처 등의 기억이 내포된 장소가 광장이고 붉은 색으로 차용되었다.

2014년 개인전 서문을 쓴 임선진은 광장의 기억을 역사와 현재의 존재라고 말했다. 옛 전남도청 광장을 중심으로 한 주변 풍경을 통해 5.18의 역사와 흔적, 그 기억의 현재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과 암투, 트럼프 카드 치기

트럼프 카드는 심리전이라는 게임의 기술이다. 상대는 나의 말을 읽는 게 아니라 나의 얼굴을 읽고 공격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모습을 트럼프 카드라는 축소된 세계 속에 뉴스의 중심인물을 라이벌이나 짝패로 등장시키는가 하면 한 인물을 칼라와 흑백을 대비시키는 절묘함을 보여준다.

2013년 개인전 서문을 쓴 고충환은 트럼프 카드를 삶의 기술이고 권력의 기술이고 도박의 기술이다고 말한다. 작가는 삶의 역사를 이전투구의 역사로 해석하고 카드 패 위에 승부를 벌이는 암중모색과 권력과 암투의 역사를 그려내는 한 시대의 초상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2012년 개인전에서 고영재는 그의 작품에 대한 전반적 흐름을 ‘권력과 권위의 간극, 함께 삶의 어려움’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작가가 제기하는 거침 없는 현실풍자와 해학이 ‘함께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리얼리즘은 본인의 주관적 접근이지만 조형어법에 있어 직설적인 표현은 거부감을 갖는다고 했다. 미술은 공감이며, 그것이 기쁨과 행복의 감정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그만의 해석이 작품 속에 녹아 있었다.

그는 5월 10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서, 6월 9일부터 15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에서 개인초대전을 갖는다.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정인서 기자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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