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록… 이름에 새겨진 길을 걷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록하는 일.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게다가 문자가 아닌, 시각적 이미지로 기록하는 일은 아무래도 불가능해 보인다. 어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정록(45) 사진작가. 그는 사진은 자신에게 있어 운명이라고 말했다.

“제 이름이 정치 정에 기록할 록자입니다. 그대로 풀이하자면 정치를 기록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저를 들여다보면 정치 정보다는 바를 정자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름처럼 바르게 기록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기도 하구요. 진리를 드러내면서 말입니다.”

사실 작가는 우연히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을 다닐 때 사진반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때 카메라를 만져본 것이 처음이었다. 거기서 작가는 카메라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사진작가로서의 꿈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 작가가 사진을 시작했을 때는 필름작업을 하던 아날로그 시대였다. 헌데 집안 어른의 반대 없이 사진작업을 할 수 있었고, 오히려 지원까지 해주었다니 작가는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길과 나무, 나비, 불빛들

보는 풍경과 보고 싶은 진리의 풍경

작가의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처럼, 그의 작품은 색다르다.

25년째 풍경을 찍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의 풍경은 우리가 보는 풍경과는 다르다. 그의 작품 속에서 목도하게 되는 풍경들은 우리가 보는 풍경이되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닌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무와, 길과, 나비와, 불빛들은 나무이자 길이자, 나비이자, 불빛들이지만 그대로의 나무이고 길이고 나비이고 불빛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며, 선지자로서의 나비이며, 생명의 불빛이고 신의 나무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작업은 왠지 구도의 작업 같다.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영적인 작업에 치중한다는 작가의 눈빛은 그 순간에도 이쪽저쪽 경계를 넘나들며 보다 근원적인 것을 뒤지고 포착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벅수의 얼굴과, 제주도 돌하르방의 얼굴과, 선이 굵은 이국의 얼굴선을 가지고 있는 작가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생명나무’, ‘Decoding Scape’, ‘Nabi’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나무들이 빛을 발하고, 열매 같은 덩이 빛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들. 정말, 신목이었다. 어쩌면 그 덩이 빛들은 나무의 영혼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영혼일 수도 있고, 요정들일 수도 있다.

“나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물이자 통로이기도 합니다. 나무에게도 영이 있고, 신이 내재해 있습니다. 고대인들이 나무를 보고 느꼈던 것들을 저 또한 느끼고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무는 신의 이야기 속에 꼭 등장한다. 신과 인간세계를 이어주는 매개물. 혹은 중개물이 나무인 것이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원시종교에서도 나무는 그 위치가 특별하다.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는 물론이고, 심지어 집 마당에서 키우는 나무조차 함부로 베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마음판에 찍힐 때까지 바라보는 개시체험

헌데 작가는 어떻게 사진으로 진리를 담을까. 그 형이상학적 세계를 눈에 보이는 풍경과 이미지로 구상하다니.

“신의 언어나 인간의 언어 사이에는 다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접근하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수도사들은 그저 경전을 되풀이해서 읽거나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문득 얻게 되는 개시체험으로 진리를 이해하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가만히 그곳을 바라봅니다.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고 사흘도 좋습니다. 그러다보면 불현듯 그 풍경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거나 마음에서 어떤 움직임이 느껴지는데 저는 그걸 작품으로 표현합니다.”

작가가 말하는 개시체험은 어떤 때는 짧은 시간에 얻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한 달이 넘도록 얻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과 타협하지 않았다. 아니, 타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바보스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풍경이 주는 메시지를 수신하고, 그걸 통해 진리에 다가가려 노력한다.

무릇 모든 예술이 그렇듯 몸을 혹사시키고, 궁구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있는 법. 그 법칙이 그에게도 작동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얻기 위해 무려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작가는 고백했다.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 땅이 바뀌고 지형이 바뀌는 그 시간동안 작가는 땅을 두드리고 하늘을 뒤지며 풍경이 주는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자연은 무심했다.

그렇게 작가가 지쳐갈 즈음,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나무가 보내는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2월이었다.

“10년 동안 얻는 것이 없어 무척이나 상심해 있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히 한 나무를 보고 있는데, 나무 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시체험이었지요. 마음을 비우니, 그 마음속으로 나무가 보내는 메시지가 들어왔던 겁니다. 하지만 그건 또 시작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받았던 개시체험을 작품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도무지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어요. 또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많은 실험들을 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결국 원하는 작품을 얻었습니다. 6개월만이었죠. 그렇게 얻어진 것이 생명나무입니다.”

빛의 열매를 매달고 저 스스로 환한 빛으로 서있는 나무. 그게 바로 생명나무다.

작가는 왜 그렇듯 어렵고 지난한 작품을 할까. 하지만 그 수고로움만큼이나 작가의 작품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작가는 그 작품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애면글면하고 초조해했을까. 그래서 작가만이 할 수 있고, 작가만의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이정록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작품들.

기실 그의 작품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예쁘거나 웅숭깊거나 찰나적이거나 위압적인 풍경은 아니다. 자연이되 자연이 아닌 것이다.

이정록 작가를 보면서 또다시 확인하는 것이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분야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웅숭깊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 세상뿐일까. 삶과 죽음, 소멸과 생성, 인간과 사물들의 관계는 물론 동서양을 관통하는 철학의 깊이도 있어야 한다. 우연히 얻게 되는 작품은 생명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정록 작가는 만만치 않은 사유의 힘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피사체로 삼는 그 대상과 교감을 하고, 그 교감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 교감은 진리인 것이다.

개시체험을 얻기 위해 한라산에 들어갔을 때는 두 달 동안 카메라를 열어보지도 못했다. 두 달. 작가에게 그 두 달의 시간은 고행의 시간이자, 침잠의 시간이었고, 기다림의 시간이었으며, 자신을 비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저도 가끔 저에게 묻습니다.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지. 그리고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저의 갈망은 결코 버릴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은 물론이고 거기다 예술적 변환능력까지 갖췄으니 그의 다음 작품들이 더 기대가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기다리고 기대했다. 하긴 작가의 의도대로 예술작품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모든 예술의 완성은 독자의 오독이자 오해라고 하지 않던가.

작가는 광주대를 졸업하고 홍익대를 거쳐 뉴욕으로 사진을 공부하러 갔다. 그곳에서 작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가기 전까지 제가 하고 있던 작업들을 그곳에서는 정크취급을 하더군요. 쓰레기요. 저는 충격을 먹었어요.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했습니다.”

어쩌면 그 충격은 처음 카메라를 접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다시 처음부터 사진에 대해 생각하고, 사진작업에 더 애정을 갖게 되었다.

이정록 작가는 좀 더 많은 작품을 하기 위해 오랫동안 하던 대학 강의도 그만두었다고 했다. 십 년 동안 하던 강의였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오르내리면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던 작가는 어느 날 문득 회의를 느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진에 대한 욕망이 더 컸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감히 그만둘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건 사람은 모든 것을 잃거나 얻는 법. 하지만 그가 보여준 작품들을 보노라면 작가는 분명 모든 것을 얻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계획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제가 작업을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작업이 그때 그때 저를 끌고 갔다고 봐야겠지요.”

정말, 내일 일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럼 어떤 작품을 계획 중에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터키로 갈 것 같습니다. 그곳에 봐둔 것이 있거든요.”

카파토키아. 그의 말에 나는 카파토키아를 생각했다. 아마도 그의 머릿속에는 카파토키아로 이끄는 나비가 팔랑거리며 끊임없이 작가를 유혹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그곳에서 어떤 작품들이 탄생할지, 그의 다음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은미희 소설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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