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원소>, 20여년 전에 본 영화이다. 뤽 베송 감독으로 부르스 윌리스, 밀라 요보비치 등이 출연했다. 미래도시의 행성 파괴라는 스펙터클한 영화로 인상이 깊었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종족의 모습이나 의상은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의상 담당의 핵심은 장 폴 고티에(J.P. Gaultier)였다. 이로부터 20년이 다 된 2016년 봄 그가 서울에 왔다. ‘패션계의 악동’으로 불리며 세계적 디자이너가 된 그는 지난 5년간 8개국 11개 도시를 순회하며 전시했다.

서울 전시는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투어의 마지막 전시이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서울디자인재단과 현대카드가 공동 주최했고 캐나다 몬트리올 미술관과 프랑스 장 폴 고티에 하우스가 2년간 협업해 준비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1’의 하나인 <장 폴 고티에전(展)>을 들어선 순간 충격이었다. <제5원소>라는 영화가 오버랩이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패션의 정의가 무엇일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물밀 듯 다가왔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의상디자인은 볼 수 없었다. 기존의 의상과는 전혀 다른, 때로는 엉뚱하고 기상천외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이러한 그의 스타일로 인해 보는 사람에 따라 그를 평가하는 기준이 둘로 나뉜다고 할 정도다. 일단 그의 기발함은 패션을 바라보는 시선에 자극을 주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하겠다.

멀리서 보면 여자가 옷을 입은 것인지 입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여자의 신체를 그대로 표현한 의상, 서양의 코르셋에서 영감을 얻기 시작한 속옷의 겉옷화라는 명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남다르다.

세계적인 가수 마돈나의 의상을 보면 역시 장 폴 고티에가 떠오른다. 그는 꽤 오랫동안 콘서트 투어 의상을 제작하며 마돈나 특유의 아이코닉(iconic)한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월드투어 의상인 원뿔 브래지어 등은 장 폴 고티에의 디자인 작품이다.

독특한 오트꾸튀르(haute couture, 고급 여성복)로 세계 패션계를 사로잡은 장 폴 고티에는 어린 시절 때부터 디자이너의 꿈을 자연스레 키워왔다.

지난 3월 25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남자라는 이유로 곰 인형을 사주지 않았어요. ‘나나’라는 테디베어를 어렵게 구해 웨딩드레스나 원뿔 모양의 브래지어를 만들어 입혀보며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울 수 있었지요. 할머니 옷장에서 처음 만져봤던 코르셋, 스타킹의 아름다운 곡선 등은 모두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것이죠.”라고 밝혔다.

그는 10대 시절 본 <빨발라(Falbala)〉라는 영화를 보며 오트꾸튀르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 피에르 가르뎅 등 기성복 업체의 어시스턴트로 시작했다가 결국 맞춤 제작인 오트꾸튀르로 돌아선 이유다.

장 폴 고티에의 성공에는 배우 니콜 키드먼이 있었다. 그는 “인지도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첫 컬렉션에서 니콜 키드먼을 비롯해 영국에서 온 여성분이 작품을 구입해줬다. 오트꾸튀르에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장 폴 고티에는 기존 관습을 뒤엎는 독특한 옷과 실험적인 패션쇼를 선보이며 세계 패션계에 이름을 날린다. 금발 스웨덴 미녀를 선호하는 다른 패션쇼와는 달리 흑인 여성이나 몸집이 큰 여성을 쇼에 세우고, 박제, 아프리카 가면, 투우사의 볼레로에서 영감을 받은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등 그가 선보이는 패션 영역은 한계가 없다.

이번 전시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영감을 받았던 주제를 중심으로 7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졌다. 특수 영상기법을 이용해 마네킹 얼굴에 화면을 비추어 마치 사람이 말을 하고 눈을 깜박거리는 표정을 만들어 전시의 쇼적인 분위기를 차용했다.

이 중 마네킹 2개는 빅뱅의 지드래곤과 투애니원의 씨엘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물론 장 폴 고티에 본인의 모습도 있다.

오는 6월 3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 3D 프로젝션 마네킹을 비롯해 마네킹 의상 140점, 사진 등 평면작품 72점, 오브제 8점을 선보인다.

대동문화 94호 [2016 5,6월호]

정인서 기자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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