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광주에 최초의 문예회관이라고 부르던 곳이 있었다. 근대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남구 양림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옥과 서구식 건축물이 공존하는 동네. 양림동은 광주를 찾은 외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소 중의 하나다. 선교사의 사택이 모인 대구의 청라언덕이 있듯이 광주에는 근대역사의 산실인 양림동이 있다.

딱 봐도 오래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양림교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양림교회 오른쪽엔 이 지역 분위기에 맞게 빨간 벽돌로 지은 ‘양림빵집’이 들어섰다. 그 때문인지 이 가게는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양림교회 왼쪽에는 회색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심 속의 서양식 건축물이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만큼 정말 견고해 보인다.

양림교회와 오웬기념각 사이에는 낮은 담장이 있었다. 현재는 벽돌 담장이 사라지고 교회와 바로 이어진다. 담장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있다.

최초 선교사 오웬 기념하기 위해 건립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이곳에서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오웬기념각은 신사참배를 강요받던 우리 민족들의 설움을 위로해주던 안식처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오웬기념각은 전라남도 최초의 선교사로 광주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클레멘트 C. 오웬(Clement C.Owen:1867∼1909. 한국명 오원 또는 오기원)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William)을 기념하기 위해 1914년에 건립된 2층 건물이다.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양림동에 떡하니 으리으리한 최초의 2층 건물이 들어서 그 명성이 엄청났을 터다. 지금은 고층 건물들이 흔하지만, 당시 오웬기념각은 2층 건물이라는 자체로 관심을 끌었다.

오웬은 양림동의 서양촌에서 생활했던 선교사였다. 그는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양림동 일대에서 선교 및 의료봉사활동을 하다 1909년 결국 과로로 눈을 감았다.

평소 오웬은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생전부터 할아버지의 기념각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오웬기념각은 그의 뜻에 따라 미국의 친지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1914년 지어졌다.

이 기념각의 건축면적은 275.3㎡, 연면적은 434㎡의 양옥건물이다. 네덜란드식 쌓기로 회색 벽돌을 사용했고, 우진각지붕으로 지어진 2층 건물로, 평면이 4각형이다. 1998년 5월 7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100년 전부터 다양한 문화행사 열려

과연 오웬기념각에서 종교적인 행사만 열었을까?

이곳에서는 기독교 관련 집회는 물론, 강연회, 음악회, 영화, 연극무용 등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열렸다. 바로 서양문화가 뒤섞였던 광주 신문화의 발상지였다.

오웬기념각에서는 이 지역의 첫 서양음악회가 열렸다. 잠시 눈을 감고 1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100여 년 전 광주의 문화예술회관 역할을 했던 오웬기념각.

수피아여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던 김필례 여사는 오웬기념각에서 광주 ‘최초’로 개인 독주회를 열었다. 1919년에는 3.1만세운동을 고취시키기 위해 연설회도 열렸다.

현판에는 ‘IN MEMORY OF WILLAM L. AND CLEMENT C. OWEN.’이라고 적혀있다. 말 그대로 오웬과 윌리엄을 기념하는 곳이다.

정면과 측면 입구의 장식은 이슬람 양식으로 독특하다.

내부에 들어가면 더욱 독특한 건축구조인 것을 알 수가 있다. 건물 자체는 2층의 회색 벽돌 건물이 정방향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특이하게 모서리가 정면이다. 모서리에 세워진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되는 구조다.

경사진 바닥, 모서리 정면의 독특한 구조

현관은 2층까지 뚫려 있다. 설교단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1층 바닥과 2층 발코니를 모서리의 설교단을 향해 경사지게 지었다.

2층으로 올라가보자. 2층의 발코니 역시 경사진 바닥으로 1층이 잘 내려다보인다. 나무로 된 바닥의 삐거덕, 삐거덕 소리가 위태롭지만 신기하다.

세월의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낡은 의자와 문들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또한 무대를 중심으로 객석 한 가운데에 천으로 휘장을 치고, 남녀를 구분지어 앉았다. 남녀가 들어가는 문도 각자 다른 방향으로 사용했다. 지금으로썬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었을 게다.

오늘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지 않은 이상 오웬기념각의 문은 굳게 잠겨있어 아쉽기만 하다.

지난 2012년에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KBS 드라마 <각시탈>이 오웬기념각 내부에서 촬영됐다. 최근 근대역사가 깃든 양림동의 곳곳이 드라마, 영화 촬영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100년 전 광주의 문화예술회관 역할을 했던 오웬기념각. 최근 ‘고독의 시인’ 다형(茶兄) 김현승(1913~1975) 선생을 기리는 다형문학대전이 지난 2014년부터 오웬기념각에서 개최되고 있다.

지금은 이보다 더 화려하고, 멋들어진 문예회관이 많다하지만, 100여 년 전부터 양림동과 함께 했던 오웬기념각의 기품은 여전히 따라갈 수 없으리라.

대동문화 95호 [2016 7,8월호]

김다이 기자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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