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산등성이가 형형색색이다. 그리 산뜻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다른 산등성이 마을에 비하면 제법 그림책 느낌이 물씬 풍긴다. 뭐 멕시코 벽화마을로 유명한 파추카 지역의 ‘라스 팔미타스’에 비하면 디자인 감각이 별로 있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재미있어 하며 줄지어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벽화마을로는 최근 주민들이 관광객 때문에 시끄럽다며 일부 벽화를 지워 문제가 된 서울 대학로 건너편의 이화동 벽화마을을 비롯하여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통영 동피랑마을, 청주 수암골마을, 수원 행궁동마을 등이 있다. 그리고 웬만한 도시마다 이름을 걸고 있는 크고 작은 벽화마을이 있지만 썩 그리 잘된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사실 이곳들도 대부분 벽화마을을 만들면서 주민들과 제대로 협의되지 않은 채 시작했거나 관광객 소음 등쌀에 지친 주민들과의 갈등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곳이 여럿 있다. 또 벽화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지역성이나 주민의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작가 중심 작업으로 인해 지역과 동떨어진 벽화가 난무한 곳도 있다. 벽화라기보다는 환경미화라고나 해야 할까.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하고 제 자리를 잡아가는 곳이 부산 감천문화마을이다. 금요일에 부산의 다른 곳을 둘러보고 토요일 오전에 이곳을 찾았다. 일전에도 5차례나 찾아간 곳인데 갈 때마다 상당히 변화해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쯤 되면 인산인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 아침에 부산의 한 예술인과 함께 행보했다.

그는 부산에 살면서도 이곳을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어 우리의 취재에 무임승차(?)했다. 원래 유명한 곳은 동네 사람보다는 외지인들이 열광한다는 공식이 들어맞은 셈일까. 언론이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블로그나 SNS 부추김이 있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을게다.

마을기업 수익금 주민 복지 위해 쓰여

감천문화마을(www.gamcheon.or.kr)이라고 불리는 부산 감내2로 산복마을은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모여든 피난민들의 판자촌이었다. 한때 인구가 3만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1만명 정도로 줄었고 폐.공가도 3백여 채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 대표적인 고지대 달동네인 이곳이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절반은 중국 관광객인 듯싶다.

우리가 찾은 토요일 이른 아침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관광버스 1대가 방금 중국인 한 무리를 풀어놓은 듯 했다. 2012년에 진영섭 작가의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라는 제목으로 옹벽에 색색의 나뭇조각으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놓은 곳은 입구 초입에 있는 제일의 포토존이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거제에서 온 2명의 여고생은 2시간에 1만2천원 하는 한복을 빌려 입어 사진 찍는 데 푹 빠졌다.

감천문화마을은 매년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하고 유지 관리되고 있는 듯 했다. 처음엔 주민들도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젠 마을의 경제적 활력을 찾아가는 중요한 기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마을사랑도 점점 커져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천문화마을은 이제 자립형 공동체로 만든다는 것이 목표이다. (사)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가 만들어졌고 마을 자체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익모델 창출과 이것이 주민들의 소득과 연계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익사업을 발굴 중이다.

주민들의 불편은 초창기보다는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관광객으로 인한 발생하는 수익금이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쓰이면서 부터이다. 9개 마을기업 운영에서 얻어진 수익금으로 이중방범창도 설치해주고 있고 집수리도 한다고 했다.

전순선 감천문화마을주민협의회 부회장은 “처음엔 자원봉사나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했는데 지금은 활동비를 일부 제공함으로써 노동의 대가와 주민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는다”면서 “주민협의회는 14명의 직원과 마을주민만 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3~5시간)가 120명 정도 운영된다”고 말했다.

감천문화마을은 지난 2009년 지역예술단체인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가 문화관광부 공공미술프로젝트에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가 선정되면서 처음 1억원으로 시작했다. 2010년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는 국고보조금과 시.구비를 합쳐 2억3천만원으로 골목길 재생에 나섰다. 2011년에는 주거환경 개선사업, 커뮤니티센터인 ‘감내어울터’와 ‘감내카페’ 조성. 2012년에는 공영주차장, 작은박물관, 조명시설 등 지역특화사업 등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너무 상업적 풍경 보이지 않도록 힘쓰겠다”

곳곳에 벽화를 그리거나 조형물을 만들고 집집마다 파스텔톤으로 색칠을 했다. 골목 중간 중간 빈집에는 작가의 공방이 있거나 전시공간이 있었다. 산비탈에 들어선 마치 피난민촌 같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집들이 색깔 있는 공간으로 바뀐 곳이다. 미국 CNN 누리집에 ‘Gamcheon: Is this Asia's artsiest town?'이라고 소개된 이곳은 마치 영화 속 풍경을 생각하게 만든다.

감천문화마을에는 주민협의회와 엄마손협동조합이 있다. 주민협의회는 감내카페, 감내맛집, 고래사어묵 등 마을기업사업단을 비롯해 홍보단 봉사단, 생활개선사업단, 세 곳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민박사업단, 문화예술사업단을 운영 중이다.

엄마손 협동조합은 재래시장의 빈 점포를 활용한 감천아지매밥집 등 먹거리 개발, 문화마을 입주작가와 지역주민을 연결하여 주민작가 양성 및 문화상품 개발과 아트숍 운영 등 주민소득 증대에 나서고 있다. 방문객들에게 감천의 특성을 살린 먹거리 제공, 기념품 판매 및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주민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30여개의 다양한 업종의 점포가 개업 또는 개업을 준비 중에 있다.

감천문화마을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2013년만 해도 4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는데 2015년에는 14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한국의 마추픽추’, ‘한국의 산토리니’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좋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은 쉽게 다가오기나 할까 염려스러웠다.

감천문화마을은 이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갖는 세계적인 마을로 부상했다. 르몽드지, CNN, 알자지라 방송 등 해외 언론 및 방송에서 여러 번 소개되었고 중국 충칭시에서 열린 세계도시 정상회의 때 발표되기도 했다.

또한 이곳의 풍광을 보기 위해 디 오니시오 곤잘레스(세계적인 건축가), 올리베티(슬로시티 사무총장), 후동성 (중국 청화대학 부총장), 사이키 타카이토(고베 부시장), 사토 마사루(아시아 도시 경관학회장) 등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이 다녀갔다고 한다.

세계 유명인사들이 다녀가고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좁은 골목 어디에서든 창문 너머로 또는 대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 보이는 그런 구조에 개인적인 가난만 쌓여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현실이 주민들에겐 다소 비인간적인 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싶었다.

비평의 글도 있다. 바라보기건축으로 일관된 풍경의 건축은 자칫 비민주와 허구라는 환상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종민 건축가는 계간 <예술문화비평> 9호(2013년 여름) ‘도시풍경에 관한 우려’에서 감천마을과 산복도로를 실제로 구성하는 시민의 삶이 깊이 살펴져야 한다고 했다. 삶의 주체로서의 그들이 얼마나 이 문화행위에 참여하고 있느냐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면서 문화의 참 가치란 참여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선순 주민협의회 부회장은 상권이 형성되고 상가 중 절반 정도는 외부자본의 유입으로 환경이 좋아져 관광객 유치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너무 상업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게 고민이다면서 약간의 상업적이면서 볼거리를 늘리고 주민 스스로 만든 10가지 약속을 방문객과 함께 지켜나가는 데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대동문화 95호 [2016 7,8월호]

정인서 기자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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