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에서 만나는 옛 추억은 아련하고, 정겹다. 골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일은 꽤나 재미난 일이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찾는 성취감은 특별하다.

광주의 대표적 저수지였던 경양방죽은 사라지고 2012년 ‘경양방죽 둘레길’이 완성됐다. 경양방죽 흔적을 따라 생겨난 반원형의 골목길은 ‘경양방죽 둘레길’로 이름을 붙였다.

비록 경양방죽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을 기억하는 둘레길이 생겼다. 둘레길을 걸으며 경양방죽이 있던 시절을 그려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조용한 골목을 보고 있으니 자동차 경적소리의 시끄러운 도시에서 벗어나 잠시 한적한 곳에 온 듯한 마음에 편안해진다.

뱃놀이 즐길 정도로 낭만적이었던 인공호수

경양방죽 둘레길은 동구 계림카센터 부근의 ‘화진정’이라는 식당에서부터 시작해 홈플러스 계림점까지 이어진다. 약 500m정도 된다. 화진정 골목길에는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바닥에는 ‘경양방죽 둘레길’이라는 표시와 함께 황토색으로 칠한 골목길이 계속된다.

둘레길에는 개미 캐릭터가 곳곳에 등장한다. 쌀 한 톨을 들고, 밀짚모자를 쓴 개미는 어떤 이야기를 지녔을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시작점에는 전봇대를 등지고 어린 아이들이 말뚝 박기를 하던 벽화가 반기고 있다. 옛 시절 동네에서만 볼 수 있었던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던 풍경도 벽화로 담아냈다.

옆 집, 앞 집, 뒷집에 사는 또래 친구들이 모여 동네가 떠내려갈 정도로 소리치며 장난쳤던 추억이 떠오를 게다.

유유자적했던 경양방죽의 물살은 뱃놀이에 안성맞춤이었다. 뱃놀이를 할 정도로 꽤나 큰 인공 호수였다. 겨울이면 얼어붙은 경양방죽에서 나무썰매를 타기도 했다.

계림동 일대를 커다랗게 차지했던 경양방죽은 1440년 세종대왕이 실시한 중농정책의 하나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였다.

둑에는 제방을 보호하고 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뚝방길 양쪽에 줄지어 있었다. 광주사람들은 이 경양 숲 그늘에서 쉬고 산책을 즐겼다. 그만큼 삶의 애환과 정서가 깃든 곳이었다.

낭만의 대명사였던 경양방죽은 1940년, 1966년 두 차례 매립되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태봉산을 깎아 메워진 경양방죽의 자리에는 광주시청이 들어섰고, 시청은 다시 2004년 상무지구로 이전했다.

역루 가까이엔 꽃다운 연못 하나

둘레길 벽면에는 경양방죽이 있었던 당시의 흑백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황토색의 둘레길을 따라 걷다보니 옛 명성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된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은 열여덟 살 때 경양방죽을 지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잡목은 큰 길가에 늘어섰는데

역루(驛樓) 가까이엔 꽃다운 연못 하나 있네

얼굴 비치도록 맑은 방죽물은 아득히 깊고

저녁 구름은 두둥실 한가롭기만 하네

대숲 울창해 말을 몰기 여의치 않을지언정

연꽃 만발해 뱃놀이하기엔 제격일세

위대한 손 관개(灌漑)의 힘이여

일천이랑 논에는 물결이 출렁이네

雜樹臨官道, 芳池近驛樓, 照顔春水遠, 隨意晩雲浮

竹密妨行馬, 花開合汎舟, 弘哉灌漑力, 千畝得油油

카메라를 들고 동네 곳곳을 찍고 돌아다니니 쌀집 앞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무슨 일로 사진을 찍느냐고 묻는다. 둘레길 산책 중이라는 답변에 반가운 내색이다.

경양방죽 둘레길에는 80~90년대의 분위기의 쌀집이 있다. 쌀집 건너편에는 참기름, 깨, 고추, 떡을 만드는 방앗간이 자리하고 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방앗간 기계 돌리는 소리가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경양방죽 있을 때만 해도, 뚝방길을 달리거나 걸었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제. 여쪽은 비만 오면 진흙창이 돼서 장화 없이는 못 다녔어. 좀 돌아가더라도 쭉 뻗은 제방 위 둑길로 다녔당께.”

경양방죽의 마스코트는 개미다. 왜 경양방죽의 대표 이미지가 개미일까?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흥미롭다. 경양방죽은 개미와 얽힌 하나의 설화가 있다. 조선 세종대왕 때 광주 출신인 전라감사 김방이 광주고을 백성들과 더불어 경양방죽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김방은 가뭄에도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경양방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방죽을 파다 엄청난 개미집을 건드렸다. 김방은 방죽이 완성되어 물이 차면 개미들이 죽게 될까봐 개미집을 떠다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다.

그 뒤로 신기하게도 김방의 쌀뒤주에는 매일 쌀이 가득 쌓였다고 한다. 가만히 지켜보니 개미떼가 쌀을 한 톨씩 물어와 뒤주에 옮겨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개미들이 물어다준 쌀로 배고픈 일꾼들을 먹여가며 경양방죽은 무사히 완성되었다고 한다. 개미로 장식된 둘레길을 걸으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자. 둘레길 곳곳에 개미를 형상시킨 곳을 찾는 재미가 있다.

마을 사료관 전시 콘텐츠 미흡 평가

개미모양의 벤치는 무더운 더위를 잠시 식히고 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했다. 둘레길 끝에는 경호정(鏡湖亭)과 경양마을 사료관과 마을 기업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있다.

더위를 식힐 겸 카페에서 차가운 음료를 사서 정자에 앉았다. 경호정은 경양방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자였다. <광주읍지(1879)>에 의하면 경호정은 19세기 초 광주목사 김선 재임기간(1804~1806)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후 1897년 판 <광주읍지>에는 이 정자가 없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호대에는 경호정보다 더 먼 옛날, 경호정(鏡湖樓)라는 누각이 있었다. 이는 경양방죽을 축조한 김방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누각이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

그나마 경양마을 사료관 앞에 경호정을 재연해놓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 작은 정자에 잠시 앉아 더위를 식히며 경양방죽에 대한 추억을 나눠보자.

경양마을 사료관의 전시 콘텐츠는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 방문객들의 흥미를 끌만할 소재가 아닌 관련 자료를 프린트해 액자로 걸어놓은 수준이라 아쉬움을 준다. 또 황토색으로 칠한 골목길은 빛이 많이 바랜 상태로 상당한 보수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경양방죽은 사진으로나마 희미하게 기억되고 있다. 가벼운 골목길 산책코스로 추억이 깃든 경양방죽 둘레길을 한 번 걸어보자.

대동문화 95호 [2016 7,8월호]

김다이 기자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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