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인들 몇이 양재동 ‘순천집’에서 만나 소주 한 잔 나누던 자리에서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딸 한강에서 이제는 거꾸로 한강의 아버지가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라는 우스갯소리로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소설가 한강이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소식이 이 땅을 들썩이게 한 직후였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한국 대표작가로 명성이 드높은 한승원가(家)에 마침내 세계적인 작가가 탄생한 순간, 우리는 모두 얼마나 가슴이 떨렸던가. 그동안 노벨문학상 발표 시기만 돌아오면 모두들 ‘혹시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아닐까?’ 하며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미리 후보자의 집 앞에서 진을 치곤했었는데, 한강이 수상하기 전 누가 전남 장흥의 한강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에서 진을 치고 있었을까? 아니, 수상을 확신이라도 했었을까?

뉴스를 통해 일단은 후보작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우선은 가깝게 모시는 한승원 선생의 따님이라는 점, 다음으로는 우리 한국 문학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었던가. 그리고 마침내 “바람에 날아온 씨앗처럼 첫 생명의 증거가 되었다”. 인간 존재의 빛나는 증언이라는 평가를 받은 생 텍쥐페리의 『우연한 여행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다.

소설가 한강은 그동안 세계적인 작가라는 소리를 들었던 어느 중견 소설가의 일본 작품 표절 시비로 얼룩져 상처만 남았던 한국 문단에 ‘바람에 날아온 씨앗처럼 첫 생명의 증거가 되었다.’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모처럼 한국 작품 출간 출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기쁜 소식이다. 2007년에 초판을 찍은 후 수상 이전에는 공백기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2016년 6월 현재 무려 30쇄를 훨씬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독자들이 많이 읽었다는 징표이며, 아울러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도 덩달아 나비효과를 주었다는 점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먼저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이면에는 당연히 번역의 힘이 컸음을 우리는 확실하게 믿는다. 이번에 한강과 함께 번역가로서 공동 수상한 영국 틸티드 엑시스 출판사 발행인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가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기 전에 사실은 먼저 2010년에 베트남어로 번역되었고, 이어 2011년 일본 도쿄의 쿠온출판사에서 ‘신한국문학’ 시리즈 첫 번 째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그 외에도 폴란드, 아르헨티나, 포르투갈가지 번역이 되었다). 쿠온출판사의 이 일본어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꿈꾸며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시도된 것으로 2014년까지 무려 10권의 일본어 번역 작품이 일본 전역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 10권 중에 시집으로는 신경림의 『신경림시선』과 허형만의 『귀를 염하다』가 포함되어 있다.)

한강처럼 한국작품이 세계의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번역의 힘일 터이다. 이번에 수상한 영역 『채식주의자』 역시 대산문화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하게 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흔히들 번역은 또 하나의 새로운 창작이라고 말한다.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 후기를 읽어보면 번역가란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지를 토로하고 있다.

데보라 스미스는 말한다. “번역이란 반역인 동시에 해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한 이치라 쳐도, 이 자명함 뒤에는 번역에 관한 오해의 가능성이 도사린다. 번역은 ‘단 한 가지’ 해석을 낳지 않는다. 혹은 그러해서는 안 된다.(…)번역가로서 나는 당연히 작가의 의도를 존중하고자 최대한 노력하는데, 『채식주의자』의 경우 영어와 한국어의 거리 때문에도 원문의 효과를 영어 번역문에 재현하고자 적확한 문장 구조와 어휘를 찾기 위해 공을 들여야 했다.” 그리하여 이처럼 훌륭한 번역가의 번역 정신에 의해 한강은 이제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고, 한국문학의 자부심을 지켜주었다.

이처럼 한국 작가의 작품이 일본의 작품에 하등 뒤처질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권에서 일본이나 중국 작가들만 노벨상을 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혹자는 번역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한국문학번역원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2001년 정부는 한국문학번역금고와 문화예술진흥원의 해외 번역사업을 통합해 한국문학번역원을 출범시켰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지난 15년 동안 꾸준히 한국문학번역상과 신인상을 통해 번역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국 문학 번역아카데미 수료생에 대한 번역 지원을 꾸준히 해오고 있고, 한국 문학 번역 전문 인력 양성 사업 또한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세계번역가대회와 한국 문학 번역출판 국제워크숍도 지속적으로 해오면서 한국 문학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이처럼 한국문학번역원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이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고 소개하는 숫자 외에도 내가 받아본 번역 작품도 상당수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외에 번역 소개되는 작가(시인 포함)와 번역가의 면면이 너무 한정되거나 편파적이지는 않는가도 차제에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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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시인

1945년 전남 순천 출생. 중앙대 국문과 졸업. 1973년 『월간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시집 『가벼운 빗방울』『불타는 얼음』『그늘이라는 말』『영혼의 눈』 등 15권과 활판시선집 『그늘』, 중국어시집 『許炯萬詩賞析』, 일본어시집 『耳を葬る』. 평론집 『영랑 김윤식연구』『시와 역사인식』 등 다수. 영국 IBC 인명사전 등재(2001~2002). 한국예술상, 펜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등 수상. 국립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 교육대학원장 역임. 현재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펜한국본부 심의위원장. 한국시인협회 이사.

대동문화 95호 [2016 7,8월호]

허형만 시인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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