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통과 화합의 깊은 울림을 남기고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보낸 5일 동안 교황은 소탈한 행보와 낮은 곳을 향한 발걸음으로 종교와 세대를 넘어 ‘교황 신드롬’을 일으켰다. 교황 방한 이후 천주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전남지역에서도 지금 천주교 순례 코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남지역의 천주교 유입 배경

근세초기의 지리상의 큰 발견과 이에 따른 세계적인 탐험여행은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을 초래하였고, 서세동점은 동시에 서학(西學)이 동점하는 계기가 되어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 천주교가 전래되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예수회는 스페인 예수회원 세스페데스(G. de Cespedes) 신부를 조선 남해안에 파견하여 일본인 천주교 장병들의 신앙을 돌보게 하였다.

한편 중국의 예수회 선교사들도 북경에 왕래하는 조선 사신들을 통해 조선전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북경을 방문하는 조선 사신들은 서양문물에 대해 새 지식을 얻고자 선교사들을 자주 찾았고, 선교사들 역시 그들을 기꺼이 맞이해 서양의 학문과 종교에 대해 필담을 나누었다. 이리하여 조선 사신들을 통해 서양문물이 처음으로 조선에 도입, 천주학이라는 학문적 개념으로 천주교가 들어왔다.

조선은 천주교회의 창설과 조선교구가 설정되면서 여러 박해와 격동기를 거치고 나서 1882년 미국을 선두로 하여 잇달아 체결된 구미열강들과 1886년의 프랑스와의 조약이 불완전하나마 조선에 처음으로 종교자유를 갖다 주었다. 이로써 선교사의 정착이 가능해지고 그 결과 본당조직이 발전하게 되었다.

최초의 본당인 서울의 종현(오늘의 명동)본당은 대성당을 비롯하여 주교관, 수녀원, 인쇄소 등의 부속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종현에 이어 원산, 제물포, 부산, 마산포, 목포 등 개항지에 잇달아 본당이 건설되고, 갓등이, 평양 등 주요한 교우촌과 주요 도시에도 본당이 건설되어 나아갔다. 또한 주교좌 성당 구내에 고아원가 양로원이 세워지고 그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프랑스로부터 수녀들이 진출하였다.

이로써 전남지역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인 산정동 성당은 1898년 5월 김제 수류 성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다.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수류 성당

수류 성당이 있는 금산면은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불리는 곳이다. ‘느리고 바르고 기쁘게 걷는 길’이라 해서 ‘느바기 길’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순례길(9코스 240km)의 하나로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대순진리회 등 각종 종교의 교당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국보 62호인 미륵전으로 유명한 천년 고찰인 모악산 금산사를 시작으로 30분쯤 걷다보면 한옥으로 지어진 금산 교회가 나온다.

1908년에 미국인 선교사 테이트(최의덕)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 교회 부지를 내놓은 김제지주 조덕삼 장로와 그 집의 머슴이었던 이자익 목사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여기서 다시 금평 저수지 방향으로 30분쯤 걸어가면 청도리에 대순진리회 산하 상생청소년수련원이 있다.

이곳 청도리 동곡(銅谷, 구릿골)은 대순진리회가 상제님으로 떠받드는 증산도를 창시한 강일순이 동곡약방을 운영하며 머물던 곳이다. 다시 원평리로 가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듯한 오래된 풍경 속에 원불교 원평교당이, 다시 저수지 길을 따라 10리 남짓 가다보면 화율리에 수류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류 성당은 전주 전동 성당과 함께 188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수류 성당은 1895년 9월까지 모악산 깊은 골짜기에 있는 배재 마을(현재 전북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있다가 그해 10월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1907년 목조건물로 지은 성당은 6.25 때 소실되고 지금의 건물은 1959년 다시 지은 것이다.

1896년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수류 성당을 순시할 때 전남지역에 본당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후보지로는 다음해 개항하게 되는 목포로 결정한 뒤 1897년 초대 주임신부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드예 신부를 임명한다. 그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어글리 미셔너리(추악한 성직자)’라는 것.

그의 재임기간 중 조선은 구한말 격변기를 거쳐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 있는 서양인의 한 사람으로서 뮈텔 주교의 입장은 조선천주교회의 행로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가 남긴 재임 중의 일기에는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깔보고, 교회의 이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도처에 보인다.

그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지지하여 3.1운동 때는 천주교인과 신학생들의 만세운동 참여를 엄격히 금지했다. 또 안중근 의사의 영세신부인 빌렘이 안 의사의 사형집행 전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는 것마저 가로막고, 결국에는 빌렘 신부를 조선에서 추방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전남지역 천주교의 모태인 목포 산정동 성당

1898년 5월 김제 수류 성당으로부터 분리하여 전남지역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인 산정동 성당은 설립된다. 뮈텔 주교가 드예 신부를 목포 본당 주임신부로 임명했을 당시 목포에는 천주교 신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까닭에 드예 신부는 목포로 가기에 앞서 전북 순창군 쌍치면 아천리(현재 오룡리) 천주교신자 마을에 머문다. 쌍치면은 내장산과 추월산 사이의 산이 깊은 곳.

18세기말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후 신유, 기해, 병오, 병인 등 네 차례의 박해가 있었고. 이를 피해 신자들은 이 처럼 산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옹기를 굽거나 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드예 신부는 먼저 이기환 등 2명을 목포로 보내 유달산 밑 북교동에 한옥과 땅을 구입한다. 그리고 1898년 7월 성당 건축 준비를 갖추고 목포로 가서 다시 이듬해인 1899년에 북교동에서 당시 무안군 부내면 연치동 솔갯재이던 산정동으로 성당을 옮기는데 이렇게 해서 전남에 처음 천주교가 들어오게 된다.

드예 신부가 목포에 도착한 1898년 목포에는 40여 명의 교우와 50여 명의 영세 희망자가 있었고. 그들은 모두 인천이나 경상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이들 영세 희망자 가운데 1900년에 42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리고 도서지방에서46명, 장성과 순창 등지의 내륙지방에서 30여 명이 세례를 받아 118명의 성인 영세자를 배출하게 된다.

이리 하여 목포 산정동 성당은 제주도를 포함한 전남지역의 본당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당시 목포본당 관할 구역은 전남 뿐 아니라 전북의 순창, 정읍, 태인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1898년에는 조선인 신부로서 전주 출신인 이내수 신부가 목포에 와서 드예 신부를 돕게 된다. 이에 드예 신부는 목포본당을 거점으로 무안 몽탄의 우적동 성당, 제주 성당, 나주 노안 성당을 이 지역 초대교회의 구심점이 되도록 외지와 공소에서 주로 활동하고, 이내수 신부가 목포본당을 지킨다.

나주 최초의 본당인 노안 성당은 오늘날 ‘산타 마을’로 유명해졌다. 노안 성당이 있는 계량마을 ‘이슬촌’은 구한말 대동계가 조직될 정도로 마을의 상부상조의 전통이 오롯한 곳이다. 이곳에 1894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정락(요한)이라는 사람이 숨어든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약봉지에 ‘천주경’과 ‘성모경’을 써 주며 약을 복용할 때마다 외우도록 했고, 그 약을 복용하여 병을 고친 몇몇 사람이 천주교에 귀의하게 되면서 1900년 계량공소가 들어서게 된다. 이어 1908년 나주 노안 본당으로 승격하게 되는데 마을주민들의 이와 같은 뿌리 깊은 신앙공동체를 바탕으로 2007년부터 매년 12월에 크리스마스 축제를 연다. 이러한 축제의 유명세로 지금은 ‘이슬촌’ 보다는 ‘산타 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노안성당 내부는 강당 모양으로 트여 있으며 마룻바닥이다. 벽면은 같은 형태의 창을 규칙적으로 두어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지루함을 해소해 주고 있다. 성당 마당에는 성모 동굴과 특이한 모습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조각상이 있고, 아름드리 사철나무와 은행나무, 벚나무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강당형 서양식 건축 양식에 충실했던 성당이 시대적 · 지역적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노안성당은 나주지역과 광주대교구 복음화의 모태라는 역사적 의의와 함께 시대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 양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9월 13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천주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전남지역 주요 성지를 돌아보는 도보 순례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나주 노안성당∼이별재 광장∼옥산∼울음재∼경현동∼나주성당(12.9km) △나주 노안성당∼월암로 사거리∼나산성당∼문장성당∼이흥서원 입구∼영광 순교자 기념성당(35.8km) △곡성 옥과성당∼삼오마을 입구∼창정사거리∼청계동 계곡∼정선교차로∼곡성성당(23.1km) 등 세 가지 루트가 개설되었고, 나아가 도서지역 순례코스가 개발되고 있다.

대동문화 96호 [2016 9,10월호]

정지승 프리랜서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