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마다 칼의 용도와 의미는 다 다르다. 칼은 종교적 상징으로는 신의 심판을 의미하고, 지배자에게는 권위의 수단이었다. 일본인에게는 지배자의 입장에서 상대를 베어버리기 위한 도구로서 칼이었다면, 한민족에게는 서로의 신표와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상징으로서 칼이기도 했다. 장수들은 칼등에 굳은 결기를 새겼고, 선비와 아녀자들이 품속에 지닌 은장도도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 신념의 상징이었다.

고대인들이 가장 흠모하고 숭배했던 대상은 빛이었고, 하늘에서 내리는 신성한 빛을 땅에서 받아들이기 위한 중간 도구가 바로 칼이었다. 지배자의 신물로 빛과 신통력을 잇는 이것이 신검(神劍)이며, 천제(天帝)를 대신하여 땅을 다스리는 천자인 왕통(王統)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 바로 칼이었다.

주몽을 찾아가는 유리 태자에게 유화 부인은 “너의 아버지가 급히 떠나면서 장차 아들이 나를 찾아올 때는 ‘칠령칠곡(七領七谷)의 석상지송(石上之宋)’에 숨겨둔 물건을 찾아오는 자를 아들로 인정한다.”라고 했다. 주몽이 숨겨둔 것은 부러진 반 토막의 칼이었고, 칼을 찾아온 유리는 신통을 잇는 주몽의 후계자임을 선언한다.

일본 나라현[奈良縣] 덴리시의 이시카미(石上) 신궁에 소장된 칠지도(七支刀)는 백제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검이다. 왜는 이를 왜왕을 상징하는 신물로 신성시했다.

612년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인박산 깊은 계곡에 들어가 보검을 들고 하늘에 기도한다. “하느님이시여 ! 빛을 내려 영(靈)을 이 보검에 내려주소서….” 기도 삼일 째 이성(二星)의 붉은 빛이 내려 보검에 닿았고 칼이 부들부들 떨렸다. 신탁의 빛을 감득한 김유신의 신검은 나라를 구하고 삼국을 통일하는 호국 신령이 깃든 칼이 되었다.

하늘의 신성을 상징하는 칼

조선 세조 때 남이 장군이 지은 ‘북정가(北征歌)’는 사내대장부의 호연지기의 기개가 넘쳐난다.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 마도진)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 음마무)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어지네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 미평국) 남아 이십대에 나라를 평안케 못한다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 대장부) 후세에 누가 나를 대장부라 부르랴?

세조의 종친으로 17세에 무과에 장원급제한 남이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였고 20대에 병조판서와 공조판서 등을 두루 지냈다. 북벌로 여진족을 무찌르러 가는 길에 이 ‘북정가’를 지었다. ​하지만 남이의 호국의 칼날도 유자광의 간계에 빠져 무딘 칼날이 되고 만다.

유자광이 세번째 구절의 ‘미평국(未平國)을 ‘나라를 얻지 못한다면’의 미득국(未國得)’으로 글자를 바꿔치기 하여 남이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무고해 결국 죽게 만든다. 호국충정의 시가 어찌 자신의 목을 죄는 결정적 원인으로 악용될 줄 알았으랴. 춘천 남이섬은 그가 유배가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칼 중에서도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칼은 조선의 심장을 찌른 칼 ‘히젠도’이다. 일본 쿠시다 신사에는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를 살해한 칼 ‘히젠도’가 보관되어 있다. 전체 길이는 120㎝, 칼날 90㎝ 크기의 칼에 나무로 만든 칼집에는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늙은 여우를 단칼에 찔렀다)”라고 적혀 있는데, 작전 성공을 기념하여 새긴 글귀이다.

작전명 ‘여우 사냥’. 을미사변이라 불리는 1895년 10월 8일 새벽 5시 반에 조선 주재 미우라 일본 공사와 일본인 자객들에 의해 자행된 명성황후 살해 작전을 말한다. 명성황후 살해 주범 중에 한 사람인 토오 가쯔아끼가 1908년 히젠도를 쿠시다 신사에 기증할 당시 봉납 기록에는 “이 칼로 조선의 왕비를 베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남의 나라 구중궁궐에 난입하여 일국의 국모를 살해한 자객의 칼 히젠도는 우리 민족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살인검이다.

칼의 어원은 ‘둘로 나눠서 가른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또는 칼을 만들 때 돌에다 갈아야 하는데 이때 ‘가른다’(gar, kar)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칼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선과 악, 활인검(活人劍)과 살인도(殺人刀)로 갈라진다.

칼을 쓰는 스포츠인 검도의 덕목은 예의와 신의다. 예의와 신의를 잃으면 오직 칼을 휘두르는 투쟁만 강조될 수 있다. 올바른 일을 위해 사용하면 활인검이지만 사악하게 쓰면 살인검이 되고 만다. 사사로운 탐욕과 불의를 척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사용할 때 명검으로 빛이 난다.

그러나 제 아무리 명검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칼은 살인 흉기일 뿐이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千里馬)가 있어도 백락(伯樂)을 만나지 못하면 그저 보통 말처럼 살다가 죽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칼은 왕통을 상징하는 권력과 지도자의 상징이기 때문에 권력을 잡는 것을 흔히 ‘칼자루를 쥐었다.’고 말한다. 요즘 대한민국은 최고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그 주변에 기생(寄生)하는 무리들이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칼에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이들 칼잽이들은 국민을 향해서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이 살인검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칼을 맞아야 할 사람들이 칼을 잡다보니 온 국민이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도 틈만 나면 설도(舌刀)를 꺼내 서로를 베어내는 것으로 일을 삼는다. 아무리 좋은 칼이 할지라도 도마(칼받이)가 없으면 칼은 쓸 수가 없다. 때문에 칼과 도마, 즉 보수와 진보는 갈등(葛藤)의 적이 아닌 상생의 동반자라 할 것이다. 입술이 사라지면 이가 시럽다 하여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하지 않던가. 우리 사회도 공존과 상생의 법칙을 깨달았으면 한다.

일국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이 관여된 최순실 게이트.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는 그들의 파렴치에 국민들은 분노하다 지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정권 퇴진과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시국 선언과 촛불 시위가 줄을 잇고 있다. 민심은 바닥을 쳤고, 더 이상 박근혜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최순실 국가문란 사태 칼로 도려내야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 자질이 없는 지도자는 국가의 불행이다. 국가 발전을 위한 철학과 비전 같은 것은 처음부터 기대난이었다. 권력의 칼로 국민을 잠시 숨 재울지는 몰라도 국민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 쓰러질망정 꺾이지 않는 것이 국민이고 민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초(民草)라 하지 않던가. 아무리 강한 칼이라 할지라도 펜을 이길 수 없고, 또 칼을 이긴 펜이라도 민초들의 뜨거운 눈물을 이겨낼 수는 없다.

지도자가 신뢰를 잃으면 설 수가 없다 하여 ‘무신불입(無信不立)’이라 했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가 장래를 위해서 주변의 사사로운 관계를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새살이 돋아나지 않는다. 새롭게 바꾼다는 혁신의 ‘신(新)’자는 나무의 썩은 부위를 도끼로 잘라 내야만 새순이 돋아난다는 뜻의 한자다. 피고름을 도려내는 아픔이 없이는 새로워질 수 없다는 말이다.

오행에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상은 인(仁)이고, 생명을 가진 것은 목(木)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의(義)는 금(金)이자 생명을 자르는 쇠붙이다.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그만큼 고뇌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서양문화에서도 정의의 여신은 왼손에 선악시비를 가리기 위한 저울을, 오른손에는 생명을 자르기 위한 칼을 들고 있다.

또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잘라내기 위한 공평함과 엄정함을 표현한다. 사악(邪惡)으로 눈이 가려 선사후공(先私後公)을 일삼고 끼리끼리 권력을 나눠먹는 나라와 기업의 말로는 불을 보듯 훤하다는 것을 역사는 증험하고 있다.

국민들의 눈은 청와대와 여당, 검찰의 일거일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나라를 살리는 활인검으로 사악한 무리들을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단칼에 정리해버리는 새날을 민초들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국가가 사악한 무리들을 옹호하거나 감춘다면 국민들의 칼이 권력의 심장부를 향할 것이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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