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보면 나라마다 연상되는 색이 있다. 중국은 붉은색, 인도는 주황색, 일본은 파란색 등이 떠오른다. 체코는 어떤 색일까? 아마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석양을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보라색을 이야기 할 것이다. 온 세상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동유럽은 겨울은 하루해가 짧고 부슬부슬 비가 오지만, 여름은 아주 건조하여 쾌적하고 해가 길어 활동하기가 좋다.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하루의 해가 넘어갈 즈음이면 많은 사람들이 카를교에 모인다.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 너머로 보이는 프라하 성의 야경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은 야경을 보기 전, 저물어가는 일몰을 보며 낭만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프라하에 보라색이 어울린다면 단어는 <낭만>을 붙여주고 싶다.

프라하에 왔다면 반드시 프라하 성에 가봐야 한다. 카프카의 소설 <성>의 배경이 된 이곳은 세계적으로 단일규모로 가장 큰 성채를 가지고 있어 유네스코지정 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 프라하 성 안에는 비투스 대성당이 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강하고도 화려한 알퐁스 무하의 스테인글라스를 볼 수 있다. 성당은 사암으로 지어졌는데, 철분이 많아 산화작용에 의해 점점 검게 변하고 있다. 해마다 구역을 나눠 정화작업을 하고 있다. 매번 공사용 사다리가 옮겨져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작업이 될 것 같다.

프라하 성 아래쪽에는 황금소로가 있다. 원래는 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였으나 16세기 후반부터 연금술사와 금은 세공사들이 모여 살았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곳은 지금의 상점가로 변했다. 그중 카프카 생가로 알려진 22번지 역시 현재는 기념품점이다. 황금소로를 지나오면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포도밭이 있다. 프라하 성 안에 있는 성당에서 쓸 포도농사를 직접 지었다고 한다.

반나절동안 프라하 성을 돌아보니 몹시 다리가 아프다. 여느 유럽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구시가지는 길이 좁아 대중교통이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튼튼한 두 다리만 의지할 수밖에... 이럴 땐 방법이 좋은 방법이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쉬어도 좋고 전망이 좋은 어느 돌계단에 기대앉아도 좋다.

하루 종일 유적지를 바라보았던 나의 눈을 자유롭게 아무데나 둬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프라하가 갑자기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노부부, 데이트 나온 연인, 3대가 함께 여행을 나온 중동가족, 배낭을 메고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이, 깃발을 따라가는 중국인들, 블타바강에서 태양을 만끽하고 있는 체코 사람들... 다리가 아파 잠시 즐긴 망중한이 프라하를 더욱더 <낭만>스럽게 만들어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코의 프라하에서 프라하의 성, 카를교, 구시가지와 시계탑을 중점적으로 둘러본다. 그러나 프라하에서 유대인의 이야기를 뺀다면 그건 프라하를 반쪽만 이해하는 것이다. 프라하의 구시가지에서 연결되는 요세포프 구역에 시나고그(예배당), 박물관, 유대인의 무덤 등 유대인에 관련된 유적지가 있다.

이곳은 나치에 의해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다. 체코에서 나치에 의해 사망된 수는 대략 7만 7천명에 이른다. 희생된 유대인의 이름은 핀카소바 시나고그 안쪽의 벽에 빼곡히 적어져 있다. 무덤을 옮기지 않는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 무덤도 요세포프 구역 안에 있다. 그 수는 무려 1만8천개 가량이다. 유대인 묘지는 꽃을 절대 두지 않고 돌로 만든 것이 특징인데, 땅이 건조해서 쉽게 파헤쳐지기 때문에 단단하게 고정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버티며 악착같이 살아온 유대인들은 부를 축적하지 시작했고 재정난에 허덕이던 체코 국가에까지 돈을 빌려주게 된다. 그 대가로 형편없는 땅을 달라고 요청했고 쓰레기가 잔득 뒤덮인 땅이라 체코 정부는 흔쾌히 땅을 내어주고 부채를 탕감한다. 유대인은 받은 땅을 정비하고 발전시켜 지금은 프라하 최고 상점가인 파르지주스카 거리를 만들어 냈다.

체코는 프라하 뿐 아니라 필스너 맥주의 원조인 플젠 지역,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보헤미안’이라는 단어가 유래된 보헤미아 지역, 블타바강이 S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체스키크롬로프 역사지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체코는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동유럽을 여행의 관문이 되는 곳이다. 동유럽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체코를 선택해 보시라! 그 여행의 멋진 시작을 열어줄 것이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김근하 기자  paranbaji@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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