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꼍이나 마당 한쪽 볕 잘 드는 곳에 장독대가 있다. 발효되는 장류(醬類) 식품들을 주로 저장하는 독을 놓아둔 대(臺)가 ‘장독대’다. 옹기가 ‘옹기종기’ 모인 장독대는 여자들만 드나드는 그네들 신성 공간이다. 장독대에는 간장, 청장, 된장, 고추장이 있고 김칫독도 있으며, 장아찌와 조청 단지도 있고, 잡곡 등을 간수한 곡식 단지도 가지런하다. ‘장맛이 단 집에 복이 많다.’고 했다. 장맛이 곧 집안 음식 맛인데 맛난 음식 먹고 살져서 그 힘으로 가족들은 세상을 산다. 장꽝이라고도 불렀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대물림되며 소중하고 정갈하게 지켜졌다. 돌담을 쌓거나 봉선화로 꽃담을 둘렀다. 음력 정월 말[馬]날인 오일(午日) 아니면 그믐 손 없는 날을 받아 장을 담그고, 고사까지 지냈다. 장독에 왼새끼로 꼰 줄에 숯과 홍고추를 끼운 금줄을 매달아 부정을 물리쳤다. 잡스런 것들은 아예 오지 마라는 뜻으로 버선 모양의 물건을 거꾸로 붙였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늘 장꽝에 살았다. 햇볕 좋은 날 장독 뚜껑을 열어 볕을 쬐고, 날마다 그렇지 않아도 반지르르한 장독을 모시 수건으로 닦고 또 닦았다. 겨울에 만든 독은 이른 봄에 사서 장을 담가야 좋다고 했다. 잘 마르지 않은 장독에 담그면 금세 쉬어버리기 때문이다. 여름에 만든 독은 초겨울 김장철에 김칫독으로 썼다.

시간을 안으로 삼키며 서있는 옹기들

지금은 아낙들이 김칫독을 장만해야 하는 김장철. 이런 때는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드는 장인을 찾는 것이 제격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월강마을의 ‘땅끝 옹기’ 대표 유영채(53) 씨가 주인공이다. 고향이 해남인 유 씨가 이곳에 옹기점을 낸 것은 2010년 4월이다. 이곳 옹기 공방에서 대형 가스 가마 외에는 모든 옹기 제작 공정에 전통 방식을 쓴다. 손으로 옹기를 만드는 곳은 이제 전국에 5~6군데밖에 없다고 한다.

옹기(甕器)는 ‘독’이다.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합해 부르는 말이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굽고 잿물을 입히지 않은 그릇인데 섭씨 600~700도로 한번만 굽는다. 물과 불에 약해 불씨통, 화로, 시루, 밥통, 화분 등을 만든다.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섭씨 1,200~1,300도로 두벌구이를 한다. 윤택이 나는 발효 저장 용기 대부분이 오지그릇이다.

유영채 씨는 천연 잿물을 쓴다. 잿물은 그릇의 때깔을 내고 그릇에 스며드는 바깥 물기를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 약토는 산의 나뭇잎, 풀잎 등이 삭아 침전 생성된 부엽토를 말한다. 여기에 콩대나 깨대, 소나무를 태운 재를 섞어 발효시켜 잿물 유약을 만든다.

질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물레 성형 방식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물레 위에 질흙을 넓적한 판장처럼 만든 타래미를 둥글게 붙여놓으면 꼭 쳇바퀴처럼 보인다. 이 쳇바퀴를 4~5장 쌓아 올라가며 다듬는 것을 ‘쳇바퀴 타렴법(타림법)’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전라도 식이다.

마지막에 입구 부분의 테인 ‘전’을 잡고 어깨와 몸통 부분에는 무늬를 넣는다. 음각선을 넣는 ‘음선대’, 가는 흙띠를 튀어나오게 붙이는 ‘목질띠’, 물결모양을 내는 ‘수파문’ 등으로 투박한 멋을 낸다. 잿물을 입히고 난 후에도 꽃잎이나 나뭇잎 등을 쓱쓱 손가락으로 그려본다.

가마재임을 한 후 가마 입구를 흙으로 반죽해 막은 후 피움불, 중불, 큰 불 수로 화력을 조절한다. 유영채 씨의 경우 18시간 동안 1,200도의 열로 두벌구이 한다. 불이 너무 급하면 그릇이 터진다.

옹기는 항아리, 알배기, 동이, 오가리, 물동이, 소라, 저박지, 뚜껑, 옹구, 장병(간장), 촛병(식초), 장군(분뇨), 귀댕이, 소래기, 투가리(뚝배기), 시루(떡), 확독(음식물 갈기), 오단지(양념), 고조리(소주 내리는 용구), 약단지(약탕관), 젓동이(젓독)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한국적 아름다움과 과학 담긴 생활 용기

발효 음식이 시간을 끌어안은 작품이듯이, 옹기도 시간을 끌어안은 작품이다. 유영채 옹기장의 일상은 장독처럼 가지런하다. 점토(질)을 구하고 건조하고 반죽하고 그릇을 빚고 잿물을 입히고 굽고 하는 일상이 늘 반복된다. 그 반복되는 일상에 흙, 물, 불이라는 자연이 참여하여 새 생명을 빚는다. 그 옹기가 우리네 생명을 지키는 음식 맛을 잉태한다.

유 씨는 해남에서 태어나 7년 간 부산지방 국세청, 광주지방 국세청 등에서 일했다. 도공의 삶을 염원하며 공직 생활을 접었다. 4년 동안 수행자의 삶을 살며 불화(佛畵)를 그리는 화승(畵僧, 佛母)이 되어보려고도 했다.

그러다 ‘흙쟁이’가 되기로 했다. 강진의 다산요와 무진요에서 청자를 만들기도 했다. 전남도립대학교 다도도예과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2003년 옹기장 양성남에게, 해남 황산면 화원요에서는 남강 정기봉 선생에게 배웠다. 2005년 9월부터 2008년 9월까지 목포에서 개인 작업실을 마련해 옹기 연구에 몰두했다. 영암, 강진 등에서 일하다 고향 해남으로 돌아왔다. 자기 심성처럼 투박한 옹기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었다.

‘땅끝 옹기’ 작업 마당에는 크고 작은 항아리와 단지가 크기별로 종류별로 다양하게 제작되어 있다. 화로, 시루, 물동이, 뚝배기, 항아리, 접시, 밥그릇, 국그릇, 다기, 화병 등 현대 생활 소품도 아기자기하다.

20세기 초 외국에서 광명단(光明丹)이라는 안료가 들어와 전통옹기인 잿물 옹기의 질이 떨어졌다. 광명단 옹기는 1960년대 이후 많이 사용되다가 유해성 논란이 있었다. 이후 플라스틱이나 고무, 스텐레스 용기가 만들어지고 보급되면서 전통 옹기는 사라졌다. 옹기장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웰빙 문화의 바람을 타고 옹기 문화가 조명 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자연식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효소 장류 사업 붐이 일어나면서 옹기 문화도 새롭게 부흥했다.

“옹기는 우리네 민족의 건강을 담아왔던 그릇이죠. 때문에 전통옹기는 아름답게 만들어 소장하는 일보다 음식을 보존하고 발효하기 위한 그릇인 생활용기로 만들어집니다. 한국인의 밥상엔 발효음식이 많고, 발효되고 정제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옹기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숨 쉬는 옹기, 자연이 빚어놓은 생명이 깃든 그릇이 필수적입니다.”

옹기 내부의 기벽에는 소성(燒成)되면서 공기가 통하는 구멍이 만들어진다. 산소는 드나들지만 물방울은 드나들지 못한다. 숨을 쉬게 하는 것이다. 옹기는 발효음식을 선호하는 우리 식생활 문화와 함께 우리 민족의 삶의 변천사와 그 맥을 함께 해온 소중한 전통 자산이다. 무한한 미래가치를 지녔다. 김치와 같은 한국 고유의 발효 과학 식품을 오래 저장하고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김치 냉장고인데 이 김치 냉장고의 원천 모델이 바로 김장독이다.

유영채 씨는 옛날 방식의 화목 가마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자신의 옹기 굽는 방법을 체험하게 하고, 전통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전라도에서 옹기 한 개를 세는 단위는 ‘참’이다. 옹기 짓기는 하루 기껏해야 6참에서 7참 정도밖에 만들지 못하는 고된 노동이다. 그러나 유영채 씨의 해남 땅끝 가마에서는 옹기의 ‘참’ 생명들이 불꽃 속에서 쉼 없이 태어나고 있다. 시간을 안에 품은 참 웅숭깊은 아름다움이다.

**전남 해남군 송지면 월강길 16 땅끝전통옹기 대표

땅끝 옹기 유영채 061) 533-6381

■옹기 제작 과정

1 점토를 반죽한 흙덩이로 옹기 바닥을 만드는 밑장치기, 옹기의 벽을 만드는 가래쌓기를 한 후 일정하게 두드리는 타림과 수레질을 반복하여 옹기를 만들어 낸다.

2 부엽토(숲속의 낙엽 썩은 흙)와 소나무 낙엽들을 태운 자연 재와 약토를 혼합하여 발효시킨 잿물을 입혀서 건조한다. 낙엽 썩은 검은 흙토와 소나무 태운 재를 1:1.2 비율로 섞은 뒤 이 재료를 물에 섞어 체에 걸러내 가라앉히면 잿물 유약을 얻을 수 있다.

3 가마재임(쌓고) 후 가마 입구를 흙으로 반죽하여 막은 후 피움불, 중불, 큰 불로 화력을 조절하면서 18시간 1200도 열로 구워낸다.

4 다 만들어진 전통옹기는 대부분 표면이 거칠다. 불을 직접 받는 부분은 더 윤기가 난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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