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납량특집처럼 상영된 영화 ‘곡성’을 기억한다. 정신줄을 오싹하게 만드는 귀신의 이야기는 여름철의 단골손님이다.

동양에서는 귀신을 부르는 무당 혹은 박수의 이야기가 많다. 서양에서는 퇴마사(Exorcist)의 이야기기 주를 이룬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신이 존재한다는, 또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식의 반증이 아닐까. 세계 어디에서나 홍수 설화가 등장하는 것처럼, 전국 여러 지역에서 채집되는 1백여 종에 가까운 ‘바리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바리공주는 ‘칠공주’ 혹은 ‘바리데기’ 등으로 구전되어왔다. 바리의 역할은 일단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무녀로서의 역할이다. 두 번째는 지극한 효성의 심벌 또는 화신(化身)이라 볼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버려진 바리공주가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 생명수와 꽃을 구해다가 아버지를 살린다는 이야기. 해피엔딩이다.

바리데기는 그렇게 우리나라 무녀(무당)의 원조 중 하나의 이미지가 됐다. 그의 일곱 명의 아이들도 구천을 다스리는 10대왕(칠성신)이 됐으니 무속에서 ‘최고의 권위자’는 바리공주라 해도 되겠다.

바리데기 신화는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금세기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구전문학은 물론 동화, 영화, 음악, 무용 등 대부분의 장르에서 바리공주의 이야기는 재현되고 있다. 특히 상당수 무당들은 ‘바리할미’를 자신들의 무조신(巫祖神)으로 밝히며 갖가지 꽃으로 장식하며 숭배하고 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란 말이 있다. 버려진 천덕꾸러기가 곱게 자란 아이들을 제치고 최고가 되는 일, 그야말로 서민의 애환을 툭툭 털어주는 가슴 시원한 영웅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현대 예술에서도 바리이야기는 계속 재창조되고 있다. 각자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은 바리데기, 나도 한번쯤 버려질 운명이었다는 자조를 섞는다.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무속과 무당

음악과 무용, 공예품을 집대성한 굿판

무속(巫俗)의 굿판, 신을 기쁘게 하는 데는 먼저 음악이 나선다. 북과 꽹과리, 방울, 자바라 등으로 구성된 악기가 등장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전문악사까지,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악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무속음악에 뿌리를 둔 즉흥 기악곡인 시나위는 우리 음악의 한 뿌리고 줄기다.

시나위에서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피리, 대금 등의 악기가 등장하며 자유롭게 연주하지만 불협화음이 없다. 이외에도 무속음악은 불교음악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서사민요로 상여소리에서 발전한 ‘회심곡’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무구 및 공예품이다. 신발이나 칼, 작두, 부채, 방울 등의 무구(巫具)와 종이꽃을 비롯한 각종 장식품이 있다. 특히 종이공예는 예술의 경지를 넘나든다. 우리나라 종교의례에서 제단을 장식하는 지화(紙花)는 무속의 굿에서 비롯됐다. 무속을 대표하는 꽃공예, 지화는 죽은 자의 넋과 신의 매개체로서 의례 공간을 신성하게 만든다. 조선시대에는 종이의 발달과 더불어 궁중 채화(彩花), 탱화 등으로 발전했다. 이후 지공예(紙工藝)는 서민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게 됐다.

세 번째는 춤(무용)이다. 음악과 무구로 무장한 무당이 등장한다. 강신과 접신, 넋두리, 씻김굿 등으로 한판 굿판을 벌인다. 무당은 방울을 울리며 펄쩍펄쩍 뛰거나 작두를 탄다. 이러한 무당의 춤판이 현대 민속무용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살풀이춤이다. 한국 민속무용의 대표정신은 정중동(靜中動)이며 하늘보다 땅에 충실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신명에 따른 자유로운 춤이다. 무당의 춤은 나중에 기방(妓房)으로 들어가 다양한 기생춤으로 새 틀을 짓는다.

‘절대 현혹되지 말라’ 영화 곡성(哭聲)

처음 ‘바리데기’ 설화를 언급했듯이 우리 무속은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로 꽃을 피웠다. 주변을 살펴보면 무엇하나도 무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금기시하는 많은 것들을 그 속에 감추고 있지 않은가.

영화 곡성(哭聲)은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체적으로 무당의 주술행위를 미신(迷信)이라 터부시하면서 또 쉽게 현혹되기도 한다. 어쨌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귀신의 존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무당의 주술행위는 대체적으로 대중심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영화 곡성에서는 이 대중심리가 영화 전반을 이끌어간다.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 이르면 알지 못할 신에게 기도를 올리기도 하고, 무당을 찾아 굿을 올린다. 그렇게 미끼를 물었다면 이미 나는 내가 아닐 수 있다. 불행은 불행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

그런데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무당을 찾아 효험을 봤다는 사람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행복해졌다는 사람은?…. 어찌됐건 현대인을 지배하는 것은 탈 무당, 탈 무속이 아닐까 한다. 문학작품에도 귀신과 무당의 이야기는 수없이 등장하지만 귀신과의 흥정에서 행복해진 이야기는 현실에 없다. 다만 순간의 만족, 갈증의 해소 같은 것이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주술행위는 끝없이 이어진다는….

세계의 영화사, TV드라마의 단골손님도 귀신(악령)이다. 우리나라에도 고조선의 단군신화를 비롯해 신라, 백제 등의 건국신화가 있다. 그것은 모두 처음을 알 수 없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시작을 정당화하는 주술적인 방법이었다. 그러한 일화가 문학이 됐고 노래가 됐으며 춤과 음악이 됐다. 겨레마다 다른 신화와 생각을 갖게 한 인류학의 다이내미즘(동력 動力)일 터다.

종합행위예술로써의 굿

현대의 굿은 무당의 역할보다 전통과 민속이 융·복합된 양상이다. 세시풍속에도 굿의 요소가 발전하여 다양한 형태의 민속공연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무당의 역할이 더욱 폭넓게 발전하여 문학적 요소와 음악, 무용적인 요소들이 대중적인 가무와 가락으로 굿판을 펼친다. 대표적인 예로 처용가, 만파식적, 화랑전 등이다.

현대판 처용무를 보면 대금과 장구, 민요가 모두 복합되어 대중을 사로잡는다. 굿이 대중예술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TV프로그램에서도 ‘굿 보러 가세’, ‘명인명창과 어울림 굿 한마당’ 등, 예능적인 굿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삼한시대 제천행사로부터 이어져온 굿을 이제는 굿+예술 즉, ‘종합 행위예술(행동예술)’이라고 정리해 본다. 한국형의 집단가무, 굿판은 분명 종합예술이다. 그렇게 보면 멀지 않는 과거에 남사당이 있었다. 꼭두쇠가 외줄을 타고 삐리들이 대중을 향해 헤픈 웃음을 날렸다. 또한 우리 농악에도 당산굿, 지신밟기, 걸립굿, 판굿 등으로 발전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생활, 문화의 곳곳에서도 숨은 무속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지방의 굿을 보면 사람살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꼭두각시놀음, 춘향전, 심청전 등을 살펴보아도 예술적 측면에서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백의민족과 근원을 함께 하는 굿, 과거를 넘어 현재에도 인간의 길흉화복과 신명의 근원이 되고 있다. 시대마다 굿은 최첨단의 의상, 음식, 음악, 무용, 공예 등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원천으로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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