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사상을 이해해야 되고, 또 그 나라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그 나라의 종교를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고대로부터 한국의 사상체계는 고조선 사회로부터 삼국시대의 초기에 이르기까지는 고대신교(古代神敎)로서의 무(巫)가 신봉되었다. 그 기반 위에 불교, 유교, 도교가 들어와 이 땅에 정착하게 되었고, 조선조 중엽 이후에는 서학(西學)의 도입과 함께 천주교가 들어왔고 곧 이어 개신교도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 역사의 흐름을 볼 때 종교 사이의 갈등이 서양처럼 엄청난 피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조선조에 들어서면서 유교의 성리학이 정치이념으로 대두되면서 무, 불교, 도교는 갖은 억압을 감내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굿’은 巫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신에게 기원하는 것

조선의 양반 관료들은 巫들의 행위를 혹세무민이요, 음사(淫祀)라 하여 탄압하였고 마침내 무(巫)는 사회에서 천시 받고 격리된 채 신앙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일제는 巫가 우리 민족 문화의 뿌리가 됨을 알아 그 말살을 획책하였고, 巫를 부정적인 신앙형태로 왜곡하였다. 해방 후 기독교와 서양식 안목에 의하여 巫는 미신 내지 비합리적 귀신신앙으로서 근대화를 막는 대상으로 지목되어 성토되기에 이르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巫신앙은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내려오면서 그 나름의 고유한 체계를 가진 민중의 종교로서 한국인의 삶 속에 광범위하고도 뿌리 깊은 영향을 미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그러한 요인 중의 하나는 우리 조상들이 천사상(天思想)에 입각한 동양적 자연합일 사상을 믿었던데 기인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샤머니즘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巫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대개 현세에서의 최대한의 행복을 기원하고 추구하고자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행하여졌던 ‘굿’을 통하여 입증할 수 있다.

‘굿’이란 巫가 인간의 길흉화복을 신에게 기원할 목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춤과 노래와 의식절차를 통해 행하는 제사의식을 말한다. 보통 ‘굿’이라 하면 제사의식에서 무(巫)의 춤과 노래가 수반되는 큰 규모의 제의(祭儀)를 가리키는 말이고, 이 보다 작은 규모의 제의는 ‘치성’, ‘비손’, ‘손비빔’ 등으로 부른다.

‘굿’은 개인이나 마을이나 간에 巫를 사제로 하여 베풀어진다. 굿에서는 조상과 신령들이 巫에게 내려[降神] 인간의 문제를 풀어주고 덕담이 진행된다. 즉 巫의 중재로 인간과 신령이 만나 인간의 문제가 풀어지는 것이다. 신령을 모시기 위해 술과 음식이 차려지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노래와 춤을 추어 신령을 청하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신령에게 고(告)하고 덕담을 들은 후 신령들을 다시 환대하여 돌려보낸다.

지금까지 행하여지고 있는 ‘굿’은 巫에 따라,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행하여지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가족의 안녕과 행운을 빌기 위하여 하는 생전제의와 사후제의로서의 가제(家祭), 마을에서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洞神)에게 해가 바뀌었을 때마다 봄, 가을에 날을 잡아 마을의 액(厄)을 막고 풍년이나 풍어를 비는 동제(洞祭), 그리고 巫 자신의 영험을 주기적으로 재생시키는 무신제(巫神祭)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많이, 가장 자주 행하여졌던 굿으로는 집안에서 행하여졌던 가제(家祭)를 들 수 있다. 가제(家祭)는 재수굿, 우환굿, 사령굿 등으로 구분이 된다. 집안에 재물의 운수가 늘 뒤따르게 되기를 기원하는 재수굿과, 집안에 환자가 발생했을 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행한 우환굿, 그리고 죽은 사람이 발생했을 때 죽은 사람의 영혼을 무사히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巫에게 의뢰하여 행하는 사령굿이 있다.

굿에도 짜임새가 있다

굿판이 벌어졌다 하면 온 동네는 들뜬 분위기에 싸이게 된다. 풍악이 울리고 음식이 푸짐하게 장만될 뿐만 아니라 많은 볼거리들이 행하여졌다. 이렇게 신명나게 행하여지는 굿도 일정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먼저 준비과정의 제차로서 부정한 것이나 잡귀 잡신을 물리치고 제의 장소를 깨끗이 정화하는 부분과, 다음으로 모든 신령과 조상을 청하여 춤과 노래, 재담과 음악,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면서 신들을 모시고 노는 부분과, 그리고 뒷전이라는 종결과정으로서 초대되었던 모든 신들을 돌려보내고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짜여져 있다.

이른바 청신(請神, 신을 모심), 오신(娛神, 신을 즐겁게 함), 송신(送神, 신 보냄)의 구조가 그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먼저 굿을 시작하기 전에 주변 장소를 깨끗이 청소한 다음 신들이 오기를 기원하고, 차려진 음식 앞에서 춤과 음악으로 초대된 신들을 한없이 즐겁게 한 후 살아있는 사람들의 바라는 목적을 알린 다음, 신령이 巫에게 내리면 巫는 공수(신의 말이나 뜻)를 내려 신의 뜻을 전달하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감사의 정으로 초대되었던 모든 신들을 환대하며 돌려보내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굿의 원리는 무엇인가?

우리 조상들은 어딘지 모르게 집안에 걱정과 근심이 끼거나 좋지 않은 기운이 감돌 때, 또는 마을에 흉년이 들거나 변고가 발생했을 때, 즉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유기적인 관계에서 벗어난 부조화의 상태가 되었을 때 굿을 행하였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 조상들은 현실의 결핍과 불만으로부터 그 반대의 상황 곧 충족과 만족을 얻기 위하여 굿을 하였고, 굿을 하면 조화의 결과가 온다고 믿었다.

굿의 원리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늘은 영적 세계를, 땅은 자연환경을 뜻한다. 무(巫)는 이들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어 떼어내려야 뗄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있다. 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인간의 조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환경에 고마움을 느끼고 조상들에게 삶을 감사드리며, 신령에게 떳떳하고 겸허한 자세를 취하였다. 굿의 원리는 인간사회를 포함하여 이 모든 것들과 고루 어우러지는 조화를 회복하려는 태도인 것이다.

현재의 결핍에서 오는 불행을 그 반대의 충족된 행복한 상황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은 불행과 행복을 바꾸어 조화시키고 또 순환시키려는 인간의 생존적 의지에서이다. 굿의 비결은 바로 이 조화와 순환의 힘이 굿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는 믿음 그 자체에 있다. 이러한 ‘믿는다.’는 마음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데에 굿의 신비력이 있고 그 신비력은 또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굿이라는 종교적 의식이 있고, 그 굿을 주관하는 무(巫)가 있어서 사람들이 신비력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 스스로 굿을 하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대동문화 97호 [2016 11,12월호]

김영민 우석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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