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도 꽃은 피듯이 촛불의 강이 흐르는 골목에도 문화의 꽃은 피어났다. 요사이 무엇을 해도 공연히 미안한 감을 떨칠 수가 없다. 밥을 한 그릇 배불리 먹고 나오다가도 시국을 생각하면 뭔가 죄를 지은 기분이 든다. 이런 현상도 이 시대의 문화가 아닐는지.

한국에서 맛고을하면 전라도 광주가 떠오른다. 광주는 5가지의 음식을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 첫 번째가 무등산 보리밥이다. 그리고 한정식, 송정 떡갈비, 오리탕, 남도 김치다. 이름하여 광주 오미(五味)다.

그 중에서도 무등산 보리밥은 다른 지역과 차별성을 갖는다. 우선 열무쌈이다. 보리밥을 열무잎에 싸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별미다. 열무는 버릴 것이 없지만 특히 잎에는 사포닌성분을 비롯해 비타민과 클로로필까지 들어있어 보리밥과 환상의 궁합이다. 또 광주 보리밥에는 각종 나물과 한정식 수준의 반찬까지 제공되기 때문에 된장국에 비벼먹는 보리밥과는 당연히 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가난해서 먹던 보리밥이 아니라 현대인의 건강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말이다.

럭셔리한 카페 인테리어 지산유원지의 향수와 결합

광주 보리밥거리는 증심사 지구와 지산유원지지구가 대표적이다. 증심사 지구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심에서 가까운 지산유원지지구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젊은 카페가 늘어나면서 야경을 즐기는 아베크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신장 오픈하는 카페의 럭셔리한 인테리어와 지산유원지의 향수가 결합하여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시내에서 매우 가깝다는 장점도 있어 기왕에 커피한잔을 마셔도 분위기 좋은 곳을 찾는 이유도 있다.

광주 시내의 야경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저녁이면 서해안에 닿을 듯 지평선에는 온통 불빛의 스카이라인이 형성된다. 날이 좋으면 별빛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우주공간에 떠있는 환상을 본다. 사람들이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찍이 서정주 시인이 노래한 ‘무등을 보며’의 한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가난, 그것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은 떠났어도 시인이 남긴 시 한 구절에 불끈 용기가 솟구친다. 아마도 이곳에 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러할 것이다. 도심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자유로움, 해방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 그 숨 막히게 거대했던 도시가 작은 불빛으로 반짝인다.

젊은이들의 해방구, 내로라하는 유명카페 레스토랑 줄줄이 입주

무등산보리밥 지산유원지지구에서 (사)지산유원지상인회를 이끌고 있는 김승재 회장을 만났다. 1976년도부터 지산유원지지구에서 상인들과 함께 활동하다 78년에는 정식 번영회를 발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2012년에는 조직을 사단법인으로 확장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1970년대, 1980년대가 벌써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지난 시간만큼 단단하게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 광주 시민이라면 한번쯤 지산유원지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라는 김승재 회장의 말을 ‘한번 추억은 영원한 추억’이라고 받아들인다. 닭백숙, 보리밥, 벚꽃 구경 등 지산유원지는 한때 광주시민의 해방구였다.

지산동 보리밥 골목으로 많이 알려진 지산유원지지구는 토종 커피브랜드 커복(COBOC)를 비롯하여 씨에떼 벨리, 불사리노 등 대형카페 레스토랑이 속속 문을 열면서 젊은이들의 문화를 이끌었다. 보리밥 골목과 카페의 조화는 신구의 조화, 세대 간의 소통처럼 융합이 됐다. 젊은이와 실버문화가 어우러지면서 여러 모임과 전시회 등이 줄을 잇게 됐다.

광주를 한 바퀴 도는 외곽 순환도로에서 지산동으로 들어오는 길이 생긴다고 한다. 광주 동구와 지산동의 오랜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길은 생명과도 같다. 지산동 유원지상인회는 보다 좋은 환경과 맛으로 보답하겠다는 결심이다. 지산동 지역에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대중교통의 불편이었다. 손님들은 자가용으로 오지만 직원들이나 주민들은 부족한 대중교통으로 인하여 인력난에 허덕이기도 했다.

무등산 보리밥, 고향에 대한 향수이자 어머니의 마음

무등산을 오르는 옛길 1구간의 시작점. 통일신라 때부터 군사들이 주둔하던 ‘지막부락’이 지금의 지산동이니 오랜 역사의 마을이다. 무진고성의 터가 남아있는 지산동 일대는 예로부터 보리로 꽁보리밥을 만들어 무등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고추장을 넣고 비벼 열무잎에 쌈 싸 먹었다.

남도의 후덕한 인심을 대표하는 무등산 보리밥은 ‘향로봉’, ‘쉬어가는 보리밥’, ‘온천 보리밥’, ‘화덕보리생선’ 등으로 이어져왔다. 앞으로 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하며 음식문화타운으로 적극 활용해 가겠다는 ‘무등산 보리밥 우수 외식업지구’. 현재 43개의 회원업체에서 96명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보리의 효능을 이용한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젊은 층의 입맛에도 맞춰나가고 있었다.

옛추억을 되살리며 보리밥을 비벼 먹는다. 보리 알갱이가 탱글탱글하다. 어머니생각이 나고 고향생각이 났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떠올랐다. ‘옛것을 지켜 새롭게 한다’는. 지산동은 우리 시대의 문화와 서구의 문화가 한축으로 기울지 않고 아름답게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의 외진 마을이 아니라 가까운 고향마을처럼 느껴졌다.

대동문화 98호 [2017 1,2월호]

김을현 기자  somchan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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