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작은 뜨락에는 목단이 횃불처럼 붉게 피어오르던 때가 있었다. 뒤꼍에는 홍시가 여인의 붉은 볼처럼 익어가던 때가 있었다. 발자취를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면, 무량사 초입 대폿집에 앉아 동치미 한 사발로 소주 한 박스를 다 비우던 그 시절도 있었다. 말없이 포효하는 대천 바닷가 앞에 서서 눈시울을 적시고, 운명을 촛불처럼 태우던 그런 때도 있었다.

이제 그 자리에는 무수한 궤적(軌跡)의 현상들이 사라졌다. 관촌의 솔수펑이에는 터를 다듬어 집도 절도 아닌 요상한 집이 들어서고, 소나무의 밑동은 베어진 채로 쓰러져 있고, 마을안내비의 비석은 고개를 숙이듯 기울어져 있으며, 왕소나무는 흔적조차 없다.

어느덧, 明川 이문구 소설가가 타계(他界)한지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변하지 않은 것 하나가 있다면 이문구 소설가와 함께 한 그 때의 그리움 일 것이다. 그가 1989년도 척박한 보령지역에 <한내문학> 동인지를 발족 하고부터 현재 보령지역에는 파생된 서너 개의 문학단체가 존재한다. <보령문학>, <보령에세이아카데미> 등….

‘작가와문학’, 로컬 문학인의 꿈

나는 1997년도 1월부터 한내문학에 몸을 담고 시와 소설을 써왔다. 이문구 소설가를 중심으로 한 <한내문학> 동인지가 지역에서의 문학적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바뀌고 구심점이 사라지다 보니 보령의 로컬문학은 쇄락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에는 배타주의와 자만심, 그리고 폐쇄성을 들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역 출신의 작가는 이문희, 최상규, 최진우, 이문구, 임영조, 홍완기, 김성동, 이만희, 이혜경 등…, 많은 작가를 배출한 고장이기도 하다. 풀이 있어야 꽃이 더 돋보인다는 말이 있듯 그렇게 치부해 버리면 그만일지 모른다. 보령지역이 훌륭한 문인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컬문학의 쇄락은…. 그러나 이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 혹은 지역의 문제, 통시적으로 한 나라의 문제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문구 소설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 중 그 하나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나는 로컬문학의 문제점에 대해 지대하게 인식하고, 그 문제에 대해 개선 방안을 제시하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고향인 보령에서 풀뿌리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단지 고착화되어가는 로컬문학의 현안을 짚어가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미비한 힘이나마 응고된 문제성에 자극을 보태주기 위함이다. 시행착오도 물론 있다. 이 진정성의 고지식함이 이문구 소설가의 풍채에서 나오는 그 오묘한 느낌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혼자만의 느낌이지만 말이다.

나의 열정과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

서울에서 문학 활동하면 나는 많은 인과관계를 통한 성공과 도움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2009년 서울 인사동의 <시인>이란 주점에서 몇몇 작가와 ‘작가와문학’ 동인지를 결성하였고 대부분 수도권의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근거지를 지방에 두고 싶었다. 그 이듬해 창간호부터 보령에 근거지로 두고 전국단위로 활동했으며, 동인지의 한계성과 문제점을 <한내문학>과 <보령문학>과 그 이외의 문학단체를 통해 알고 있는 바, 그래서 ‘작가와문학’을 문학잡지로 전환하여 현재까지 이끌어 오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과 선후배들과 규합하여 2015년 ‘경기문창’ 창간호를 발간하게 되었다. 나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일련의 일이 나에게는 문학적 열정이다. 인문학의 새로운 영역의 확장과 일상의 철학과 다양한 시각으로 문학의 폭을 넓혀 가려는 나의 열정이다. 그리고 로컬문학이 나아 갈 길을 제시하려고 현재도 노력하는 것이 나의 열정이다.

무엇을 어떻게 제시하는가, 그런 문제도 나의 시행착오 열정 속에 녹아들어 있다. 단지 열정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 열정이 현재의 사람들에게, 후대에게 좋은 환경으로 전달되어지면 미약하나마 나의 열정과 수고가 헛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무엇을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열정은 나의 것만이 아니다. 진정성 있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기에 아름다운 문화의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곧 이 나라와 경쟁하는 세계의 국가와도 견줄 수 있는 문화의 힘이 될 것이다.

비록 보령이란 지방에서 인문학과 문학 발전에 이바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미비할 뿐이다. 나는 왕국을 건설하려는 것이 아닌 그곳으로 향하는 계단의 디딤돌 하나가 되기 위한 작은 헌신 일 뿐이다.

나는 1인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다. 비록 작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수필집과 소설집, 시집과 동인지 발간을 한 ‘작가와문학’ 발행인이다. 이러한 나의 결실들이 로컬문학의 많은 작가들에게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 질투와 시기심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한걸음씩 떼다보면 폐쇄성과 배척의 정서가 육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문학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함께 걸어 나가는 것을 로컬문학이 지향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대동문화 98호 [2017 1,2월호]

김나인은 충남 보령 출생으로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2004년 ‘순수문학’에 「배꼽아래」가 당선됐다. 소설집 『배꼽아래』, 『파리지옥』, 『개미지옥』, 『나체주의자의 음란소설』, 『정육점의 비밀』, 『꼬마철학자의 유소년기』, 『다수의 그림자들』이 있다. 시집 『술 취한 밤은 모슬포로 향하고 있다』, 『그 잔인한 사랑, 그 속성에 대하여 나는 죽도록 사랑한다.』, 『각시붓꽃 목에 낮달이 뜨다』, 『청춘아, 고상한 잎새여, 잘가라』가 있다. 제39회 경기학술문예 소설부문 우수상, 한국예술작가상 시부문 수상했다.

김나인 소설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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