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원한 소리꾼, 이 시대의 국악계 프리마돈나.

60년 가까이 소리인생을 걷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창극인, 안숙선(68) 명창을 만났다. 그녀는 전남 고흥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안숙선의 국악콘서트 무대를 수놓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 관객들을 포옹했다.

작고 동그란 하얀 얼굴에 평상시 소녀처럼 수줍음이 많지만, 눈웃음이 귀여운 명창 안숙선은 무대에 올라서면 180도 바뀐다. 그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냘픈 소리는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준다. 자그마한 체구에 어디서 그런 정교하고 강렬한 소리가 뿜어져 나올까 궁금증이 샘솟는다.

2015 파리가을축제 초청작이기도 했던 ‘토선생 용궁가다’라는 작품으로 국악계의 아이돌 소리꾼 남상일과 함께 무대 리허설이 한창이다. 이 공연은 수궁가를 변형시켜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소리를 주고받는 입체 창으로 꾸며졌다.

이미 ‘안숙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 예견되어 있어 미리 도착해 명품공연을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의 발걸음은 설레 보인다. 고흥에서는 첫 공연인 만큼 관객들도 안숙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대감에 가득 찼다.

국악인 집안으로 타고난 재능

“언젠가는 내 고향 남원에 내려가 그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난 5년간 남원 춘향제 위원장을 맡았던 그녀는 소리의 고장 전라도에 애착이 남다른 듯하다. 춘향제를 이끌어오면서 여러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소리를 하는 사람은 소리만 해야지”라며 이제는 서서히 무거운 직책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1949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난 안숙선은 9살의 나이부터 국악과 가깝게 지냈다. 국악인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어린 나이부터 소리의 기초를 배우고, 전국의 각종 명창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동네사람들에게는 재주 많은 꼬마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의 타고난 재능은 집안내력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금 산조 무형 문화재인 강백천씨가 외삼촌이며, 동편제 판소리 인간문화재 강도근이 외당숙이 된다. 또 그녀의 이모는 가야금 명인인 강순영, 태평무 인간문화재 강선영이다.

우리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판소리를 선택했다. 만정 김소희에게 흥부가, 춘향가를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판소리 익혀나갔다. 박봉술에게 적벽가, 정광수에게 수궁가, 성우향에게 심청가를 사사받았다.

주로 소리에 비중을 두고 활동하고 있지만 안숙선은 가야금 병창으로 인간문화재가 됐다. 박귀희로부터 가야금 병창을 사사받고, 40중반의 젊은 나이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인간문화재 반열에 오르게 됐다.

귀 명창이 사라져가는 현실은 너무 안타까워

요즘 전통 국악의 대중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퓨전국악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안숙선은 “소리는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고, 감동을 주지 못하죠, 대중가요는 3~4분으로 짤막하게 이별, 사랑, 그리움을 다 전할 수 있지만, 판소리는 앞, 뒤로 전부 알아야 해서 옛날처럼 관객 중에 ‘좋다! 그렇지~!’라고 말하며 추임새를 넣어주던 귀명창이 사라지고 있어요.”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예전처럼 쑥대머리의 한 대목을 들어도 ‘얼쑤!’했던 사람이 사라지고, 장시간동안 이어지는 판소리의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도 사라지고 있다.

귀 명창 관객이 많았던 시절에는 안숙선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공연장 입구 멀리부터 하얀 물결이 넘실거렸다. 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안숙선 명창은 “손자들에게도 ‘꽃 사시오~ 꽃을 사’를 불러주며 가르쳤지만,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우겠다며 민요나 소리는 안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전통음악은 문학성, 예술성이 높은데 어린 시절에도 리듬, 민요를 듣고 배웠으면 합니다. 소리를 하든, 전통 악기를 하던 하나쯤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라고 말한다.

현재 안숙선 명창의 뒤를 이을 정예진 씨가 중요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병창 준 후보 전수조교로 가르침을 받고 있다.

세계로 뻗어나가 우리 판소리 알려

예부터 판소리는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의 아픔을 내용으로 담았다. 안 명창은 “예술은 예술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속에는 절절한 것들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죠. 판소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서도 이러한 것들이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고 말한다.

보통 판소리 다섯마당은 소리꾼의 진행방식에 따라 한마당에 최장 7~8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된다. 그녀는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완창 했다.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완창 한다고 해도 꼭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안숙선은 달랐다. 그녀의 소리는 막힘없이 구구절절 가슴에 혼을 담는다.

엄청난 분량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거의 한문으로 이루어진 내용을 암기해서 주저하지 않고 ‘오토매틱’, 즉 자동으로 줄줄 나와야 하니 참으로 힘들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유구한 세월 속에 안 명창은 이젠 경지에 이르렀다.

별도로 건강관리를 위해 채식 위주의 식사와 ‘걷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리스 비극을 창극으로 다룬 ‘트로이의 여인들’의 작창을 했다. 판소리로 창작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꽤나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국립극장에서 세계 초연했고, 2017년 싱가포르 예술축제의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그렇게 명창 안숙선의 명성은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 우리의 소리를 알리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한국공연 최초로 에든버러페스티벌에 초청돼 ‘춘향가’를 완창하기도 했다.

국악계의 프리마돈나라는 타이틀보다 ‘안 명창’이라고 부르는 게 더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는 그녀, 안숙선 명창은 살아있는 동안 소리의 끝은 어딘지 끊임없이 소리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안 명창의 소리로 귀를 호강시켜 ‘막귀’였던 자신이 잠시 부끄러워지는 하루다.

대동문화 98호 [2017 1,2월호]

김다이 기자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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