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국사교과서’는 왜 민족이라는 용어를 지웠을까?

전 세계에서 한국처럼 역사왜곡 시비에 시달리는 나라는 없다. 왜 그럴까? 역사를 미래로 가는 나침반이나 잘못된 현실을 반성하는 거울로 보지 않고, 현재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국정국사교과서도 마찬가지다.

국정교과서는 먼저 ‘민족’이라는 용어를 빼버렸다. 이는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을 건국이라고 표기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직전의 검인정교과서는 물론 2002년에 만든 󰡔국정교과서󰡕도 ‘한국사의 올바른 이해’라는 서장에 ‘민족문화의 이해’란 항목을 만들어 “우리 문화는 다른 어느 민족의 그것과도 구별되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 온 문화이다.”라고 민족의 의미에 대해서 서술했다.

1948년을 건국으로 서술하면서 ‘민족’이란 말을 삭제한 것은 통일의 당위성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었고, 같은 해 9월 9일 북한이 건국되다. ‘민족’이란 동질성이 없다면 통일의 당위성은 사라진다. 각각 1948년에 건국된 두 나라에 ‘민족’이란 동질성이 있으면 통일해야 할 당위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왜곡

한국사회의 잘못된 부분의 뿌리를 캐다보면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로 소급된다. 역사왜곡도 마찬가지다. 조선총독부는 총독 직속으로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역사왜곡에 나섰다. 그전에도 조선총독부는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만들어 한국사 왜곡에 나섰다. 그런데 일제의 한국사 왜곡은 시기에 국한하면 주로 고대사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민족의 뿌리에 대한 개념부터 흔들어놓아야 항일독립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의 역사왜곡은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한국사의 시간을 축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을 축소하는 것이다. 단군을 부인하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인하는 것으로 한국사의 시간을 축소하고, 한국사의 대륙성과 해양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한국사의 공간을 반도사로 축소시켰다.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 축소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의 서술로 이어진다. 첫째 한사군의 위치를 한강 이북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라고 하는데, 『삼국사기』를 가짜로 모는 이유는 한반도 남부에 고대판 조선총독부인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기 위한 것이다.

『삼국사기』를 사실로 인정하면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없기에 『삼국사기』를 가짜로 몬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한국사의 시간과 공간 축소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단군조선은 부인하고 위만조선만 인정해서 한국사의 시간을 축소하고, ‘조선반도사’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사의 대륙과 해양을 삭제해서 반도사로 한국사의 공간을 축소한 것이다.

한사군 한반도설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문제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이런 역사왜곡이 현재까지도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정설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광복 후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친일청산은커녕 친일매국노들을 중용해 이들이 거꾸로 독립 운동가들을 청산하게 만든 데 그 뿌리가 있다. 광복과 동시에 청산되었어야 할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역사학계를 완전히 장악해서 독립 운동가들의 역사학을 내 몰고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그대로 존속시켰다. 이에 조금이라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학계 밖으로 내쫓고, ‘재야’가 하는 딱지를 붙여 격하시켰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하등의 학문적 타당성도 없다는 사실이다. ‘한사군 한반도설’은 하등의 사료적 근거가 없다. 『사기』·『한서』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고대 역사서들과 그 주석들은 한사군의 중심인 낙랑군의 위치를 지금의 하북성 일대라고 비정하고 있다. 평양이라고 비정하는 중국 고대사료는 없다. 다른 나라 같으면 폐기된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한사군=한반도’라고 우길 수밖에 없다. 학문이 아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몰려면 다른 사료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 「백제본기」 다루왕 2년(서기 29)조에는 “봄 정월에 다루왕이 시조 동명왕의 사당에 배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가짜로 몰려면 다루왕이 봄 정월에 시조 동명왕의 사당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는 현장부재 증명을 해야 한다. 『삼국사기』가 아닌 다른 역사사료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두 사료를 교차검증해 보니 『삼국사기』가 틀렸으니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역사학적 방법론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일체 생략하고 무조건 믿을 수 없다고 우기는 것이다. 식민사학, 즉 조선총독부 사학은 학문이 아니라 정치선전술이기 때문이다. 현재 공개된 국정국사교과서는 고려의 강역에서 함경남도 함흥 이남은 삭제했다. 윤관이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을 세운 선춘령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인데도 이를 무시했다.

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께서 조선총독부 사관이 아직도 사실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아직 일제에서 해방되었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대동문화 98호 [2017 1,2월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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