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에게 상식인 것처럼 알려진 십만양병설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이이가 임란이 일어나기 십년 전에 선조에게 10만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선조는 아무 대답이 없었고 여기에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남인의 영수였던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한 엄중한 책임을 져야하는 역사적 죄인이 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여기서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임란의 책임을 남인에게 몰아붙이면서 정권을 담당했던 서인들은 책임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줄 목적으로 이이의 제자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어떻게 이런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인정받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십만양병설을 지어낸 최초 유포자는 김장생(金長生)

십만양병설은 이율곡의 제자인 김장생이 찬술한 「율곡행장」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그런데 정작 이율곡이 쓴 『율곡전서』중의 수많은 상소와 차자 어디에도 십만양병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되어 있지 않다. 또 당대의 중요한 1차 사료인 『선조실록』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김장생의 「율곡행장」에서 관련 부분을 보자.

일찍이 경연에서(嘗於筵中) 청하기를 “10만의 군병을 미리 길러 완급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10년을 지나지 않아서 장차 토붕와해(土崩瓦解)의 화(禍)가 있을 것입니다.”하니 유(柳)정승 성룡이 말하기를 “사변이 없는데도 군병을 기르는 것은 화근을 기르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임진왜란이 닥쳐온 후에 유정승이 조정에서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제 와서 보니 이문정(李文靖)은 참으로 성인이다...

위의 글에서 “일찍이 경연에서(嘗於筵中)”라고 쓴 부분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김장생은 십만양병이라는 중대한 발언을 이이가 했다고 하면서도 언제 어디에서 했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사안의 중대성에 미루어 볼 때 이렇게 애매모호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선조실록』에는 십만양병에 대한 기록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만약 이이가 이런 중대한 발언을 했다면『선조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것은 조정에서 이이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고, 또 김장생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와 장소를 기록할 수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십만양병에 대한 실록의 기록은『선조실록』에는 등장하지 않고『선조수정실록』의 기사 말미에 사관의 논평으로 나타나는데, 문제는『선조수정실록』은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 세력이 효종8년(1657)에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선조수정실록』에 사관의 논평으로 “이이가 일찍이 경연에서 ‘미리 십만 군사를..유성룡이 극력 변론하였다.’”라고 운운한 부분은 김장생의 행장을 보고 썼다는 말이다.

십만양병설 조작을 다시 각색한 사람은 송시열(宋時烈)

김장생이 만들어낸 십만양병설을 정교하게 윤색한 사람은 김장생의 제자 송시열(1607~1689)이다. 그의 스승이 “일찍이 경연에서”라고 얼버무린 부분을 송시열은 그가 쓴「율곡연보」에서 “선조 16년(1583, 계미년) 4월”이라고 콕 집어서 못 박는다.「율곡연보」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계미년 4월 ...선생은 경연에서....임란이 일어나자 유성룡이 “이문성(李文成)은 진실로 성인이다(眞聖人也)” 하며 탄식하였다.

송시열은 여기서 두 가지를 덧붙여 각색한다. 하나는 자신의 스승은 알지 못했던 이이가 발언했던 날짜를 특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승이「율곡행장」에 “이문정(李文靖)”이라고 쓴 것을 “이문성(李文成)”으로 바꾼 것이다.

‘문성’은 이이가 죽은 뒤에 받은 시호다. 그런데 이이가 ‘문성’이라는 시호를 받은 것은 인조2년(1622)이다. 유성룡은 선조40년(1607)에 별세했다. 그러니까 유성룡이 죽은 지 17년이 지난 후에 이이에게 문성이라는 시호가 내려진 것이다. 따라서 “유성룡이 “이문성(李文成)은 진실로 성인이다(眞聖人也)” 하며 탄식하였다.”는 사실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십만양병설이 이이가 사망한 후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창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 후 조선후기 노론당과 이병도

그런데 ‘이문정’이 ‘이문성’으로 탈바꿈 되는 과정은 좀 더 복잡하다. 사실 송시열은「율곡연보」에서 ‘이문정’이라고 썼지 ‘이문성’이라고 쓰지는 않았다. 이것은 영조25년(1749)에 간행된『율곡전서』에도 모두 ‘이문성’이 아니라 ‘이문정’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송시열이 ‘이문성’이라고 썼다면 그보다 훨씬 후대에 발행된 책이 그것을 참고하여 언급해놓았을 것인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으니, 송시열이 애초에 자신의 글에 ‘이문성’이라고 쓰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문정’이 사라지고 ‘이문성’으로 조작된 것은 순조14년(1814)에 간행된『율곡전서』부터다. 이때는 서인의 계승 세력인 노론이 정치지배세력으로 일당독재를 확고히 했을 때였다. 노론은 일당독재가 확고히 되자 이문정을 이문성으로 고쳐 유성룡이 직접 “이문성은 참으로 성인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파시킨 것이다.

이러 과정을 거친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그 후 일제시대에 조선사편수회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일제 식민사학자의 길을 갔던 소위 한국 국사학의 태두라 불리는 두계(斗溪) 이병도(李丙燾)에 의해 거듭 사실로 규정되었다. 그 결과 십만양병설은 국사 교과서에 까지 실리게 되고 급기야 국민적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대동문화 98호 [2017 1,2월호]

김수지 조선사연구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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