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암서원의 왕세자교육

인문학 바람이 솔솔 불고 있다. 인문학의 바람이 언제부터 불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삶의 가치관에 대한 자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물질주의 만능과 고도화된 과학기술로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자, 잠시 경쟁적 삶에 쉼표를 찍고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행복한 길인가.” 하는 반성의 순간부터 인문학적 삶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다” 라면서 “인문학 없이는 나도 컴퓨터도 있을 수 없다” 고 인문학을 강조했다. 또한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스티브 잡스는 “문화 컨텐츠의 힘은 인문학에서 온다.”고 하면서 기업경영과 첨단과학에 인문학의 접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누구나 과학적인 삶보다는 정신적인 삶, 물질적인 삶보다 문화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인문학이란 삶을 충분히 느끼고 그 의미를 찾아보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과학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삶에 매몰되다보니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우리는 실존적 삶보다는 실용적 삶을 중요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산업사회 성장 동력이 실용주의였기 때문에 편리성과 실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왔다. 문제는 사람까지도 실용성의 잣대로 평가하고 판단했기에 필연적으로 인간성 파괴를 가져오게 되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잘사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없었다. 실존적 삶은 인간은 한번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나만 배부르게 살면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니까 이웃과 더불어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미 있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감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돋보이는 세상이다

한 때는 IQ 높은 사람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이 사회의 리더가 되어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는 것이 힘이 되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알고 싶은 것은 모두 컴퓨터 안에 있다. 안다고 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칸트가 말 했던 대로 “인간, 네가 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반문했던 것처럼, 인간은 때때로 미물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 지금은 EQ 높은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감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돋보이는 세상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새로운 하이브리드 생명체 아바타를 만들어낸 제임스 케머런, ‘반지의 제왕’ 작가 톨킨, ‘헤리포터’를 쓴 조엔.K. 롤링, 그 밖에 많은 만화가들과 영화감독과 가수, 배우들은 감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로 이 시대의 우상이 되고 있다.

감성과 상상력이 메마른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인갑답게 살기 위해서 이제는 인문학으로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이루고 과학문명과 교섭하고 접목시켜 인간중심의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과제이다.

지금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자기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문학이 새로운 희망이며 지역 발전에 큰 자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문화콘텐츠는 인문학의 기초 없이는 불가능하다. 서둘러 미술관. 문학관. 예술회관.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지자체에서는 문화원 등을 중심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지역사회에서도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희망적인 비전을 찾기 위해서다. 지역민의 문화 마인드 제고를 위해 여러 가지 교육. 문화. 예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 준공을 앞둔 광주로서는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 준비단계로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 착공과 전남문화예술재단. 광주문화재단의 설립을 계기로 우리 지역에서도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문화지원 사업과 문화예술행사 외에 인문학 포럼이 활발하다. 특히 광주 문화재단의 문화나무 상상강좌, 문화나무 가꾸기, 목요상설 무대 등 행사는 시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문화감식력을 높여주기 위해 마련된 문화나무 상상강좌는 매월 1회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 연중강좌를 실시했다.

대동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빛고을 시민문화대학 등도 눈길을 끄는 인문학 프로그램이다. 특히 우리 지역 역사. 문화. 예술의 소양함양을 위해 마련한 빛고을 시민문화대학은 전문가의 이론 강좌와 답사 전문가의 현장교육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효과가 크다.

광주 광산구가 고봉 기대승 철학을 통해 사림(士林)을 중심으로 한 이상적 도학정치와 현대정치의 접근을 모색하기 위해 매월마다 월봉서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살롱 드 월봉’도 호평을 받았다. 18세기 예술의 중심지역할을 했던 살롱 문화에서 착안했다는 이 강좌는 인문학과 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주고 500년 전 서원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해석 평가하고 있다.

장흥군이 전국에서 최초로 문학특구를 지정하여 장흥출신 문인들을 위해 생가를 복원하고 문학관을 건립하기로 했으며, 천관산 문예관에서의 문학 강좌나 전국문인대회 등 문학행사를 활발하게 열고 있는 것도 지자체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박물관에서 주관한 박물관 대학이나 전남대와 조선대에서 운영한 인문학강좌도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광주 남구청은 양림동 역사문화강좌를 토대로 양림동 문화마을 가꾸기를 이끌어냈다. 이야기 손님과 함께하는 증심사 풍경소리 음악회와 담양 죽녹원 콘서트 등도 인문학과 예술의 만남을 통해 감동을 이어주고 있다.

지역에서 대학의 역할이 크다.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대학에서의 시민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필요하다. 서울의 여러 대학이 매주 운영하고 있는 인문학 특강이나 희망독서 콘서트 등은 바람직한 활동이다.

특히 대학이나 문학단체의 독서 콘서트는 쉽게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독서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배양해준다. 독서를 통한 풍부한 지식과 감성이 인문학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책읽기 행사는 매우 중요하다.

지역 인문학의 기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재발견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해를 통해 자기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찾고 애향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은 바로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문학 강좌를 통한 우리 지역 역사와 문화 바로 알기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지역은 역사의 질곡 속에서 많은 피해를 당해왔다. 백제 멸망의 상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는 중앙과 멀리 떨어진 탓으로 탐관오리들의 핍탈이 극심해 생존을 위한 저항이 잦았다. 동학농민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5.18광주항쟁 등, 주권을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상처를 받았다.

이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민들의 역할과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가하면 저항과 투쟁의 역사 속에서 상처는 점액질 한(恨)이 되었고 해한(解恨)의 과정에서 고통과 상처가 문화 예술로 승화했다. 판소리를 중심으로한 우리 지역의 국악과 서화, 문학 등은 역사의 상처와 소외 속에서 피어난 꽃이다.

우리 지역이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호남학 진흥이다. 호남의 역사와 문학, 철학과 사상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호남학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야 말로 우리 지역 인문학의 최대 과제이다. 영남에서 영남학이 한국학의 본류임을 자처, 2001년 한국국학진흥원을 설립하는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매우 부럽고 안타깝다.

우리 지역에서는 호남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영남에 비해 호남은 대학의 역사학 관련학부 수가 영남의 3분의1 수준이다. 이제부터라도 지역의 전통과 정신이 녹아든 호남학을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그 성과를 지역의 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호남학 진흥 시책을 마련하여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인문학을 통해 호남정신의 뿌리와 정서적 원천을 찾는 일은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인문학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좌나, 답사, 콘서트에 누구나 부담 없이 즐겁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지역의 모든 문화공간을 활짝 열어 지속적인 인문학 행사가 열리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인문학이 꽃피우면 우리 삶이 그만큼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대동문화 68호 [2012년 1.2월호]

문순태 소설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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