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神話)의 나라, 그리스는 유럽의 남쪽 발칸 반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약 2000 여 개의 섬이 있습니다.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과 점점이 박혀있는 섬들, 이 섬들을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쪽빛 바다를 ‘지중해(地中海)’라고 부릅니다.

서양문명의 발원지를 상기시킬 때면 그리스의 수많은 섬들 중에서도 신화가 살아 숨 쉬는 ‘크레타섬’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크레타섬은 그리스에서 제일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다섯번째로 큰 섬입니다.

다양한 문화유적들이 남아 있어 유럽여행의 대표적 명소이기도 합니다.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에 의해서 미노스(Minos) 왕이 살았다는 신화 속의 미궁(迷宮), ‘크노소스 궁전’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비상(飛上)하는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

대부분의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 주인공인 신화도 등장하는데,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 이들이 바로 자유를 찾아 생명을 걸고 하늘을 향해 비상(飛上)하는 최초의 인간입니다.

아테네 왕족 집안 출신인 다이달로스는 여신(女神) 아테나의 후원을 받으며 뛰어난 건축가, 조각가, 발명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열두 살 난 그의 조카가 톱을 발명하여 더 유명해지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조카를 신전 위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게 하였습니다. 살인죄로 기소가 되자 그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크레타 섬으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는 크레타 섬 ‘미노스 왕’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지내게 됩니다. 미노스 왕 에게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낳은, 사람의 몸에 황소의 머리가 달린 흉측스러운 괴물 아들 ‘미노타우로스’가 있었습니다. 이 괴물은 사람 고기만 먹고살았습니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거대한 미궁(迷宮)을 만들도록 하여 그 안에 이 괴물 아들을 가두었습니다. 당시 미노스 왕은 강력한 함대를 거느리고 지중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테네로 쳐들어가 도시를 불태우고, 해마다 귀족 출신의 소년, 소녀 일곱 명씩을 조공으로 바치라 명했습니다. 이 제물을 받아 괴물 아들의 먹이가 되도록 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는 미궁을 돌아다니며 이 안에 바쳐진 소녀와 소년들을 잡아 먹고살았습니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미궁에 빠진 조국의 소년, 소녀들을 구하기 위해 자청해서 제물의 일원으로 크레타 섬으로 왔습니다. 잘생긴 테세우스를 본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를 알게 된 미노스 왕은 대로하여 테세우스를 미궁 속에 가두어버립니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 왕자를 구하기 위해 처음 미궁을 지은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다이달로스는 실타래를 주면서 미궁의 탈출 방법을 알려줍니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실마리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말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준 칼과 실타래를 들고 미로 속을 헤매다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 소년, 소녀들과 함께 미리 풀어놓은 실을 따라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높게도, 낮게도 날지 마라

테세우스에게 미궁(迷宮)을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 준 사람이 다이달로스라는 것을 안 미노스 왕은 격노하여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를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명장(名匠) 다이달로스는 걸어서는 미궁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날개를 만들어 달고 날아서 감옥을 탈출하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감옥 속에서 다이달로스는 기술을 발휘하여 새의 깃털을 모아 큰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로스에게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다음, 완성된 날개를 밀랍으로 붙이고 하늘을 날아 탈출을 감행합니다.

“너무 높이 날아오르지 마라!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기에 네 날개의 밀랍이 녹아서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너무 낮게 날지도 마라! 너무 낮게 날면 파도가 날개를 적실 거야. 바다와 태양의 중간을 날아야 한다.”

이카루스는 너무 높게도, 낮게도 날지 말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어버린 채, 태양과 신선한 공기, 힘과 속도, 자신감에 도취되어 하늘 높이 날아올라 태양을 향해 날다가 밀랍이 녹아 날개를 잃고 바다에 추락해 죽고 맙니다.

이카루스가 떨어져 죽은 바다는 후일 그의 이름을 따서 ‘이카루스의 바다’로 불리게 됩니다. 이카루스, 그는 중용(中庸)의 미덕과 이성과 절제를 상실한 채, 무한한 욕망을 쫓다가 추락한 인간의 표상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성보다는 욕망이라는 본능의 유혹에 압도당하는 인간 군상(群像)의 다른 이름이 아닐 것입니다.

권력의 단맛에 취해 추락하는 이카루스들

“정말 모릅니다. 아는바 없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청문회에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왕실장, 35세의 젊은 나이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장과 검찰총장, 3선의 국회의원 그리고 비서실장까지, 반세기 동안 권력의 단맛을 누렸던 그가 지난달 하순 특검에 의해 구속되었습니다.

‘법꾸라지’라는 별명을 가졌던 권력 실세, 수갑을 찬 채 호송원에 의해 양팔이 잡혀 특검 사무실로 향하는 78세 노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습니다.

또 한 사람,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에 수척한 모습으로 교도소 호송차에서 내리는 여인, 손목에 찬 수갑은 긴 옷소매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정치권에 입문하여 금배지를 달고 그것을 발판 삼아 여성부 장관, 정무수석 그리고 문체부 장관까지 오른 ‘신데렐라’, 평소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미소 뒤에 남겨진 그 안쓰러운 민낯은 너무나 낯설었고 차라리 애처로웠습니다.

권력이라는 밀랍의 날개를 달고 욕망의 빗장을 풀어헤친 채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그들의 말로를 보면, 태양 가까이 날았다가 날개가 녹아내려 일순간에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대반전’을 보는 듯 안타깝기만 합니다.

올해도 어느덧 입춘(立春)이 지나고, 이제 겨울의 강은 봄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올봄에는 큰 선택(大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과거를 거울삼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야 합니다.

권력의 단맛보다는 권력의 엄중함과 두려움을 아는 사람, 권력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 밀랍의 날개가 아닌 중용(中庸)과 포용(包容)의 날개를 달 줄 아는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후예, 그리스 사람들이 수도인 아테네 시내 한 복판에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거대한 동상을 만들어 놓고 얻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임영열 시민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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