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 정상

전국 어디를 가도 곰삭은 홍탁삼합에 거나해진 술객들은 으레 ‘목포의 눈물’ 한 자락 토해낸다. 임진왜란과 일제 식민지, 근현대 권위주의 시대를 거쳐 400여 년 동안 유달산과 삼학도는 ‘한과 설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사실 이 노래를 부른 이난영은 남편 김해송, 정부(情夫) 남인수와 함께 친일의 길을 갔지만 그녀의 삶과 무관하게 ‘목포의 눈물’은 식민과 소외의 역사를 대변하는 민초들의 애국가로 불리어 왔다.

2012년 새해가 밝았다. 한반도의 모든 길이 시작되는 유달산 자락 옛 시청 터에 섰다.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국도 1호선과 부산까지 이어지는 국도 2호선의 기점이 목포다. 당시는 침략과 수탈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중앙아시아를 넘어 네덜란드까지, 연해주를 넘어 러시아까지 이어질 철도의 시작도 목포다. 그래서 목포가 낳은 한국 최초 여류소설가 박화성은 목포를 ‘육지도 열리고 바다도 열려서 세계의 사연들이 오고 가는 곳’이라고 했나보다.

세계의 사연들이 오가는 곳, 목포

유달산을 오른다. 유달산은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이 다르다. 때로는 웃다가도 때로는 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입구에 이르자 해발 60m의 높이로 솟아오른 웅장한 봉우리가 하나 있다. 노적봉이다. 우리세대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적은 군사로 많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 봉우리에 이엉을 덮어 아군의 군량미로 위장하고 아녀자들에게 군졸의 옷을 입혀 하루 종일 돌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요즘 아이들은 노적봉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유달산에는 처다 보기만 해도 애가 들어서는 다산목(多産木)이 있다. 노적봉 아래 다산목에서 부부가 소원을 빌면 남편의 바람기를 잠재우고 유달산 기운이 미치는 곳에서 1박을 하면 틀림없이 아이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1년 내내 신혼부부나 불임부부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달사모종(達寺暮鍾). 목포 사람들은 달성사(達聖寺)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 종소리는 유달산을 지나 바다산맥 아래 소릿길을 타고 천리 밖으로 전해져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뭇 생명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한다.

법당 불상 아래 감로수를 감춘 절도 있다. 보광사(普光寺) 용화전(龍華殿) 미륵좌불 밑에는 3m 깊이의 짓샘이라는 우물이 숨겨져 있는데 영험한 회춘능력으로 ‘위아래 질서가 깨져’ 몰래 감추었다는 설이 있다. 항상 절집 문이 잠겨있어 얻어 마시기는 상당히 힘들다.

왼쪽으로 ‘기우뚱’ 이순신 장군의 이유 있는 짝다리

유달산 초입의 계단을 오르면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다. 높이가 3.7m, 너비가 1.6m인데 신기하게도 피사의 사탑처럼 옆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다. 부실 제작을 했다거나 지반 침하를 의심할 수도 있는데 장군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정답이 나온다. 바로 서서 보면 이순신 장군의 시선이 정면으로 노적봉에 가리지만 짝다리(?)를 하면 장군의 시선은 일본 본토와 정면으로 조우한다. 이는 일본의 기운을 누르고 다시는 이 땅을 넘볼 수 없도록 목포 앞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장군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이다.

또 목포에는 이순신 동상이 밤마다 칼을 바꿔 잡는다는 속설이 있다. 어떤 이는 오른손잡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왼손잡이라고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목포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는 이순신 동상들도 제각각 손잡는 칼의 위치가 다르다. 그래서 이를 둘러싼 학계의 논쟁이 이어져 왔다.

이순신 장군은 오른손잡이였다. 그러므로 정답은 왼손에 칼을 들고 오른손에 지휘봉을 드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오른손에 칼을 든 동상이 틀린 것도 아니다. 직접 전투에 참여 할 때는 오른손으로 칼을 뺄 수 있도록 왼손에 드는 것이 맞지만 지휘가 목적일 때는 오른손에 들 수도 있다. 솔직히 장군의 칼이 들고 싸우기에는 좀 커보인다. 전투 목적이 아니라 멀리 있는 왜군들이 보기에도 위압적이도록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지휘 목적의 큰 칼일 것이다. 유달산 노적봉에 가면 꼭 확인할 일이다.

한국은 ‘에비야’ 일본은 ‘울두울두’, 우는 아이 겁주기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언가 손대지 못하게 할 때 ‘에비’라고 하는데 귀와 코의 한자식 음인 ‘이비’에서 기원한다. 이는 사람들을 죽이고 전과를 과시하기 위해 코와 귀를 잘라 소금에 절여 가져갔던 왜군들에 대한 공포를 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일본인들은 ‘무쿠리 고쿠리(몽골군과 고려군)가 온다.’, ‘울두 울두’라는 말로 아이들을 겁주었다고 한다. ‘무쿠리 고쿠리’는 일본 정벌을 준비했던 몽골과 고려군 때문일 것이며, ‘울두 울두’는 진도 울돌목 명량해전에서 수많은 왜군들이 이순신 장군을 만나 수장됐던 공포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순신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본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콤플렉스일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7월 16일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나라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호남사림은 선조 대 기축옥사(정여립 모반 사건) 이후 중앙 정계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등용되지 않았으며 기호 사림이나 경기․충청 지역의 주변부쯤으로 전락하고 만다. 호남 출신들은 중앙 정치무대에 진출할 통로를 차단 당하게 되는 것이다.

16세기 이후 호남 사림들이 중앙정계에 진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유배객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호남 지역에는 진도, 신안, 강진, 장흥 등 유배 로드를 중심으로 유배 문화가 꽃피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 시 적극적인 의병 활동도 한 축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소외에도 불구하고 호남인들은 임금과 신하들이 수도 한양과 백성들을 버리고 몽진을 떠났을 때에 끝까지 국토를 지켜냈다.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들이 가장 당황했던 것이 임금과 벼슬아치들은 도망가는데 백성들이 스스로 의병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전쟁은 벌이는 자들이 어떤 주장을 펴든 백성들과 무관한 것이며 권력과 자원을 찬탈하기 위한 그들만의 전쟁인 것이다.

남도 백성들아 그대들에게 부끄럽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왕은 선조 30년 2월 그동안 호남인에 대한 차별을 반성하며 전라도 백성들에게 공식 사과한다.

“멀리 있는 남도 백성들아 짐의 말을 들을지어다. (…) 생각하여 보니 지난 기축년(己丑年)의 역변(정여립의 모반 사건) 이후에 도내에 걸출한 인물들도 오랫동안 뽑아 쓰지 아니하여 그윽한 난초가 산골짜기에 외롭게 홀로 향기를 품고 있으며, 아름다운 옥이 형산에 광채를 감추게 되었도다. (…) (이제야 난을 당하여 널리 인재를 구하고자 하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겁도다.” <난중잡록(亂中雜錄) 정유년 2월 22일>

그러나 의심 많은 선조는 전쟁 막바지부터 태도가 돌변해 의병장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한다. 이순신 장군은 스스로 갑옷을 벗고 눈에 띄는 붉은 융복 차림으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총탄에 맞아 순절하고서야 충신이 되었다 한다. 일례로 고경명 장군의 후손들은 신안 태도까지 숨어들었으며 수많은 의병장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2012년 또한 수많은 사과와 용서가 교차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가해자의 사과는 그 순간의 절실함이 아니라 그 후에 삶의 모습이 증명한다. 역사 이래 사과를 받아들인 백성들은 오히려 중첩된 상처를 받았다. 진정성과 무관하게 살아남고 보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어떤 종교 철학자는 ‘세상의 모든 고통은 신에 이르는 성장통’이라고 했다. 호남 사람들은 늘 시대가 준 막연한 원죄 의식과 피해 의식을 생채기처럼 가슴에 담고 있었다. 조금은 주눅 들어 있었다. 트라우마 없는 성장은 없다. 2012년부터는 더 이상 상처를 타인에게 의탁하지 말고 스스로 꽃으로 피워내 마침내 서로의 가슴 가슴에 선물을 안겨주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대동문화 68호 [2012년 1.2월호]

김대호/여행작가․소설가  taboocu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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