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충사

포충사는 임진왜란 시절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킨 충렬공 고경명과 그의 아들인 고종후, 고인후 그리고 유팽로, 안영을 봉안한 사당이다.

승승장구하며 한양을 점령한 왜군은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쟁이 장기화로 접어들자 전략을 변경하여 평안도와 함경도로 북진을 계속하는 한편, 그동안 공격에서 벗어나 있던 전라도 지역으로 공격을 시작하여 금산성이 왜군에게 함락당하고 무주, 용담, 진안까지 무너졌다.

이어 전라도의 수부 전주성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자 고경명은 광주와 장흥등에서 모집한 6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임금을 지키러 의주로 가는 길을 멈추고 “전주는 호남의 근본인데 먼저 흔들리면 적을 제압하기 어려우니 먼저 본도부터 구해야 옳다”며 금산성을 공격하였다.

의병장 모두 순절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치러 패했지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군대에 큰 타격을 가함으로써 일본군의 전주 공격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그 전략적인 의미가 크며, 이 전투는 의병이 주축이 되어 일본군 주력부대를 상대로 싸운 최초의 전투이기도 하다.

고경명 선생의 충직스러운 봉이와 귀인

포충사는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의 하나로 구국충절을 인정받았다.

서원의 경계 안에 아주 이색적인 조형물이 있는데 충노비(忠奴碑)이다. 좌측 언덕 위 구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입구에 서 있는데 1980년 동쪽에 새로 포충사를 세우면서 사당의 중심 기능이 그곳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발걸음이 줄어들었지만 예전에 서원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며,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비(碑)이기도 하다.

충노비

안내판에는 ‘봉이과 귀인은 고경명 선생의 가노(집안하인)로서 금산전투에 의병으로 참전하여 고경명 선생과 차남 인후가 순절한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장사지냈고, 이듬해 다시 고경명 선생의 장남 종후를 따라 진주성 전투에 참가 왜적과 싸우다가 주인과 함께 순절하였는데 국난을 당해 신분을 초월한 자기희생을 기리기 위해 자연석에 새긴 비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충노비 앞에서 집안 하인이 당시 왜적의 수중에 있던 주인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과, 복수를 위해 다시 의병에 참가하여 주인처럼 최후까지 싸우다가 죽은 모습이 교차하며 예사롭지 않은 가노의 행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고난속에 나오는 진정한 인품

춘추 전국시대 위나라 오기장군에 관한 일화가 있다.

어떤 병사가 몸에 심한 종기가 났는데 오기가 입으로 직접 그 종기의 고름을 빨아 낫게 해줬다. 이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소리 높여 슬피 울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사람이 말했다.

“그대 아들은 한낱 병사이나 장군이 몸소 그 독한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줬는데 어찌하여 그리 소리 높여 슬피 우십니까?” 병사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독한 종기에 걸려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오기장군이 그 종기의 고름을 빨아 준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감동하여 전쟁터에서 물러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적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자병법의 저자이기도 한 오기장군은 가장 서열이 낮은 병사들과 같은 옷을 입고 먹었다. 잘 때 바닥에 자리를 깔지 않았고, 행군할 때도 수레나 말을 타지 않았다. 자신이 먹을 식량은 손수 가지고 다녔다. 장군이 병사를 자식처럼 아끼는 군대를 이끌고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상승(常勝)장군으로 명성을 높였다.

왜란과 호란 때에 많은 수의 노비들이 주인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 평생 중노동에 시달리며, 사람대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던 그들이었기에,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 줄행랑을 놓은 것이다.

‘돌쇠’, ‘떡쇠’, ‘마당쇠’등으로 불리며 심지어는 짐승의 이름을 쓰기도 하던 시절에 귀인(貴仁)과 봉이(鳳伊)라는 이름 안에는 노비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큼을 알 수 있으며, 아울러 신분의 차이를 넘어 노비를 인격적으로 품어 안은 주인의 고귀한 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는 것을 좋아한다.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이며,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충절의 숨결이 묻어나는 고장

인정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유팽로는 자신은 이미 위험에서 빠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주군을 구하기 위해 다시 말을 달려 어지럽게 싸우는 싸움터로 뛰어들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고령의 의병장이 죽음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을 때 종사관 안영과 함께 고경명의 몸을 감싼 채 적의 칼날아래 최후를 같이 하였다.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방법 중의 하나는 고난에 직면했을 때 그의 말과 행동을 눈여겨보는 것이다. 임진년 7월 10일 고경명 휘하의 전라도 연합의병은 전라방어사 곽영의 관군과 합세하여 좌우익을 이룬 가운데 총공세를 폈으나 금산성 탈환에 실패하였다.

이때 대부분의 관군장수들은 사전에 탈출해 버리고 남은 의병들은 후일을 기약하자고 고경명에게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쟁의 장기전에 대비해서 군량확보에 혈안이 된 왜적에게 곡창지대인 호남은 좋은 먹잇감이고, 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이 약탈당하는 등 엄청난 희생이 예상되던 때이기에 우리의 의병장은 물러서지 않았고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 순절하였다.

싸움에서 가장 무서운 상대는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것이다. 설령 이기지 못할지라도 상대에게 타격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포충사 안에는 노비와 유팽로와 안영, 그리고 고경명과 그의 아들들의 충절이 숨 쉬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웃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가능하게 했고, 그 따뜻함은 노비를 감동하게 해 주인에게 되돌아 온 것이다.

얼마전에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 광주에 와서 이런 말을 했다

“광주는 충렬공이 태어난 곳입니다”

김귀백 시민기자  gasun61.@ne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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