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에 이름 석 자 누구나 남기는가, 기미년 3·1 운동 선두에 서서 구국의 일념으로 충성을 맹세하고 태극기 앞에 두고서 독립만세를 외쳤네. 일제의 총칼 앞에 나라가 침탈당하자 자유 없는 속박에서 사느니 보다 사슬을 끊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네. 모진 고문을 당하여도 이겨낸 고결한 애국 얼이 역사의 별이 되어 무궁토록 빛나네.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동상’에 새겨져 있는 '역사의 별이 되어'라는 제목의 추모시다.

광주 3·1 만세운동 발원지, 수피아 여학교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있는 수피아 여자고등학교 교정에 들어서면 대강당 앞에 높이 7m의 거대한 동상이 서있다. 세 명의 여학생이 치마저고리 차림에 태극기를 높이 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고 있다. 매우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이다.

수피아 여학교가 들어선 것은 1908년 4월 1일이다. 학교를 세운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유진벨 (Dr. Eugene Bell), 한국 이름 배유지 목사다. 최초의 학교는 그의 사택이 있었던 지금의 사직도서관 근처였다.

수피아(須彼亞)란 이름은 스턴스(M.L.Sterns) 부인이 세상을 떠난 친정 동생 ‘제니 수피아(Jennie speer)’를 추념하기 위해 지은 3층 건물을 ‘수피아 홀(Speer hall)’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수피아 여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회색 벽돌로 지어졌다.지금은 ‘수피아 역사관’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치하, 1919년 기미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점화된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광주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에서 거족적인 만세운동의 물결이 일어난 후 닷새 뒤인 3월 6일 광주 양림동 남궁혁 목사 집에서는 수피아 여학교 박애순 교사 외에 열두명의 애국지사들이 모여 광주의 독립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거사일을 광주천변에 서는 부동 장날인 3월 10일 오후 두 시로 정했다.

3월 9일 저녁, 일본 경찰의 삼엄한 감시망을 피해 수피아 여학교 기숙사에 교사 박애순과 진신애, 약 60여 명의 여학생들이 모였다. 하얀 옥양목 치마를 찢어 태극기를 그리고 내일의 거사를 위해 시민들에게 나누어줄 독립선언문과 각종 격문을 만들었다.

드디어 다음날, 3월 10일 오후 2시가 되었다. 양림동 일대는 기독교인들과 숭일학교 학생들, 수피아 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을 따라 밀물처럼 장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총과 커다란 일본도(日本刀)로 무장하고 말을 탄 일본군 기마 헌병대가 이들 앞을 막아섰다.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어린 소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동한 일본군 기마 헌병대에 맞섰다. 독립운동가를 부르며 일제히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독립선언문과 격문들이 광주시내 거리에 흩날렸다.

여학생들의 만세 행렬을 저지하던 일본군 헌병대는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 무차별적인 구타와 폭행을 자행했다. 총대로 후려치고 머리채를 잡아 군홧발로 짓이겼다. 길바닥과 소녀들의 치마저고리에 선혈이 낭자했다. 잡히는 대로 경찰서로 잡아갔다. 10일에 이어 11일에는 23명이 잡혀갔고, 13일에도 20명이 연행되어 수많은 여학생들이 구속되었다.

수피아 여학교 교사와 열여섯, 열여덟의 꽃다운 소녀들 23명이 재판을 받고 4개월에서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98년 전 소녀들은 그렇게 ‘역사의 별’이 되었다.

소녀들의 항일운동 잊지 말아야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 동상’은 1919년 3월 10일 3·1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2명의 교사와 21명의 수피아 여학교 학생들의 애국정신을 기념하고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1995년 5월 10일 수피아 여자 중‧고등학교 총동창회에서 건립하였다.

동상의 좌대에는 당시 광주 3·1 만세운동에 참가한 수피아 여학교 출신 23인의 명단이 새겨져 있으며, 옆면에는 ‘역사의 별이 되어’라는 추모시가 헌정되어 있다. ‘광주 3·1 만세운동의 발원지’ 수피아여고에서는 매년 삼일절에 이곳에서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3·1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하고 있다.

최근 전국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3·1절 관련 학생인식에 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약 절반 정도가 3·1절의 의미를 모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씁쓸한 이야기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약 100여 년 전 소녀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태극기를 들었다. 1세기가 지난 오늘,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고 촛불을 들고 소녀들이 광장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는 ‘꼭두각시 공주’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하며 광장에서 사이다 발언을 쏟아 내고 있다. ‘촛불’과 ‘태극기’로 광장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어 가고 있다.

‘국정 역사 교과서’라는 미명 아래 독재와 친일은 미화되고 있다.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로 ‘외교 참사’를 일으키고, 일본의 간교한 외교에 놀아나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시키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태도와 노골적인 우경화로 주변국들과의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또한 사드 배치 문제로 무역보복을 넘어 혐한(嫌韓) 감정까지 드러내고 있다. 견고 했던 한미동맹 관계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인해 순탄치 않을 것이 예상된다.

주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옴짝달싹 못하는 ‘내우외한(內憂外患)’의 형국이 마치 국제정치 질서의 고아(孤兒)가 되었던, 백여 년 전 ‘구한말의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침반이 없다.

98주년 삼일절이 삼일 앞으로 다가왔다. 3·1절을 단순한 공휴일로만 여기지 말고 애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는 뜻 깊은 날로 만들어야 한다. 백여 년 전 꽃다운 소녀들이 들었던 ‘태극기의 진정한 의미’와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나간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임영열 시민기자  youngim14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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