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경복궁을 찾아 관람하고 조선의 역사를 배운다.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비상한 시국에 다시 경복궁을 찾는다.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는 경복궁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2017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경복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경복궁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전각 이름과 그 의미를 다시 새겨야 한다.

경복궁 내 향원정의 봄

조선 태조 4년 9월 궁궐이 완성

경복궁(景福宮)은 조선 왕실의 법궁(法宮)이다. 조선의 정치와 역사의 산물이며 왕권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그로 인해 불에 타고 파괴되는 등 수많은 수난을 겪었다. 그러한 고초를 견뎌냈지만, 경복궁은 제 모습을 온전히 보전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경복궁이 갖는 위상은 오늘날에도 적지 않다.

조선 태조 4년 9월 궁궐이 완성되었을 때 태조는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였다. 경복(景福)이라는 말은 큰 복이라는 뜻인데 정도전은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을 모시리라.”라는 시(詩)에서 가져왔다. 정도전은 태조와 자손이 만대 태평의 업(業)을 누리고 사방 신민이 길이 보고 느끼게 하라는 의미로 경복이라 한 것이다. 그리고 정도전은 경계의 말을 덧붙였다. “《춘추(春秋)》에, ‘백성을 중히 여기고 건축을 삼가라.’ 했으니, 어찌 임금이 된 자로 하여금 백성만 괴롭혀 자봉(自奉)하라는 것이겠습니까? 넓은 방에서 한가히 거처할 때에는 빈한한 선비를 도울 생각을 하고, 전각에 서늘한 바람이 불게 되면 맑고 그늘진 것을 생각해 본 뒤에 거의 만백성의 봉양하는데 저버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태조실록》, 태조4년 10월7일) 아무리 큰 복을 받아도 백성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깨움이다.

경복궁은 네 개의 문이 있는데 동쪽 문은 건춘(建春), 서쪽 문을 영추(迎秋), 북쪽 문은 신무(神武), 남쪽 문을 오문(午門)이라 하였다. 오문이라 한 것은 오(午)가 12지의 하나로서 정남(正南)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오문을 정문(正門)으로 하였다.

이 정문의 이름은 세종 때 ‘광화문(光化門)’으로 개명되었는데 광화란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라고 광화문광장 지하에 있는 세종전시관은 설명한다. 세종대왕이 광화로 개칭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는 펴겠다는 뜻을 만천하에 공포한 것이리라. 그러니 경복궁을 제대로 보려면 이 광화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광화문을 들어서면 앞에 보이는 문이 흥례문(興禮門)이다. 예(禮)를 일으키겠다는 의미이다.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추려면 예(禮)가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예는 남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남대문을 숭례문(崇禮門)이라고 한다. 흥례문은 원래는 홍례문(弘禮門)이었는데 고종 때 중창하면 흥례문으로 하였다. 흥례문을 지나면 근정문(勤政門)으로 이어지고 근정문 안에는 근정전(勤政殿)이 위용을 드러낸다.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임금이 신하의 조하를 받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새 임금의 즉위식, 세자 책봉, 왕족의 혼례, 회갑연, 사신을 위한 연회 행사 등이 열리는 곳이다. 정전에 근정(勤政)이라는 명칭을 부친 것도 부족하여 들어오는 전문(殿門)에도 붙였으니 ‘근정’을 예사롭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근정전, 근업하고 웅장한 건물은 시대의 위엄을 듬뿍 안고 서 있는듯 하다.

건물마다 뜻이 담긴 당 호 붙여

근정전 동루(東樓)를 융문루(隆文樓)라 하고, 서루(西樓)를 융무루(隆武樓)라 한다. 융문루(隆文樓)ㆍ융무루(隆武樓)라 한 것은 문(文)으로써 다스림을 이루고 무(武)로써 난(亂)을 안정시키니, 이는 사람의 두 팔이 있는 것과 같아서 하나라도 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도전은 “대개 예악과 문물이 빛나서 볼 만하고, 군병과 무비가 정연하게 갖추어지며, 사람을 쓴 데에 이르러서는 문장 도덕의 선비와 과감 용맹한 무부(武夫)들이 경외(京外)에 퍼져 있게 한다면, 이는 모두가 문(文)을 높이고 무(武)를 높이게 한 것이며, 거의 전하께서 문무를 함께 써서 오래도록 다스림을 이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근정전 뒤편으로 사정전(思政殿)이 있고 그 동쪽에 만춘전(萬春殿), 서쪽으로 천추전(千秋殿)이 있다. 이곳은 임금이 정사를 보는 곳이다. 만춘은 만년의 봄, 천추는 천년의 가을이니 왕조가 천년만년 지속되기를 염원한 뜻을 담았고, 오행에 따라 동쪽에 만춘전, 서쪽에 천추전을 배치하였다. 가운데 사정전은 정치를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경복궁 내 경회루에는 이맘때면 늘 따사로운 봄의 향연이 펼쳐진다.

사정전 뒤편으로 강녕전(康寧殿)이 나온다. 동쪽에 연생전(延生殿), 서쪽에는 경성전(慶成殿)이라는 소침(小寢)이 있다. 강령전은 와의 침전이다. 강녕(康寧)은 《서경》 홍범 구주(洪範九疇)의 오복(五福) 중에 세째가 강녕(康寧)이다.

정도전은 “임금이 마음을 바루고 덕을 닦아서 황극(皇極)을 세우게 되면, 능히 오복을 향유할 수 있으니, 강녕이란 것은 오복 중의 하나이며 그 중간을 들어서 그 남은 것을 다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른바 마음을 바루고 덕을 닦는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보는 곳에 있는 것이며, 역시 애써야 되는 것입니다. 한가하고 편안하게 혼자 거처할 때에는 너무 안일(安逸)한 데에 지나쳐, 경계하는 마음이 번번이 게으른 데에 이를 것입니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바가 있고 덕이 닦이지 못한 바가 있으면, 황극이 세워지지 않고 오복이 이지러질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무공의 시를 본받아 안일한 것을 경계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두어서 황극의 복을 누리시면, 성자신손(聖子神孫)이 계승되어 천만대를 전하리이다. 그래서 연침(燕寢)을 강녕전이라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런 뜻을 제대로 새긴 왕이라면 잠자리도 불편했으리라. 연생전(延生殿)과 경성전(慶成殿)에도 깊은 뜻이 있다. 연생은 생명의 기운을 맞이한다는 뜻이고, 경성은 완성을 기뻐한다는 의미다.

경복궁 내 건청궁의 봄

강녕전 뒤로는 교태전(交泰殿)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왕비의 침전이다. 명칭은 《주역》 지천태 괘대상전에 나오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것이 태(泰)이다. 왕후는 그것으로 천지의 도를 이룩하고 천지의 마땅함을 보필하여 백성을 좌우한다(天地交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이라는 라는 글에서 ‘교태’라는 말이 나왔다. 경복궁 서편에 있는 경회루(慶會樓)는 임금과 신하의 경사스러운 만남이라는 뜻을 담았다.

“정사를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사람을 잘 얻고 잘못 얻는 데 있다.” 이 말은 공자가 노나라 애공(哀公)의 물음에 답한 말이다. 왕의 정사는 사람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사람을 얻은 뒤에라야 ‘경회(慶會)’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태종 때 하륜은 ‘경회루기’에서 “‘경회’라는 것은 군신간에 서로 덕으로써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덕으로써 만나지 않으면 뭇 소인이 끼리끼리 나와서 국가가 혼란하게 되는 것이며, 간혹 덕 있는 이로서 나아온 자가 있더라도, 그 재주를 다 베풀지 못할 위치에 등용하고 또 뭇 소인들 틈에 끼어 놓으면 역시 암흑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

시대가 달라졌으나 경복궁 전각 명칭 곳곳에 새겨진 명칭이 갖는 의미는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온 백성과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던 옛 사람의 열망이 그대로 살아있다. 오늘의 우리는 그 뜻을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대동문화 99호(2017년 3, 4월호)

정유철 기자  hsp3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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